소금꽃 나무들의 이야기
소금꽃 나무들의 이야기
  • 최지수 기자
  • 승인 2011.02.28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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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처절한 사투

 

▲ 농성중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한 발씩 내딛었다. 아찔한 크레인 위로 오직 가파른 계단만을 주시하며 그렇게 올라갔다. 미끄러운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 하늘에서는 하얀 소금꽃들이 흩날리는 듯 했다. 운전석으로 가는 중간지점까지 갔을 때, 군데 군데 녹이 슨 파란 쇠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 옆으로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진중공업 지회’라고 적힌 깃발만이 홀로 20m상공의 칼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내 발로 걸어 내려갈 수 있기를 

▲ 35m 상공에서 손을 흔들어보이는 김진숙 위원

 1월 6일 새벽, 우리나라 조선소 최초의 여성용접공이 같은 계단을 올랐다. 21살에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김진숙 지도위원이다.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만은 없었다. 2003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김주익 열사가 목을 메달았던 85번 크레인 이었다.

 지난해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한다고 합의한 이후 3,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잘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다. 이에 멈추지 않고 사측은 직장폐쇄를 선언하며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지난 14일 까지 228명을 해고했고, 희망퇴직 하지 않은 172명의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김진숙 위원을 만나기 위해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칼바람이 불었고 아래로 한진중공업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김 위원을 만나고자 했으나 운전석으로 가는 문은 열 수 없었다. 김 위원이 쇠사슬로 엮어 자물통으로 문을 잠궈 놓았기 때문이다. 대신 크레인에 올라 온 기자를 본 김 위원이 운전석 밖으로 나와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보였다.

 크레인 위에서 김 위원은 밧줄로 엮어 음식과 사람들이 보내오는 선물, 편지 등을 받아 올린다. 양치질은 짝수날만 하고, 샤워는 국경일날 한다는 등 나름대로 생활 수칙도 정했다. 이렇게 크레인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그녀에게는 소원이 있다. 김주익 열사가 하지 못했던 스스로 크레인을 걸어 내려가는 일. 스스로 걸어 내려가는법을 잊지 않기 위해 그녀는 매일 한 시간씩 계단을 오르내리는 운동을 한다.

“드라마보다 더 슬픈 드라마” 

▲ 문영복 비정규대책위원 대의원

 매직으로‘85번 크레인 사수대 대기실’이라고 적힌 천막 앞에서 문영복 대의원이 눈물이 날만큼 연기가 매운 나무난로를 쬐고 있었다. 그는 25살에 처음 한진중공업에 입사했다. 당시 21살 이었던 김진숙 위원은 사내 노동자들을 위해 노조활동을 하고 있었다. 문 대의원도 그 영향으로‘금서’라 불리던 사회서적들을 돌려 읽으며 노조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있었고 이뤄낸 것이 있었다. 그 때를 회상하는 그의 주름 깊은 얼굴엔 엷은 미소가 번졌다.

 회사가 경영난을 이유로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했다. 소위‘총 맞은 자’와‘총 맞지 않은 자’로 나뉘었다. 노동자 모두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한쪽 손이 마비 될 만큼의 고통을 느끼는 동료도 있었다.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이들은 당황했다. 젊은 노동자들은 꿈이 산산조각 났고, 장년층 노동자들은 자식들 대학 등록금과 결혼자금 문제로 앞이 막막했다.

 형님들은 동생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본인이 나가겠다고 했고, 그걸 지켜 볼 수밖에 없는 동생들은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노동자들의 이런 사연을 문 대의원은“드라마보다 더 슬픈 드라마” 라고 했다.

현장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 김진숙 위원이 보낸 문자

 현장에서 여러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를 꺼려한 ㅂ씨는 아들이 해고당해 가족대책위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들이 결혼결원기간으로 인해‘성실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침착하게 얘기하며 ㅂ씨는“아들이 아니어도 이 투쟁을 했을것”이라고 말했다.

 황이라씨는 2005년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사건 때 해고당한 직원 중 한 명이다. 그때 김진숙 위원을 만나게 되었고 한진중공업 파업 전에는 김 위원과 같은 집에서 살기도 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김 위원이 85번 크레인에 올라가기로 마음먹은 사실을 숨긴 채 황씨에게 약 8년간 전혀 틀지 않았던 보일러를 틀라고 했고, 황씨는 밤새도록 보일러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편히 잠들 수 없었다고 한다. 다음날 김 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황씨는 바로 현장으로 찾아갔다. 그 후로 그녀는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곳곳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낙서가 보였다. 해고당한 노동자들도 회사에서 나오는 위로금, 고용보험혜택, 금속노조 신분보장기금, 한진중공업 생계비 및 비해고자들이 매달 월급에서 50만원씩 거둬주는 돈으로 3년은 버틸 수 있다며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파업이 끝난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크레인이나 노조 간부들의 손해배상 등의 문제이다. 이 뿐 아니라 휴직이라는 명분으로 또 한번 노동자들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에서의 노동자 대량해고 문제는 IMF이후 우리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남아있다. 이 문제를 어느 한 쪽 입장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생존권’이 달려있는 문제다. 이를 단지 경제적 이해관계로만 바라보아야 할지는 의문이다.

 

1. 소금꽃 나무 :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실제 모습을 보여 주는 사회비평에세이로, 민주화 뒤에 숨겨진 어두운 모습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애를 잔잔히 그려냈다. 권위주의, 민주화, 세계화로 이어지는 공식 역사의 이면에서, 고단한 노동의 현실을 당차게 감당해 낸 여성 노동자 김진숙의 삶과 투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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