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집, 침대 그리고 여자'
연극 '집, 침대 그리고 여자'
  • 최지수 기자
  • 승인 2011.03.1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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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세대별 여성들의 이야기

“남녀 평등, 사회적 평등, 성적 평등. 사회적으로, 우리는 약간의 진보를 이룩했습니다만, 그러나‘성(性)적 평등’에 관한한 우리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요. 우리는 결코 그 방면에 있어서 남자들과 평등해 질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터부(금기사항)들! 우리는 터부와 함께 태어나며,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것들은 이 땅에 존재해왔습니다”
(프롤로그中)


‘집, 침대 그리고 여자’는 여자들과 그들이 겪는 성생활에 관한 엔터테인먼트, ‘동물원을 탈출한 성인의 오르가즘’이란 이탈리아 원작을 한국의 현실에 맞게 각색한 연극이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극단‘새벽’에서는 4월 6일부터 시작하는 이 연극의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이 날은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 중 두
개의 에피소드를 공연했다.


잠에서 깨어나기(Waking Up)
“콤프레서 가동! 볼트 두 개, 용접 한 번, 절단기가동!… 아악 내 손가락이 모두 잘렸어 사장이 싫어할 텐데…”악몽이다. 시계는 여섯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일곱 시까지 아기를 보육원으로 데려다 주지 않으면 수녀가 당장 집으로 돌려보낼 거다. 출근준비도 해야 한다. 복도 많은 남편, 남자란 이유로 그는 삼십분이나 더 자도 된다. 일어나 공장에 가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남편은‘당신 피곤해?’‘도와줄까?’라고 물어본 적도 없다. 장보기, 요리하기,설거지, 청소, 아기보기에 매달 살기 위해 재주넘기를 해야하는건‘여자’인 나의 몫이다.


‘잠에서 깨어나기’는 엄마, 아내, 노동자인 한 여성이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관객에게 전한다. 페인트를 방취제로 착각해 겨드랑이에 뿌리거나 치즈가루를 분으로 착각해 아이의 엉덩이에 뿌리는모습, 열쇠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모습에 객석도 정신이 없다. 과장된 걸 알면서도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연극을 보면 또 다른 이유로 고군분투 하고 있을 우리 사회의 직장여성이 절로 떠오른다.


엄마는 마약 중독자(The Freak Mommy)
경찰이 잡으러 오고 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급히 교회의 고해실에 숨는다. 나는 마약중독자다. 하지만 나는‘현모양처의 귀감’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내 아들에게 피를 나누어 줬고,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좋아하던 직업까지 포기했다. 그런데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마약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절망적으로 아들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아들은 집을 나갔고 나는 얼어붙었다. 아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마약중독자 소굴로 들어갔다.


‘엄마는 마약 중독자’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의 이야기다. 그런 아들의 일탈에 엄마는 주저앉는다. 그리고 어떻게든 아들을 이해 해보려한다. 이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상황에 관객들의 머릿속엔 우리들의 어머니가 오버랩 된다.


이날 공연하지 않았던 나머지 세 개의 에피소드는 감금된 여자(A Woman Alone), 한 목소리를 위한 대화(Dialogue for a Single Voice), 메디아(Medea)이다. 이 에피소드들은 주로 여성의 사랑과 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었다’고들 말하는 현대사회에 역사적 유물처럼 남아있는 여성문제의 모습을 우리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오래 된 시간 속에 일반화되어버린 이 문제를‘당연하다’거나‘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극은 그런 생각을 가진 관객들의 뇌에 변화의 대못을 박는다. 나머지 세 개의 에피소드에서는 또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의 편견에 대못을 박아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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