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 입은 어미새들
흰옷 입은 어미새들
  • 유경태 기자
  • 승인 2011.03.18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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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즐겁다

  오전 11시 후생복지관 3층. 배고픈 아기새들은 식당 아주머니에게 작은 종이로 말한다. “라면 4개요 이모”, “밥 많이 주세요”하며 하나 둘 줄지기 시작한다. 아기새들은 어미새의 빠른 손놀림에 감탄하며 자신의 음식을 기다린다. 라면를 준비하는 어미새에게 또 다른 창구에서 아기새가 어미새를 찾는다. “이모 돈까스 주세요” 어미새는 반갑게 웃으며 돈까스를 챙겨주신다. 이런 쉴틈없는 생활이 어미새에게는 버겁다. 하지만 웃는다.

학생들이 식당에서 많이 찾는 음식인 돈까스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다 .

 

이런 상황에 인터뷰를 하는 건 불가능 해 보였다. 어느새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도움 줄 수 있는 일이라곤 설거지밖에 없었다. 뜨거운 물에 접시와 그릇을 닦다 보니 땀으로 온몸을 샤워할 정도이다. 설거지할 접시들이 사람 키만큼 쌓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들 힘들지? 여기 괜히 왔나 싶지?” 웃으며 살갑게 말을 건넨다. 쉬는 시간없이 주문받으랴 요리하랴 설거지하랴 정신이 없다. 할 일이 산더미다. 식당바닥 청소, 학생들이 먹고 나면 걸레로 식탁도 훔쳐야 하고, 물 컵, 수저, 젓가락도 다시 채워놓아야 한다. 이 분들이 진정한 멀티플레이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도 아주머니들은 서로에게 농담을 주고 받으며 즐겁게 일한다.

 오후 2시 반 점심시간 때가 훌쩍 지나 버린 시간이 되서야 겨우 숨 돌릴 틈이 생긴다. 어미새는 이제야 자신의 밥을 챙긴다. 차림은 참 간소하다. 국에 밥 그리고 몇 가지 밑반찬이 전부다. 더군다나 다 같이 먹지도 못한다. 또 다른 아기새가 찾아오기 때문에 교대로 밥을 먹는다. 김여자씨는 “밥 먹고 있을 때 학생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으면 밥도 잘 넘어 가지 않는다”며 그래도 힘을 내야 학생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면서 학생 걱정부터 먼저다. 박정희씨는 “사실 학교식당일이 힘이 들다보니 다른 아주머니를 구하기 힘들다”며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에 와서 저녁 7시까지 쉴틈없이 일하니 힘이 부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실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으면 힘들다”고 말하며 밥을 넘기신다. 방학 때는 그나마 상황이 괜찮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면 아파도 쉽게 일을 놓지 못한다. 일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꾹 참고 일한다. 일손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2층 식당 아주머니들도 시간이 나는 대로 도와주러 오고 학교 근로 장학생으로 오는 학생들도 바쁜 시간에는 도와준다. 그래도 바쁘다. 아주머니들을 보면 ‘여유’라는 단어가 무심하게 느껴진다. 기자와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다시 앞치마를 추켜 매신다.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하다보면 땀이 비오듯 흐른다.

 

  후생복지관 3층에는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 스낵코너가 있다. 스낵코너에서 일하는 현영나씨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와플 같은 경우 하루에 많이 나갈 때는 200개 정도를 굽는다”면서 “아이들이 와플을 먹기 위해 한참을 줄 서 있는 걸 보면 너무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와플을 굽는 기계가 2개뿐이고 일손도 부족해 빨리 주고 싶어도 못 준다”면서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와플기계를 더 설치하던지 한사람 더 같이 일하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라고 아쉬워 한다. 그리고는 “적은 인원에 학생들 음식준비하고 설거지 하기도 바쁜데 동료들이 틈틈이 도와준다. 서로 바쁘니 이해하며 일한다”고 덧붙였다.

밝은 표정으로 와플을 굽고 있는 현영나씨.

 

  이렇게 바쁘게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가끔씩 학생들 때문에 서운하다고 한다. 음식재료가 떨어져 음식을 해 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간혹 짜증내며 가는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면 미안한 마음과 서운함이 동시에 든다고 한다. 그리고 반찬을 많이 달라고 하는 학생에게 더 주고 싶어도 못주는 경우도 간혹 생기는 반면에 다 먹지 못하고 남겨오는 학생들도 있어 아쉬운 마음도 든다고 했다.

 

  어제의 피로가 다 풀리지도 않은 채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를 시작하는 누군가가 있다. 우리대학의 흰옷 입은 어미새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준비하기 위해 이른 새벽을 밝힌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 쌀밥을 보면서 누구보다 치열하고 보람되게 살고 있음을 심장이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투덜대거나 밥맛이 없다며 불평하기 보다는 한번쯤은 그 손길에 감사함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유경태 기자

youkt28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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