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용(無用之用),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
무용지용(無用之用),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
  • 최지수 기자
  • 승인 2011.05.23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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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어서원

백년어서원은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인문학 스터디를 하거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도심 속 ‘인문학 카페’이다. 유수의 해운기업이 몰려있는, 근무시간 외에는 유동인구도 거의 없는 중앙동의 작은 골목의 인문학카페가 얼마나 활발히 움직일까 싶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이곳에서는 인문학 깊이 읽기, 주말 문화 읽기,
창작교실, 철학스터디, 낭독의 밤, 저자와의 만남, 꼬마독서회 등 다양한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정두환 음악평론가의‘함께하는 진정성과 소통하기’라는 강연을 듣기위해 모인 시민들과 조선통신사축제를 맞아 찾아온 일본인들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 백년어서원 운영자 김수우 시인

사회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
백년어서원의 운영자 김수우 시인은 문예부장을 할 정도로 학생 때부터 문학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하지만 가정형편상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23세의 이른 나이에 결혼을했다. 결혼 후 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라는 시골에서 2년, 스페인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녀는 이 시절이 생각이 커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며 모든 것들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35세에 한국으로 돌아와 무작정 대학공부를 시작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등단을 했다. 어릴 때는 글쓰기에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를 할수록 재주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보니 글이나 잘 쓰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하고 오로지 글쓰기에만 집중했다. 이런 그녀의 생각을 바꿔놓은 것은 시인‘김수영’이다.  김수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에 빚지고 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80년대에 외국에 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보았지만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단지 집에 책이 많았고 이 책들을 여러 사람과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필실의 전세금을 빼버렸다.


백년어에 생명을 불어넣다
처음 중앙동에서 인문학 카페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걱정이 컸다. 중앙동에는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 유동인구가 많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수우 시인은 가장 부산다운 곳인 중앙동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서 소외되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곳에서 인문학카페를 열기로 마음 먹었다. 모든 것은 버려진 것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호프집을 하다 버려진 공간을 계약했다. 모두 철거하고 인테리어를 해서 오픈하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 집에서 쓰던 물건들을 가져오거나 중고제품을 사서 공간을 채워나갔다. 산골 옛집을 헐어 나온 서까래, 낡은 의자 등의 폐목을 깎아 만든 나무물고기들도 한쪽 벽에 붙였다. 버려두었으면 땔감이 되었을 이 물고기들은 백년어서원의 상징이 되었다. 2009년, 앞으로 백년을 헤엄쳐갈, 백 마리의 나무물고기를 뜻하는 ‘백년어’서원이 태어났다.

처음 백년어서원의 문을 열고 얼마쯤 지나 4강으로 구성된 작은 특강을 준비했다. 그런데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특강에 참여한 시민들이 “회비를 낼 테니 특강을 계속 이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강연이 지속되고 주위에 알려지자 창원, 김해, 울산, 대구, 서울, 목포 등에서 전해 듣고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점차 사람들이 모여 지금까지 200회 이상의 인문학 강연이 이곳 백년어서원에서 열렸다.

공간의 세대교체
초창기 백년어서원을 찾는 시민들은 주로 40대 이상이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계층이 주로 3~40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대학생들도 종종 백년어서원을 찾고 있다. 김수우 시인은 대학생들에게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확신을 가지기 위한 방안으로 그녀는‘비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탐구하 것’을 추천한다. 이어“자신이 처한 현실이 아닌 다른 상황을 부러워하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다”라며 자신이 속해있는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고 탐구해 자신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1순위라고 말했다.


원인이 되는 공간이 되기를
이 공간의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이 공간이 어떤 목표의 결과가 아니라 그 목표가 나올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학생들이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직장인들이 삶에 의미를 찾는 등 창조적인 활동의 근원이 백년어서원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부산 곳곳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이런 열풍은 실용성이 중시되는 사회 속에서 가치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듯하다. 오늘도 백년어서원은 가치에 대한 목마름에 허덕이는 시민들에게 안식의 공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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