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대신문>의 열혈독자 앵카탑군, 오늘도 신문을 들여다보는구려. 뚫어져라 신문을 보던 앵카탑군은 오늘이 한국해양대신문의 창간기념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31주년이라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앵카탑군은 문득 한국해양대신문의 과거가 궁금해졌다오.
1980년 11월 25일
어려움 딛고 <海洋大學報>가 태어나다
1980년 11월 25일,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海洋大學報>가 태어났다. 한자제호로 8면 발행된 이 신문은 현재 <한국해양대신문>의 모태이다.
배포금지, 편집국장 불구속 입건
시련 속 <海洋大學報>
<海洋大學報>가 창간된 후 우리대학 신문은 배포금지, 편집국장 불구속 입건 등의 사건으로 평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海洋大學報>는 1986년, 지령 45호 ‘인간소외에 대한 소고’논문과 관련해 배포금지를 당했다. 이 논문은 인간소외를 ‘정치로부터의 소외’, ‘ 관료제로부터의 소외’, ‘ 매스컴으로부터의 소외’로 규정해 인간소외의 첨예화는 자본과 노동의 분리에 기인하며 현 상황의 모순은 결집된 다수의 주체적, 실천적 역량에 의해 극복해야한다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또한 1987년 11월에는 지령 61호 13면 ‘대통령, 나 말고 누가 있오’기사로 또 한 번 신문배포가 금지됐다. 이 기사는 ‘조도공화국 대통령 후보자 초청토론회’라는 가상 토론으로 13대 대선 분위기를 표현했다. 1989년에는 편집국장이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81, 82호의 ‘다시 보는 우리역사’기획광고 연재로 인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가 그 이유였다.
시련은 90년 이후에도 계속됐다. 1996년 4월,‘ 열사의 죽음이 살인정권의 죽음을 부른다’ 광고와 관련해 편집국장이 해임되고, 이듬해인 1997년에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탈퇴’기사와 관련, 지령 155호가 배포금지됐다. 2001년 3월에는 1년간 정간이 되기도 했으며, 2002년 3월 14일 1년만에 <海洋大學報> 지령 189호는 <한국해양대신문>으로 재발행되었다.
시대의 흐름 속
변화하는 <한국해양대신문>
<한국해양대신문>은 지난 31년 동안 다양한 변화를 이루어왔다. 대학마다 신문의 형태를 읽기 편한 형태인 가로쓰기로 변화하던 시점인 1988년, <海洋大學報> 역시 신문 전면을 세로쓰기 형태에서 가로쓰기 형태로 바꾸었다. 2006년에는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홈페이지를 언론사 통합 홈페이지로 재단장 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휴대성과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A4판형의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으며 facebook 계정을 개설해 소통의 장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