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가 뿔났다
99%가 뿔났다
  • 박수지 기자
  • 승인 2011.12.22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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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 다수의 점령

 2011년 1월 25일 이집트 장기 집권 대통령인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며 수 만명의 시위대가 카이로를 점령했다. 이 반독재 정부 시위는 2월 11일 무라바크가 대통령직을 내려놓으면서 끝이났다. 5월에는 스페인에서 ‘분노하라’는 구호로 대규모 청년시위가 일어났다. 한 달 동안 이어진 이 시위의 원인은 40%에 육박하는 청년실업률이었다.

 9월 17일 미국 금융의 중심 월가에서 ‘고학력 저임금 세대’ 30여명이 시위를 벌였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를 구호로 미국 사회에 만연한 경제 불안과 부조리에 반기를 들었다. 시위대는 점점 그 규모를 더해갔다. 9월 26일 <식코>, <화씨 911>등의 작품을 만든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도 시위대에 동참했다. 급기야 10월 15일 세계 주요 1,500여개의 도시에서 'OCCUPY TOKYO', 'OCCUPY AUSTRALIA' 등의 이름으로 동시 다발적 시위가 일어났다. 서울에서도 덕수궁과 여의도 주변에서 ‘점령’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외치고 있는 공통된 구호는 ‘1%의 탐욕에 저항하는 99%의 분노’다. 99%는 누구이고, 분노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분노하는 다수의 점령

OCCUPY TOGETHER

 전 세계가 들썩인다. 시국이 소란스럽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SNS에 분노하는 글들이 자주 보인다.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국내외 시위 현장에 대한 소식이 등장한다.

  10월 15일 서울은 흐림

 10월 15일 서울에는 비가 왔다. 아침부터 하늘이 우중충했다. 시위를 하기로 한 덕수궁 앞에는 이미 경찰이 와 있었다. 여기저기서 ‘금융자본은 각성하라’, ‘반값등록금’, ‘최저임금 인상’ 등 각각의 표어가 적힌 팻말이 눈에 띄었다. ‘1%에 맞서는 99%의 분노, 1015 국제 공동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한 김정배(26)씨는 매학기 360만원의 등록금을 내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학교가 있는 성남에서 그의 집 인천까지 왕복하면 하루 네 시간이 걸리지만 자취하기에는 방값이 여의치 않아 매일 통학한다. 그는 ‘99%’가 자기와 같은 평범한 시민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시위로 자본주의가 멸망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1%'의 탐욕에 더 이상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다는 마음으로 시위에 동참했다”는 그는 99%다.

  11월 22일의 역사적 날치기

 지난 22일, 오후부터 '한·미FTA' 비준안이 통과되었다는 뉴스 속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최루탄을 뿌리는 국회의원과 소란스러운 국회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떠돌았다. SNS 여기저기에서는 분노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같은 날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는 약25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국회 강행 처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자유발언대에 올라선 윤혜선(31)씨는 “자본가를 제외한 모두가 99%다. 이번 한·미FTA는 자본가의 배를 더 불릴 수 있도록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오늘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이곳에 왔다”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최일권(28)씨도 자유발언대에 올랐다.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이 인내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나 역시 취업난에 고통 받고 있는 중”이라며 1%를 배불리는 법안과 체제에서 소외받는 모든 대중이 99%라고 말했다.

 

분노의 화살은 어디를 향하나 

시위에 참여했던 정수현(25)씨는 “한·미FTA를 강행처리한 국회의원을 비롯한 1%의 자본가들은 우리를 벌레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다 같이 사는 사회인데 왜 그럴까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ㅇ99%의 분노가 비단 한국의 경우만은 아니다. 일본 도쿄에서는 ‘빈부격차의 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는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정치부패의 척결’, ‘수도 민영화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또한 독일 베를린에서도 ‘은행 구제 반대’를 구호로 집회가 열렸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분노의 화살은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과녁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99%인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시츄에시션’들이 그들을 거리로 나가게 한다. 22일 서면에서 열렸던 집회에서 만난 길지수(24)씨는 “대중의 이런 움직임은 당연하다. 길 가다가 만원을 잃어버려도 화가 나는 법이다. 자기 것을 빼앗기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며 다시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대중의 분노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무력도, 제압도 아닌 변화가 아닐까.

박수지 객원기자

zorba92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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