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쓰디쓴 올림픽 성배 들이키다
베이징, 쓰디쓴 올림픽 성배 들이키다
  • hjmoon5274
  • 승인 2008.09.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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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쓰디쓴 올림픽 성배 들이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역도 장미란 선수는 신기록 5개를 갈아 치웠다.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은 한국이 수영불모지라는 오명을 말끔히 씻어버리게 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종목에서 제외되는 야구도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한국은 금 13개, 은 10개, 동 8개의 종합 순위 7위. 아시아에서는 중국 다음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지난 8월 8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된 베이징 올림픽 기간 동안 당신은 얼마나 울고 웃었는가?  방송사에서 하루 종일 쏘아대는 올림픽 중계 전파를 수신 받으면서 유도 최민호 선수가 한판승을 거둬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냈을 때 필자도 통쾌함을 느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없던  애국심도 어디선가 샘솟는다. '보름동안 애국자'가 되어 선수들의 경기에서 내 국가 정체성을 거듭 확인하며 마음 졸였다.
 올림픽 기간 동안 필자는 다른 민족에게 강한 배타심을 느낀다. 우리 역사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나라일수록 더 그렇다. 특히 한국과 같이 스포츠가 군사 정권의 국민용 눈가리개로 이용되었던 역사를 가진 곳에서는 필자 같은 심정을 느끼는 국민들이 적지 않으리라 본다. 실제로 위정자들이 스포츠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다. 역사 속에서 올림픽은 폭탄 없는 세계 민족의 각축장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남북한이 동시 입장 하지 않은 것만 봐도 올림픽이 정치 이슈를 대리 표출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밖에도 2014년 올림픽 개최지를 두고 프랑스와 영국이 끝까지 대립각을 세운 일이나 조금 더 거슬러 올라 전체주의 선전장으로 이용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예가 그렇다. 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올림픽 정신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이제는 위선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늦여름의 보여주기 식 반짝 행복 
 물론 국가 단위로 참여를 하는 올림픽에서 정치색이 짙은 것은 필연적일 수도 있다. 88 서울 올림픽을 등에 업고 눈부신 성장을 보였던 한국도 마찬가지기에 우리는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누가 행복한가? 서울 올림픽 당시 쫓겨났던 74만 명의 인구가? 메달을 따지 못해 국민 앞에서 사죄해야하는 선수가? 아니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자신의 어렵고 절절한 사정을 미디어를 통해 보여야만 하는 영웅이? 이번 베이징의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보았듯이 축제는 화려하고 보기 좋게 포장되지만 이면에는 다양한 폭력들이 묵인되고 있다.
 올림픽 개막과 러시아의 그루지야 폭격이 함께 시작 되었다. 개막식 당시  미소 짓고 있는 푸틴 러시아 총리가 중계방송 화면에 잡혔다. 예술단 소속의 한족 출신인 어린이들이 중국 내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의상을 입고 공연하였고 다음 차례로 귀여운 소녀가 립싱크로 노래했다. 이 때 베이징 시내에는 150만 명의 사람들이 쫓겨나 있었고 수많은 상점들이 정부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문 닫은 상태였다. 베이징 올림픽은 불도저식이었다. 이내 중화 민족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폭죽이 요란스럽게 터졌다.
 올림픽을 끝으로 사회적 이슈들도 전환점을 맞았다.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이용대 선수의 윙크도 황홀하지만 금메달 숫자 놀음에 목매던 우리의 모습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 표출의 장이 아닌 한 인간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내는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올림픽을 관람해야겠다. 동시에 올림픽을 기회로 삼아 뒤틀린 정치를 펼치는 정치놀음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저 아름답고 즐겁기만 한 축제가 아니라 이를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 볼 때 올림픽, 그 이면의 거대한 폭력성을 인식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현정 기자
raver1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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