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품은 아련하고 소중한 영화공간들
부산이 품은 아련하고 소중한 영화공간들
  • 김선중 객원기자
  • 승인 2012.05.3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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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영화의 설렘을 간직한다

영화를 보는 이의 ‘바람직한 심정’은 무엇일까. 교과서적인 대답을 하기에 곤란한 질문이지만 명시를 해야 한다면 단연코 ‘설렘’이라고 할 수 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극장을 맴돌 때 발생하는 감정,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휴고>에서 이자벨이 무성영화인 <마침내 안전!>을 보면서 짓는 표정이 바로 설렘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설렘을 발생시키는 매개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로 극장이라는‘공간’이다.

극장은 영화와 관객을 만나게 해주는 중간지대 역할을 해줌과 동시에 영상을 보는것 이외의 경험까지 부가적으로 안겨주는 공간이다. 함께하는 관객들을 통해 형성되는 암흑 속의 공감, 오고 가는 동선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과 조형물이 환기 시키는 분위기, 그리고 켜켜이 쌓여있는 사람의 흔적들은 영화가 단순히 광학적 영사를 통해 비춰지는 현상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을 충족시켜줄 극장들은 점점 줄어만 가고 있다. 저마다의 특색을 지녔던 단관 극장들은 대부분 폐관하거나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흡수 혹은 탈바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소중하며 어떠한 영화관들 보다 관객들의 사랑으로 유지되고 커가는 아련한 영화공간들이 부산 내에 존재한다. ‘극장선택이 곧 영화사랑이다’를 통해 언급했던 ‘국도가람예술관’, ‘아트씨어터 씨앤씨’, 그리고 추가로 소개할 ‘영화공간 보기드문’이 바로 부산이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영화공간이다.

 

▲ 국도가람예술관

▲ 국도가람예술관

▲ 아트씨어터 C&C

다양한 영화, 다양한 프로그램

국도가람 예술관, 아트씨어터 C&C

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매표창구와 팜플렛 가판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꾸며진 사진벽, 그간 상영했던 포스터들이 작은 공간의 벽지를 꼼꼼히 메우고 있는 이곳은 부산문화회관 근처에 위치한 ‘국도가람예술관(이하 국도)’ 이다. 매표소 바로 옆에 위치한 극장 입구를 통과하면 150여석 가량의 좌석이 스크린을 살짝 둘러싼 형태로 자리 잡혀 있다. 흡사 소극장과도 같은 이영화관 1곳에서 매년 70~80여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국도와 함께 다양성 영화 상영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부산 가톨릭센터에 위치한 ‘아트씨어터 C&C’다. 본래 시민회관과 같은 강연장 형태의 공간이었으나 2009년 극장으로 탈바꿈하여 다양한영화상영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드넓은 로비에 아담한 매표소와 쉼터가 자리잡고 있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상영을 기다릴 수 있다.

이들 극장과의 첫 만남임과 동시에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지난 2011년 3월 19일, <오슬로의 이상한 밤>이 상영되었을 때였다.당시 마지막 상영이었던 이 작품은 평소에 극장에서 접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노르웨이 영화였다. 미국과 한국, 조금 더 범위를 넓힌다 해도 중국, 일본 등에서 온 영화들만을 접해왔던 당시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상영작의 국가들이 다양한 것은 물론 전국배급망을 거의 타지 못하는여러 한국영화들이 꾸준히 상영되는 것이국도와 아트씨어터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이 공간들에는 일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것,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가 상시적으로 열린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GV는 보통 영화제와 같은 장소가 아니라면 평소에 접하기가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국도와아트씨어터의 경우 적어도 한 달에 2,3차례 이상의 GV가 열린다. 필자의 경우 이곳을 통해 <트루맛 쇼>의 김재환 감독을 비롯해 <하얀 나비>의 김삼력 감독, <바다>의 윤태식 감독과의 GV에 참여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곳의 GV는 영화제에서 열리는 GV보다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펼쳐진다는 점, 그리고 다음 상영에 쫓기지 않는 진행 덕분에 영화제보다 좀 더 친밀한 대화가 오간다는 점에서 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무엇보다 국도에서는 다른 극장에도 쉬이 찾아볼 수 없는 밤샘 영화상영 프로그램 ‘올빼미 상영회’가 열린다. 매달 말에 실시되는 이 프로그램은 극장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에 공지글을 게시하여 20명 이상이 댓글로 신청했을 경우 실시되며, 예고하지 않은 세편의 영화를 중간 쉬는 시간과함께 상영한다. 토요일 밤 12시 무렵이 되면 극장운영자와 관객봉사자들이 맛있는 간식을 다양하게 준비해 놓는다. 입장시 운영진이 나눠주는 빙고용지는 영화가 끝날때마다 함께 빙고 게임을 진행하는데 사용된다. 좋은 영화를 틀어줄 것이라 운영진을 믿는 마음이 한편으로는 어떤 영화가 상영될 것인가에 대한 설렘까지 부른다. 하룻밤을 기꺼이 극장에서 보내는 이들을 도심속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관객으로서 이토록 흥미로운 형태의 공감대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 독립영화갤러리 '보기드문'

 

영화가 입에서 오르내리는 곳

영화공간 보기드문

영화에 푹 빠진 이들은 언제나 영화를 향한 갈증에 시달린다. 원하는 영화를 큰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으며,설사 봤다고 한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찾기가 어렵다. 이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는 이라면 ‘영화공간 보기드문’은 최적의 장소다. 중앙동 지하철역 근처 골목의 한 빌딩 건물 4층에 자리잡은 이곳은 독립영화 감독인 김희진씨가 운영하고 있는 영화공간이다. 감독이 운영하고 있는 공간답게 영화사의 명작들이 수록된 dvd와 영화관련 서적들이 곳곳에 빼곡히 채워져 있다. 오후 3~6시까지 누구나 자유로이드나들면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오후 7시 이후에는 감독이 직접 프로그래밍한 월단위 상영계획에 의거해 영화를 상영한다.

상투적인 설명들이 나열되었지만 이 공간은 한마디로 ‘영화사랑방’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손님처럼 따뜻하게 맞아주고 손님들 역시 편안한 마음으로 젖어 들어가는 공간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일반적인 풍경을 이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작년 가을 무렵, 필자는 노동과 영화라는 주제로 진행되는프로그램 ‘라보레마(Laborema))’의 상영작인 켄 로치 감독의 <레이닝 스톤>을 관람했었다. 누군가는 등받이 의자에, 어떤 이는접이식 침대에 누워서, 어떤 이는 테이블에 몸을 의탁한 채 프로젝터 빔이 쏘는 영상에 시선을 쏟는다.

상영이 끝나고 나면 오피스텔 크기의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한자리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혼자서품고만 살았을 영화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이 자리에서 만큼은 조심스레 하지만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나눈다. “재밌었다”,“누구누구가 나오더라.”식의 단편적인 감상들을 넘어 장면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담소로 풀어내는 자리, 그 어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도 갖을 수 없는 시간들이 이곳에선정기적인 상영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영화를 좋아해서 외려 고독해져버릴 것 같던 우려는 이곳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하나의 씨앗이 되고 있었다.

 

극장의 참맛을 권한다

공간이 무심코 지나가는 세월로만 인식되고 경험되는 것은 삶에 씁쓸함과 무미건조함을 더한다. 사람이 오가는 곳에 아무런 이야기도 에피소드도 남지 않는다면 그곳에 어떠한 애정을 더할 수 있을까. 영화는 영상으로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수용된 비주얼과 이야기는 타인에게 풀어지는과정을 거쳤을 때 더욱 풍요로워진다. 쇼핑처럼 보는 영화, 방안에서의관람이 늘어가고 있는 지금, 부산이 품고 있는 소중한 영화공간들의 진미를 경험하길 권해본다.

 

김선중 객원기자

czsunapclu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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