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국가폭력의 역사, 제주 4.3사건
잊혀진 국가폭력의 역사, 제주 4.3사건
  • hjmoon5274
  • 승인 2008.09.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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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국가폭력의 역사, 제주 4.3사건

국가폭력이라는 말은 이제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생소한 것이 아니다. 가장 근자의 예로, 촛불을 든 국민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색소물대포와 소화기를 뿌린 공권력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비단 물리적인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조중동 광고주 압박운동에 대해 사법권을 갖지 않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이라고 결정한 것 역시 보이지 않는 국가폭력이다. 문제는, 물리적 폭력은 가시적이기라도 하지만 후자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은 더욱 무서운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 같은 오늘날에도 이처럼 국가폭력은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하물며 독재와 억압이 난무했던 근현대사에서는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여기서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한국해양대학교 언론사는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해 지난 7월 17일부터 3일 동안 제주 4?3사건현장을 다녀왔다. 잊혀진, 아니 애써 외면당한 우리의 아픈 역사적 사실인 4?3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4?3연구소’ 오승국 이사를 통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건항쟁이란
▶요즘 대학생들은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간단히 얘기하면 1945년 해방이 되고 1948년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즉 우리 정부가 없을 때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생긴 ‘양민 대학살’로 볼 수 있다. 이 사건으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대량 학살을 당했고, 중?산간 지역의 몰락 등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100%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 등 문제가 많다.
-4.3사건의 원인은
▶3.1절 기념대회 날 제주도민 10여명이 죽고 3월 10일 총파업과 관련해 미군의 고문치사 등 강경한 탄압으로 4.3사건은 시작되었다. 사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념적 편견과 지역적 편견이 큰 몫을 했다. 예를 들면 언어문제가 있는데 “모르쿠다. 모르쿠다.”라는 말을 군인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반말로 인식해서 마구잡이로 죽인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모르쿠다’는 ‘모르겠다’의 제주도방언이다. 정부에서 제주도민을 빨갱이 집단으로 몰아세워서 무차별적인 학살을 감행했다.
-4.3 문제 해결에 나서게 된 배경은
▶4.3은 제주 내에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조장한 큰 문제기 때문에 4.3특별 위원회를 구성했다. 국회에 건의하고 4.3홍보를 위해 전국적인 캠페인 활동도 벌이고 강연도 펼쳤다.
지난 1999년 12월 4.3특별법이 제정되고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대통령으로선 최초로 과거 정권의 잘못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했다. 
-앞으로의 과제
▶이 불행한 역사적 사건을 반세기가 넘도록 방치해온 책임은 당연히 정부에 있다. 최근 들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자면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사 관련 위원회 14개를 폐지키로 했는데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가 그 중 하나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코 밝은 미래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4.3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인권유린의 중심축에 있는 4.3사건 문제를 해결하면 인권이 이 땅에서 살아 숨 쉬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 이다.
하지연 기자
sanso3@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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