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녀(潛女)의 삶, 그리고 문화
잠녀(潛女)의 삶, 그리고 문화
  • 박수정 기자
  • 승인 2012.05.31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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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로의 인식을 제고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화, 생활, 직업 등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기술의 발달, 지적 수준의 향상 등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보고 경험하면서 우리는 보다 편리함을 추구하고 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길 원한다. 그렇게 우리는 변화를 거듭하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것을 ‘망각’하고 있다.

 

「해녀는 일본식 표기 잠녀로 명칭 바꿔야」-서울신문 2011.06.01

일본식 표기인 제주 ‘해녀’를 ‘잠녀’로 바꾸어야 한다는 청원이 제주도의회에 접수돼 공론화여부가 주목된다.

「93세 최고령 할머니 해녀 지금도 제주 바다 ‘풍덩’…」-제주의 소리 2012.01.19

현재 활동 중인 전체 잠수어업인 중 절반 가까이가 70대 이상의 고령인 것으로 조사돼, 해녀 고령화 추세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잠녀 유네스코 등재 여전히 과제 많다」-제민일보 2012.02.03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잠녀가 제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의 등재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의무다.

 

  ‘제주도’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돌하르방, 한라봉, 조랑말, 섬 등 제주도를 상징하는 특산물, 문화 등 다양한 것들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해녀(이하 잠녀(潛女)-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강인한 제주 여성을 일컫는 제주어)는 어떠한가. 제주의 역사와 함께 해온 잠녀는 위기에 처해있다. 삶의 터전인 바다가 황폐해지는가하면 잠녀의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제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현재 제주도의 잠녀, 그리고 잠녀 문화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국제해양문제연구소 안미정 교수와 제주대 유철인 교수를 통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하도리 잠녀들의 모습

 

 

Q. 잠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안미정 교수 : 대학원 석사 때, 잠녀였던 한 여성을 인터뷰하면서부터 ‘잠녀’라고 불리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 관심은 사실 문화적 충격에 의해 시작됐다. 흔히 인문학은 이문화 같은 낯선 문화를 접함으로써 문화적 충격을 겪는다고 보지만 인터뷰를 통해 실제 겪은 문화적 충격은 이와는 달랐다. 너무도 익숙하고 너무도 가까이 있었기에 ‘앎’라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깨닫게 되면서부터 잠녀 그리고 잠녀문화에 대해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됐다. 잠녀를 통해 그 사람들이 형성하는 문화와 그 지역의 문화를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유철인 교수 : 문화인류학자로 1984년 제주대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제주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窓)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러다 선택한 창이 제주4.3사건, 잠녀, 재일제주인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잠녀는 오래전부터 제주도에만 존재했다는 사실에 더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됐다. 현재는 일본과 비교문화적인 관점에서 잠녀를 공부하고 있다.

Q. ‘잠녀’에 대해 연구를 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잠녀의 삶은 어떠한가?

  -안미정 교수 : 잠녀를 잘 알지 못하거나 잠녀가 아닌 사람은 잠녀의 삶이 고단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잠녀의 문화 속에 고단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고단하게만 보는 시선은 편견이 크다. 잠녀의 노동과 물질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여 이뤄진다는 점에서 다른 일과는 다르며 단순히 노동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부터 잠녀들 사이에는 ‘벗이 있어야 물질을 한다’라는 말이 있다. 벗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잠녀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잠녀는 동료와 함께 집단적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철인 교수 : 물질(산소공급 장치 없이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행위)은 무척 힘이 드는 고된 노동이다. 더군다나 한순간에 삶과 죽음이 갈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잠녀가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아마 ‘경제적인 이득’ 때문인 것 같다. 따라서 어느 시대의 잠녀를 이야기하는가, 즉 경제적 보답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잠녀의 삶은 달라진다. 제주잠녀의 수가 많았고 물옷을 입었던 1960~70년대에 물질은 제주잠녀들에게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었다. 제주경제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잠녀의 수입은 많은 비중을 차지했었다. 그러나 바다에 양식장이 들어오고 바다로 폐수가 흘러들어가는 요즘, 바다는 황폐화되어 수입은 좋지 못한데다 잠녀의 고령화가 심해지고 있는 추세다.

Q. 우리나라 역사적으로 잠녀가 주는 의의는 무엇인가?

  -안미정 교수 : 인간이 자맥질(물속에서 팔다리를 놀리며 떴다 잠겼다 하는 행동)하여 수중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었던 역사는 신석기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른다. 잠녀를 바닷속에서 자신의 몸에 의지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이라고 할 때 이와 같은 방식의 어로(고기나 수산물 따위를 잡거나 거두어들이는 일-물질)는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생산성을 지향하는 사회 속에서도 단절됨없이 이어져왔다는 것만으로도 긴 역사성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러한 어로집단이 시대에 따른 생산방식이 달랐음에도 지속적으로 어로문화를 형성해 왔다는 측면에서 볼 때, 어로문화 속에 다양한 문화적 지층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의 잠녀는 여성간의 연대와 공동체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여러 연안지역에서 여성어로집단이 형성해 온 문화는 그 지역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유철인 교수 : 조선시대의 잠녀는 정해진 양의 해산물을 관가에 바쳐야 하는 존재였다. 1700년 전후까지는 포작(물질하는 남자)과 잠녀, 모두 일을 했지만 점차 포작이 사라지고 1900년 전후부터 제주잠녀들은 경상도 지역으로 바깥물질을 다녔다. 특히나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과 육지로 바깥물질을 하러 나갔으며 주로 봄에 타지로 갔다가 추석이 다가올 때쯤 돌아오는 생활을 했다. 바깥물질을 다니는 것은 목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행해졌으며 지금도 이러한 생활을 하는 제주잠녀가 존재한다. 이렇듯 제주잠녀는 이러한 역사적인 변화를 거쳐 어엿한 직업인이 되었다.

Q. 해양문화로서의 잠녀가 주는 의의는 무엇인가?

  -안미정 교수 : 기존에는 잠녀를 바다에서 자맥질하는 독특한 여성으로서 주목했으나 그 관심에 부응할 만큼 잠녀 스스로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은 아니다. 잠녀처럼 자맥질하는 어업은 아시아 태평양에서 널리 나타나는 보편적인 것이나 우리나라의 잠녀, 특히 제주도 잠수들의 생활세계는 풍부한 신화와 의례, 다양한 공동어로의 규칙과 체계 등이 발달하였고 다양한 교환관계를 이뤄 지역사회 내의 호혜적 사회관계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잠녀라는 어업집단은 인간이 자연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문화를 창조해나가는 가를 보여준다. 또한 그 어업집단이 시대의 변화를 겪으며 생긴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나타내며, 그것은 생태적으로 종의 다양성에 기반할 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유철인 교수 : 잠녀의 물질은 수렵채집경제의 생산방식인 채집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잠녀는 단순한 채집이 아닌 바다를 가꾸면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바다의 농민’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잠녀는 바다를 <바다밭>이라 부르며 이 때 말하는 농민은 기계장치를 쓰지 않는 전통적인 방식의 농민을 말한다. 때문에 해녀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20명의 잠녀가 하루에 하는 작업을 산소통을 맨 잠수부 1명이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면에서 잠녀의 물질작업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공동체 수준에서는 마을어촌계가 채취기(채취하는 기계)와 금치기(물건의 값을 매기는 일)를 정하고 작업시간과 채취물의 크기를 정하는 방식으로 자원보호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Q. 해녀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에 관해 어떤 입장인가?

  -안미정 교수 : 잠녀에 대한 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으며 이를 보존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잠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독특성, 희귀성만을 지적할 뿐 현재적 의의를 밝히는 데에는 그 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와 더불어 잠녀, 그리고 잠녀문화를 본질적인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유철인 교수 : 잠녀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고 잠녀의 물질은 지속가능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보존되어야 한다. 또한 제주잠녀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젊은 잠녀가 충원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주잠녀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잠녀를 등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네스코 협약의 가장 큰 목적은 무형문화유산을 보호・보존하는 것이고 이러한 보호조치는 무형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적극적인 참여와 동의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현재 제주도가 <해녀>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추가하기 위해 문화재청에 제안을 한 상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무형문화유산의 명칭, 잠녀의 동의, 우리나라 무형문화유산 등재 등 여러 가지 해결해야할 문제가 남아있다.

 

Q. 일반 대중이 가져야할 해녀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은 무엇이며 어떤 방법이 필요한가?

  -안미정 교수 : 잠녀는 우리나라 해양문화를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는 존재다. 존재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잠녀의 문화를 경제적 효용가치 측면에서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이들의 존재를 우리 시대에 한정시켜 사고하기 보다는 긴 역사적 시간대, 미래라는 다가오는 시간대 위에서 잠녀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잠녀의 해양 생활양식은 우리 시대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만약 우리 시대에 끝난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에도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 더 이상 바다에서 그 어떠한 생산적인 활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보아야한다. 이에 우리는 문화이해의 장을 마련해야한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에 한정되어 있어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내기란 힘들다. 때문에 해양문화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수반하면서 심층적 이해를 도모하려는 제도적인 노력 역시 필요하다.

  -유철인 교수 : 일반 대중들은 잠녀를 그저 신기한 존재 또는 관광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질은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키워주는 것이다. 때문에 잠녀를 어엿한 직업으로 나아가서는 훌륭한 장인으로 대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잠녀가 등재되어야하며 그랬을 때 비로소 잠녀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달라질 것이라 본다.

 

  바다와 관련있는 문화를 통해 형성되는 지식, 의례, 생활방식 등을 통틀어 해양문화라고 한다. ‘잠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퇴화되는 직업이 아닌 우리가 알고 보존해야 할 해양문화다.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친다면 ‘잠녀, 그리고 잠녀문화’는 언젠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문화를 인정하는 노력,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 문화를 읽어내는 노력은 어느 집단에 국한된 것이 아닌 그 문화를 살고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필요한 자세임을 알아야 한다.

   
▲ 제주대학교 유철인 교수
   
▲ 한국해양대학교 안미정 교수

박수정 기자

blue9069@hanmail.net

 

[약력]

제주대학교 유철인 교수

 

현 (1984년부터)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한국문화인류학회 편집위원장.

서울대 인류학과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인류학석사

미국 일리노이대 인류학박사.

[약력]

한국해양대학교 안미정 교수

 

현 (2009.03.19 부터)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대학원 졸업(박사)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외래연구원(한국학술진흥재단 해외박사후과정 연수)

 

 

“바다는 친정이야. 은행보다 더 좋지”

시집온 후 물질만 35년, 59살 막내 잠녀 현정숙씨를 만나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물질을 시작했다는 현정숙(59)씨, 이젠 35년 경력의 숙련된 잠녀다. 어려선 그저 바다가 좋아, 재미삼아 물질을 배웠다. 그렇게 24살 되던 무렵 부산으로 시집을 가면서 전문적으로 물질을 하게 됐다. 바로 시어머니가 잠녀였던 것, 며느리인 현정숙씨는 자연스레 조합원이 됐다.

  아침 7시, 현정숙씨는 물질을 하기위해 우리대학 방파제 옆 낡은 컨테이너로 향한다. 예전엔 30명이서 북적이던 곳이 이젠 5명밖에 남지 않았다. 현정숙씨는 고무옷으로 갈아입고 물에 들어갈 채비를 한다. 한번 물속에 들어가면 4~5시간은 훌쩍 넘긴다. 전복, 문어, 소라, 멍게 등 바닷속은 그야말로 ‘바다밭’이다. 일년내내 채취가능한 해산물이 있는가하면 군수, 해삼, 미역 등 계절에 따라 그 양과 종류도 다양하다. 물질이 끝나면 해산물을 손질한 후 자갈치 시장에 팔러간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현정숙씨 손에 남는 건 많게는 30만원, 보통은 15만원가량의 벌이다. 현정숙씨가 처음 물질을 시작했을 때는 바닷속에 해산물이 풍부했다. 그러나 이젠 해산물이 적은 대신 그 값이 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소위 돈벌이는 같은 셈이다.

  현정숙씨에게 바다는 친정이자 은행이다. 빈손으로 바다에 나가도 집으로 돌아올 땐 주머니가 두둑하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현정숙씨는 잠녀 생활에 ‘중독’됐다고 말한다. “물질 못하게 하면 병날 거 같아”하며 웃는 현정숙씨에게 바다는 일터, 그 이상이다. 삶의 터전이자 안식처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예전엔 잠녀를 천하게 봤는데 이젠 잠녀도 떳떳한 직업으로 인정해줬으면 좋겠어. 우리도 해산물을 수출하면서 우리나라 경제 살리는데 한몫하고 있는데 말이야”하고 말하는 현정숙씨의 목소리에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느껴진다.

박수정 기자

blue90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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