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시간을 거스르는 공간, 시네마테크
영화로 시간을 거스르는 공간, 시네마테크
  • 김선중 객원기자
  • 승인 2012.07.0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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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스르길 소망하는 인간

방영되는 회마다 수많은 이슈를 생산하곤 했던 무한도전의 결방이 계속되는 지금, 시청률과 화제성을 둘 다 잡고 있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아마도 ‘런닝맨’일 것이다. 새삼 이 프로그램을 거론한 이유는 하하가 외쳤던 주문, “시간을 거스르는 자”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그 자리에서 주문을 외워보시라. 결과는? 물론 공허함과 민망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면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주문은 우리들의 간절한 욕망을 자극하고 있기에 한번쯤은 장난삼아라도 말하고픈 충동을 부른다.

▲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간절한, 그러나 불가능한 소망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슬픈 얘기다. 이룰수 없는 꿈은 슬프다고 80년대 인기가수이용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모른다면 ‘잊혀진 계절’을 검색창에 입력하시길). 시간과 공간을 되돌리고 싶은 우리들의 욕망, 하지만 타임머신은 여전히 인류에게 공상 속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마침내 대리만족을 위한 공간, ‘극장’을 탄생시켰다. 몰입을 방해하는 시각요소들을 암흑의 방으로써 최소화 시킨 뒤 은막 위에 영사된 ‘동적 이미지’들은 잠시나마 현 시대의 인간들에게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이 담아낸 세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의문 하나, 이 신비로운 효과는 영화의 기능인가, 극장의 기능인가? 극장의 효용은 앞서 말했던바, 그렇다면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건 영화의 기능이다. 시간을 거스르는 힘을 지니는 영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21세기에 90년대를 다루고 80년대를 다루기만 하면 그 효과를 내는 것일까? 애석하지만 그러한 방식은 현시대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한계에 갇혀있다. 이쯤이면 무엇을 얘기하려하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이번 학기 연재 마지막 키워드 ‘고전영화’와 극장이다.

▲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위치했던 시네마테크 부산.

시네마테크, 박제된 과거를 불러내다

대한민국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이들에게 ‘고전’이라는 키워드는 수능 언어영역 시험을 무사히 대비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으로 인식하곤 했다. 좀 더 일반적인 인식을 말하자면 ‘고리타분함’이라는 말로서 치부되기도 한다. 하물며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찾던 영화에까지 ‘고전’을 권하는 건 고문일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라 이 같은 설명은 불과 몇 년 전 필자의 상태에 대한 것이다. 자연스레 최신 영화를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물론 좀 더 과거로 올라가 비디오 대여점 시장이 살아있을 당시에도 굳이 예전 영화를 찾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1958년에 만들어진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접하게 되었다. 영화가 끝난 뒤, 고전은 고리타분함이 아니라 오히려 신선함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지금의 영화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50년대 영화의 정서, 수십 년의 시간을 견디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거론되는 영화의 힘을 경험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과거의 시대, 그 당시의 시선을 픽션으로서 풀어낸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셈이다. 새로운 환희의 순간과 함께 고민도 함께 찾아왔다. 극장의 효용을 믿는 관객으로서 주옥같은 고전을 극장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에 목이 마르게 된 것이다.역시 등잔밑은 어두웠다. 부산이 단지영화제만 열리기 때문에 영화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공간, 시네마테크(cinematheque)부산이 존재했던 것이다.1999년 8월 설립된 후 12년 동안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위치하다가 지금은 센텀시티에 새로 건립된 영화의 전당 ‘시네마테크관’으로 통합되었다. 매년 300여 편이 넘는 고전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는 이곳은 명실상부‘영화로 시간을 거스르는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시네마테크는 시기마다 특정주제나 인물을 내세운 하나의 ‘기획 프로그램’ 방식으로 영화들을 상영한다. 이곳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처음 접했던 프로그램인 ‘월드 시네마’ 기획전은 매년 봄에 열리는 프로그램으로서 지난 100여 년간의 영화사가 품은 주옥같은 영화들을 선정해 상영한다. 특히 고전 영화중에서도 초창기에 해당하는 무성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쉴새없이 대사가 쏟아지는 영화에 익숙해진 지금의 관객들에게 무성영화는 신선함을 넘어 하나의 문화충격과도 같은 체험을 제공한다.

▲ 시네마테크 부산이 통합된 영화의 전당.

시대, 국가, 인디를 넘나들다

시네마테크(cinematheque)는 프랑스어로 영화를 뜻하는 cinema와 도서관을 뜻하는 ttheque의 합성어이다. 그만큼 시네마테크관이 포괄하는 영화의 범위는 매우 광활하다. 월드시네마와 같은 기획전을 통해 시대와 국적을 넘나든다. 지난해 이 기획전이 열렸을 당시에 상영된 영화들의 시대별 분포는 20년대 2편, 40년대 2편, 50년대 6편, 60년대 4편, 70년대 3편, 80년대 4편, 90년대 1편, 2000년대 2편이었다. 국가분포 역시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편이다.2010년에 열린 월드시네마 기획전에 상영된 25편의 작품들은 덴마크,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일본, 이탈리아 등 10개 나라에서 온 영화들이었다. 이는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은 시대의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다양함은 과거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상영된 영화들에게도 적용된다. 독립영화 상영 프로그램인 ‘인디스데이’, 지난해 상영되었던 작지만 좋은 영화들을 상영하는 ‘시네 리플레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미처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 영화들, 초야에 숨겨진 독립영화들을 발견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인디스데이의 경우 일반극장에서 좀처럼 상영기회를 잡지 못한 작품들이 많기에 희소가치가 높은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 시네마테크에서 주최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들.

시간을 견뎌내는 영화를 찾아서

극장가에서는 매년 수백편의 영화들이 상영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영화는 물질적 형태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할애하는 컨텐츠이기에 상시적으로 판매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엄격한 시장논리가 횡행하는 일반적인 극장가에 보고 싶은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는 결국 관객들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담겨진 채 시간을 견뎌가며 존재하는 가련한 운명을 갖는다.

그런 연유로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구원하는 공간이 된다. 다른 곳에서 영화의 교체를 생각할 때, 시네마테크에서는 어떤 영화를 과거로부터 불러올지 고민한다. 수천, 수만편의 영화들 사이에서 선별된 영화들이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훗날의 관객들에게 선뵈는 작업이기에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수 없게 된다. 즉, 시간을 견디는 영화의 자격은 자연스레 가치 있는 영화에게 부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많은 영화들에 대한 가치를 분별하는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선별자와 관객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시네마테크의 선별기준도 변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으로서 이 과정에 뛰어든다는 것은 피동적인 영화수용자에서 적극적인 영화의 선택자로 거듭나는 것을 뜻한다. 오랜 시간 동안 선택을 받아온 영화들, 새로운 선택을 받은 영화들을 접하며 다음의 영화들을 생각할 힘을 얻는 곳,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를 더욱 사랑할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선중 객원기자

cz sunap clu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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