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Best의 적(敵)은 수많은 Good이다
[기자가 만난 선배] Best의 적(敵)은 수많은 Good이다
  • 허민학 기자
  • 승인 2012.10.11 2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하용 동문(해양경찰학과·96)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던 어느 가을날 오후. 이번 호 ‘기자가 만난 선배’ 코너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갔다. 그곳에서 하얀 셔츠 차림으로 말끔한 인상을 풍기는 장하용(해양경찰학과·96) 동문을 만날 수 있었다.

핸디캡을 기회로 삼다
  인터뷰를 위해 우리 대학까지 발걸음해준 장하용 동문. 그는 우리 대학이 보이는 영도에 살
고 있어 종종 학교를 찾는다고 한다. “해양대는 나에게 집처럼 편한 존재”라고 말하며 해양대
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장 동문에게 학부시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장하용 동문은 바다의 본고장 부산에서 태어나 누구보다 바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런 그에게 해양대 지원은 기회였다. 그는 당시 해사대학생들이 배를 타고 외국을 가볼 수
있다는 것에 이끌려 해양경찰학과에 지원을 결심했다.
  입학 후 장 동문은 다른 학생들처럼 본인이 전공하는 분야의 학점관리만 급급해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는 전공과목 이외에 교양, 법학, 행정, 경제, 공학 분야 등의 수업을 들으며
경험을 쌓았고 졸업학점 160점보다 높은 179학점을 이수했다. 돌이켜보면 힘든 기간이었지만
당시 습득했던 지식들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장 동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졸업할 무렵 그는 다른 학생처럼 의무 승선 생활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둔 시기인 4학년 말, 그에게 맹장염이 찾아왔다. 당시 IMF로
어려웠던 집안형편에 짐이 되기 싫었던 그는 복통을 참아왔고 결국 복막염이라는 심각한 상
태까지 이르렀다. 장기간 입원신세를 지게 된 그는 결국 의무 승선은 물론이고 기말 시험까
지 치르지 못했다. 다행히 교수님의 배려로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해양대를 지원한
이유이자 목표였던 승선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은 아직까지 너무나 속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그는 당시 배를 타지 못한 것을 또 다른 기회로 삼았다. 대
학에서 공부를 하며 해양 분야 전문가라는 꿈을 키워온 장 동문은 당시 해사 대학생들 사이
에서 전례가 없던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해양대와 남다른 인연
  대학원 진학 후 장하용 동문은 학부 생활 시절 복막염으로 배를 타지 못했기에 늦게라도
바다를 직접 경험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해군학사장교를 신청했다. 그렇게 군
복무를 마친 장 동문은 2007년부터 선박전자기계공학부에서 학과 조교 생활이라는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조교 활동을 통해 그는 실제 행정 업무와 학사 일정에 관한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이렇듯 그는 남들과 달리 긴 학교생활을 하며 해양대와 인연을 키워왔다.
  사실 장하용 동문과 해양대 사이의 인연은 그 전부터 있었다. 그의 친동생 역시 우리 대학
출신이다. 해양경찰학과 07학번으로 입학한 동생은 현재 기관공학부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러한 인연 중 가장 소중한 인연은 바로 조교생활을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그의
아내는 국제대 해운경역학과 97학번으로 입학한 조교 생활 1년 선배였다. 자연스레 모르는
것을 그녀에게 물어보고 같이 일하며 그녀와친해졌다. 그렇게 서로 오래 알고지내다보니 연
인 관계로 발전했다.
  “십년 연애한 사람들보다 짧은 기간동안 서로 더 많이 봤을 것이다”고 말하는 장 동문은
당시 아내와 서로 같은 상황이었기에 누구보다더 상대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
게 두 사람의 인연은 2008년에 결실을 맺어 우리 대학 후생복지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장 동문은 두 아이의 아빠이며 우리 대학 해운경영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그의 아내 뱃속에는 셋째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정부 시책에 충실히 호응중이라며 웃음을 짓는 장 동문은 자녀 셋 중 한 명은 해양대에 진학하리라고 믿고 있다.

 

장하용 동문 가족사진

 

시청에서의 새로운 도전
  장 동문은 2011년도부터 해사산업연구소에서 전임 연구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해양 분야 전문가라는 그의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선 것이었다. 그곳에서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며 교수님의 연구를 도와 경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올해 7월 부산시청의 해양정책과에 특채로 채용된 것이었다. 그가 몸담고 있는 해양정책과는 물류, 수산분야를 제외한 해양경제와 관련한 총체적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곳이다. 장 동문은 그동안 조교 생활과 연구원 생활을 하며 키워온 경험들을 지금의 자리에서 발휘할 수 있었다.
  “부산 지역내총생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해양산업의 육성 및 발굴을 위해 기회업무를 수행중이다”고 말하는 장하용 동문. 그는 신해양경제육성, 해양수산 R&D클러스터 구성, 해양 플랜트 등 신해양산업 발굴은 물론이고 북극해 개발에 따른 부산시의 대응전략 마련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금은 해양 골드러시 시대”라고 말하며 해양을 영토로 보고 그것에 대한 점유와 자원개발을 중요시여기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해양산업과 해운경기, 조선 업계가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에 해양플랜트와 같은 새로운 분야가 각광받고 있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어 장 동문은 “지금 부서에 해양관련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부족하다”며 “이를 위해 우리 대학 후배들이 준비한다면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고 당부했다.

공무원이 아닌 사람 장하용의 시간
  장 동문은 평일동안 일에 전념했다면 주말에는 여느 아빠들과 다름없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일종의 여가생활로 독서를 즐긴다. 특히 그는 사회생활을 하며 책읽기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그는 책 속에서 선경험자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삶에 있어 많은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장 동문은 “공학도들은 공학 관련 서적만 읽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제 인문분야에 대한 서적을 접해야 한다”며 통섭형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일주일간 업무를 보느라 지칠 때 장 동문은 재충전의 의미로 후배들을 만난다. 올해 근무지를 시청으로 옮기며 해양대 향수병을 겪었을 만큼 그에게 후배들은 소중한 존재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후배들과 만나며 여러 가지 논의도 하고 카운슬링도 한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카운슬링을 통해 힘을 얻는다고 한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보람을 느끼듯 후배들에게 카운슬링을 해주며 장 동문 스스로도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가장 좋은 기회의 큰 적은 좋은 기회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세요”
  “가장 좋은 기회의 적은 많은 좋은 기회들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장하용 동문은 편한 길만 걸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은 good이라는 좋은 기회들 중에서 best를 선택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며 “좋은 기회들 중 자신의 욕심을 위해 겉으로 좋은 것만 선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그는 진정한 best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좁은 문을 두드리라고 한다.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즐길 줄 아는 장하용 동문에게 전혀 이질적인 말이 아니었다.
  더 넓은 세상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그에게는 더 이루어야할 목표가 남아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고향, 부산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명감과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해양정책 실무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지금 장하용 동문이 걸어가고 있는 길은 정형화된 과정이 아니다. 하지만 장 동문은 꿋꿋하게 유지경성, 굳건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낸다는 뜻의 좌우명을 가지고 그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허민학 기자
hmh1376@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