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그 위대한 이름
항해, 그 위대한 이름
  • 박수정 기자
  • 승인 2012.11.23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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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와 해상교역, 그들의 ‘네트워킹’

[해양학술] 항해, 그 위대한 이름

오늘도 바다를 항해(航海)하다

항해와 해상교역, 그들의 ‘네트워킹’

풀을 엮어 만든 갈대배, 짐승의 가죽을 벗겨 만든 가죽배, 나무를 이어 만든 뗏목 등 인류는 오래전부터 바다를 가까이 했다. 초기에는 직접 사람의 힘으로 노를 저어 동력을 만들었고 해를 거듭하면서 그 영역은 점차 발달했다. 돛에서 증기기관으로, 목선에서 철선으로의 선체구조의 변화는 생활양식의 변화와 직결됐으며 자연스레 삶의 질 또한 향상됐다. 사람들은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오지를 개척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무역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시대를 거슬러 현재, 흔히들 지구촌이라 말한다. 각 나라의 무역 장벽은 허물어지고 외국과의 교류는 국가의 기반을 흔들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 중에서도 선박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역은 전체 무역량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활동 영역의 확장, 선박의 발달 등에 따라 선원들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우리대학 해사수송과학부 김정만 교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까지 모든 운송기관의 조종이나 운용에는 인간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항해에 있어서의 선원의 역할이란 지구상에서 가장 먼 거리를 가장 긴 시간동안 이동하는 선박을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며 “이는 많은 종류의 위험을 극복해야 하고 극도의 인내력을 요하는 일”라고 말했다.

자연의 힘을 이용한 항해를 벗어나 물리적인 기술을 통한 항해로 접어들면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항해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김정만 교수는 “인류는 아직까지도 암흑기를 통과하고 있다. 수 만년의 시간을 지나 약 100여 년 전부터 작은 불빛을 보고 항해하는 중“이라며 ”인류는 세계화에 맞춰 점차 더 많은 물자의 교환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해운의 가치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김정만 교수는 앞으로의 해운을 이끌어갈 젊은 층들에게 성실성을 강조했다. “성실성은 단지 바다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느 곳을 항해하더라도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이다. 바람과 파도와 바다를 항해하며 배운 Seamanship(바다에서 종사하는 항해사에게 주로 쓰는 말; 성실성)은 이후 어느 곳에 가더라도 빛을 발휘할 것”이라고.

박수정 기자

blue9069@hanmail.net

 

“나는 이 세상의 반대편을 보고 왔다”

풋내기 항해사, 희망을 쓰다

 

계란 한 판의 나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구 반대편을 항해하는 것. 그는 막연하게 전 세계를 동경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를 냈고 마침내 꿈은 현실이 되었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해기사 단기 양성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중앙상선 3등 항해사로 근무하는 김연식(30)씨. 그의 항해 경력은 23개월, 스스로를 풋내기 항해사라고 소개하는 그에겐 베테랑 항해사 못지않은 그만의 색이 있다.

 

전 세계를 훑은 소감은 아주 간단하다. 세상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넓어서, 감히 머리로 짐작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세상이 어디부터이고 어디까지인지 모른다. 다만 그 안에 수많은 삶과 영혼과 마음들이 있음을 안다. 어마어마한 세상을 감히 일개 단어로 싸잡을 수 없다. 선과 악으로, 부와 가난으로, 진실과 거짓으로, 친절과 박대로, 자본주의와 그 반대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 갈 때마다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써도, 나는 그곳을 나쁜 곳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나쁜 사람이 있다면 좋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다시 인도에 가도 또 다른 누군가의 맑은 미소를 기다린다. ᠁ 항해는 만만치 않다. 어느덧 내 얼굴은 태양에 그을리고 해풍에 갈라졌다. 어찌 보면 바다에 떠 있는 자체가 고역이다. 그러나 바다는 나를 더 크게 만들고, 파도는 나를 강하게 했다. 복잡하게 꼬인 세상에서 정신없이 살면서 놓친 것들을 다시 찾았다. 한동안 놓은 트럼펫을 다시 잡는다. 매일 육체의 탄력을 유지할 만큼 운동한다. 돈과 시간에 초연해진다. 저녁에 손 편지를 쓴다. ᠁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도 나는 신이 허락한 이 지구별을 더 세밀하게 더듬을 테다. 내게 세상은 끝없는 보물 상자다. 못난 젊음이 어디까지 가는지 두고 보자. (제 48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 당선작 ‘지구별 항해기’ 中 김연식 作)

 

 

김연식 항해사 (30)
Q. 신문방송학이라는 전공을 포기하고 해기사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연식 항해사 : 학부시절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전공을 살려 일간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직 기자생활은 꿈꿔왔던 것과는 달리 매일 고민하고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해양경찰청에 출입했습니다. 그 곳에서 해양대학 출신 경찰관들을 많이 만났고, 그 분들에게 전해들은 항해이야기는 풋내기 기자를 무척 설레게 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지하철에서 지구본을 팔았습니다. 자녀들이 아침, 저녁으로 지구본을 보며 더 큰 꿈을 꾸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예전부터 막연하게 전 세계를 동경해왔고, 결국 그 꿈을 좇기로 했습니다. 전공과 경력을 과감히 버리고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입교했습니다. 저는 서울 토막이입니다. 선박이라고 하면 가끔 뉴스에 나오는 배경화면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배를 타고 지구 반대편에 다니고 있습니다.

 

Q. 망망대해를 누비고 다니는 선원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혼자라는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가족, 친구 등과 떨어져 항해를 하는 지금, 생활은 어떠한가요?

김연식 항해사 : 신문기자는 무척 고된 일입니다. 박봉에다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저를 괴롭히는 것은 매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책보기를 즐기는 제게 저만의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어느 시인이 말대로 뒤통수에 빨대가 꽂혀 누군가에게 빨리는 것만 같이 내 배터리가 소진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배가 외롭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충전의 시간입니다. 승선하면서 이제껏 읽지 못했던 책을 모조리 읽었고 고교시절 배웠던 트럼펫을 10년 만에 다시 잡았습니다. 해질 무렵 갑판에서 연주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못하던 운동을 시작하면서 적당한 몸의 탄력도 찾았습니다. 고민과 제약 없는 직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에 따라 배는 외로울 수 있고, 나만의 따뜻한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Q. 지구 반대편을 항해한다는 것. 항해를 하는 동안 어떤 것들을 경험했나요?

김연식 항해사 : 저는 파나막스(Panamax) 부정기 벌크화물선을 타고 지난 23개월 사이 25개국 36개 항구에 기항했습니다. 이 중 25곳에 상륙했습니다. 브라질 아마존, 대륙의 끝 러시아 무르만스크, 얼음바다 발틱, 말보로없이 못 건너는 수에즈운하, 못된 세관원이 들끓는 인도, 열사의 두바이, 지구의 공장 중국, 한밤의 축구 브라질 산토스, 호주, 인도네시아, 싱가폴, 콜롬비아 등을 다녔습니다.

저는 전 세계 곳곳을 다니기 위해 배를 탔습니다. 그래서 시일을 다퉈 바삐 운항하거나 일부항구만 기항하는 ‘정기선’과 ‘초대형선’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부정기 벌크화물선만을 보유하고 있는 중앙상선에 입사했습니다. 벌크화물선은 주로 콩, 옥수수, 설탕, 석탄, 철광석, 보크사이트를 옮깁니다. 이런 배들은 다양한 항구에 입항해서 오랫동안 짐을 싣고 내립니다. 그러다보니 주변 도시를 자주 여행할 수 있습니다.

 

Q. 기계공학과 전자・컴퓨터 공학이 융합된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기술의 발달 등에 맞춰 앞으로의 항해, 그리고 선원, 각각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김연식 항해사 : 선박에 GPS와 선박정보자동식별장치(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가 생기면서 항해는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이제 태양을 관측하거나 육상에 전파를 쏴서 위치를 알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눈앞에 선박이 수백 척이 있어도 각각의 선명을 알 수 있습니다. 근래에는 전자해도가 보급되어, 더 이상 연필과 자로 종이해도에 위치를 나타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듯 당연히 항해자의 역할도 바뀝니다. 과거에는 좋은 시력과 날씨를 읽는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항해기기의 여러 기능을 숙지하여 제 때 정확하게 사용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평상시에는 기계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자주 점검하고 각 기계가 보내는 신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항해자는 기계를 감시하는 한편, 기계가 찾아낸 수많은 정보에서 중요한 것만 모아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Q. 최근 사람들은 해상에서의 근무보다 육상에서의 근무를 더 선호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또 해기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김연식 항해사 : 작은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억지로 하는 일은 태만을, 태만은 곧 사고를 낳습니다. 우리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나라는 어떤 것입니까. 정치적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나라, 전쟁과 폭력의 위험이 없는 나라, 편견과 차별이 아닌 이질적 요소들이 뒤섞일 수 있는 나라, 획일성보다 개성과 독창성이 존중되어 문화와 예술이 풍성하게 꽃피는 나라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마다의 선호와 능력에 따라 노력을 기울여 자아를 실현하는 나라입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해야 개인이 행복하고, 기업과 나라 전반의 효율이 높아집니다. 이는 바로 더 윤택한 나라를 만드는 길입니다.

대학은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시대의 교양인을 키우는 곳입니다. 전공은 학문의 깊은 영역을 탐구할 기초를 닦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전공의 기초를 탄탄히 닦는 한편, 다양한 학문의 기본을 맛봐야 합니다. 해기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최근 30년간 우리나라의 변천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배에는 평생을 배 위에서 일한 노선원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외화벌이의 역군이라고 칭송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들 같은 젊은 사관들에게 하대 받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사관으로 일할 수 있는 건, 그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만한 대인관계입니다. 교양과 덕을 쌓아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관이 되길 바랍니다.

 

Q. 김연식 항해사의 선원으로서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김연식 항해사 : 제 목표는 우리나라의 보이지 않는 기둥인 ‘선원’을 알리기 위해 책을 쓰는 것입니다. 세계 교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역의 98%가 선박을 통합니다. 해기사는 헤모글로빈입니다.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몸 안 곳곳에 옮겨주듯이, 에너지와 원자재를 전 세계 곳곳에 공급합니다. 항해사가 있기에 인류가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해기사는 생명의 파수꾼입니다. 항해의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선원을 보호합니다. 또한 해기사는 도전자입니다. 자연의 위협에 맞서 항해를 완수합니다.

해기사. 고된 일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파도를 맞으며 삽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우리를 ‘뱃놈’이라 부르며 천시합니다. 선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합니다. 얼굴이 없고,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해기사를 제대로 알리고 싶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배에 애꾸눈 선장과 망나니 술꾼은 없습니다. 외국에 살림을 하나 더 차린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항구에 갈 때마다 우리를 기다리는 건 속옷 함까지 열어보는 세관원과 검사관입니다.

앞으로 계속 글을 쓸 것입니다. 선원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글이 목적이고 선원이 수단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보이지 않는 기둥인 ‘선원’을 알리기 위해 펜을 들겠습니다.

 

박수정 기자

blue90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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