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하라, 그리고 새로운 나를 창조하라
변태하라, 그리고 새로운 나를 창조하라
  • 권경우(문화평론가)
  • 승인 2013.02.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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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여러분의 입학을 축하합니다. 고통스러운 입시 관문을 뚫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축하받을 만한 일이며, 나아가 한편으로는 매우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닌 시절이 거의 20여년 전인데,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에 대학 진학률은 지금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는데도 오히려 오늘날 대학에 가는 일이 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대학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한편으로 들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근래 사회적 분위기나 경제 위기를 대충이라도 알고 있다면 절대로 기뻐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갖는 계급적 특혜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학력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오히려 학력이 뛰어난 사람도 현실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학 새내기로서 어떤 마음가짐과 준비가 필요할까요?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사회의 변화와 세계경제의 변화 등을 지켜보면서 느낀 부분을 추상적이나마 몇 가지 조언을 할까 합니다.

첫째,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라면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진짜 공부는 지금부터입니다.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김영민은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고 말합니다. 생각이, 즉 머리에 있는 것이 몸으로 들어갈 때 진짜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육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공부는 곧 ‘변태’(變態, metamorphosis) 능력을 길러서 스스로 변태가 되는 것입니다. 변태는 곧 ‘~되기’(becoming)를 뜻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떠나서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되기’는 머리 속으로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고정된 주체로서 직업이나 직위나 부의 축적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입니다. 고정된 주체는 이미 존재하는 세상의 질서와 규칙을 따르는 것이지만 변태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합니다.

12세기 독일의 신학자 성 빅토르 위그는 ‘고향을 떠나 이별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고향에 이별을 고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냥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고향을 찾아 떠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고 본 것입니다. 현대적 의미에서 어쩌면 유목민적 삶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관심과 호기심에 따라 공부가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부의 목적은 어떤 것을 이루거나 성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되는 변태를 경험하는 과정이며, 그 순간은 나의 존재가 새로운 존재로 변이라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며, 기쁨의 과정이 됩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의 질서와 배치가 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혁명입니다.

둘째, 관계를 경험해야 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연애를 경험해야 합니다. 더불어 여행이나 일상을 통해 자연을 경험해야 합니다. 스펙을 쌓기 위해 동아리활동이나 조별 모임을 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경험을 쌓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욱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연애를 하면서 나와 완전히 다른 타자로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연애는 절대적 신뢰와 이해, 수용을 전제로 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나와 다른 상대방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견뎌야 할 때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견딜 필요는 없지만 정말 견뎌야 할 것을 구별하고 그것에 한해서는 견디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장거리 여행을 하는 훈련입니다.

자연은 사람과는 다른 축으로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계방식이 모두 달라집니다. 자연에 대한 깊고 성숙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훨씬 광대합니다. 그 속에서 눈 앞의 이익에 자신의 모든 것을 팽개치고 마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인간의 삶이라는 사이클을 따르는 긴 호흡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을 보호한다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스스로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가 상호 보완을 이룬다면 우리는 만물과 연애를 할 수 있습니다. 그 관계는 단순히 시기와 질투로 구성되는 삶이 아니라 이해와 소통으로 구성되는 풍성한 삶을 만들어 줍니다. 껍데기처럼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외면을 넘어 내면까지 이르는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셋째,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자신을 잘 알아가는 과정이 됩니다. 과거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선배들은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현재 40대 중후반, 혹은 50대 초반을 당시 가장 치열했던 대학생활을 경험한 이들임에도 한국사회가 별다른 변화를 일구어내지 못하는 데에는 바로 그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그들을 위한 변명을 하면, 그들은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사회 혹은 국가라는 외부에 온통 자신의 관심을 두었으며, 모든 삶의 원인과 조건을 외부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유독 이율배반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위험합니다. 여러분들도 언제든지 그러한 늪에 빠질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물론 과거와는 다른 환경입니다. 오늘날에서는 가상과 현실, 혹은 현실과 미디어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공간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론 가상의 공간이나 미디어가 생산하는 공간에서도 충분히 '리얼리티'를 경험하면서 살아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굳이 현실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가상의 공간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기간이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문화와 아날로그문화, 가상현실과 현실공간, 미디어와 일상이라는 대비되는 두 개의 문화/공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의 능력입니다.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미셀 푸코(M. Foucault)는 <자기의 테크놀러지>에서 “자신의 신체와 영혼, 사고, 행위, 존재방법을 일련의 작전을 통해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노력”을 강조합니다. 그러한 노력은 타자와 나, 세상과 주체, 몸과 마음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타자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이 자신만을 위한 공부를 하고, 나중에는 자기 가족만을 위해 직장을 다닌다면, 도대체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결국 사람이 사람인 이유, 즉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는 결국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가 다르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고 타자를 바꾸고 몸을 단련하는 공부, 연애와 사랑, 직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완성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이나 마음, 사고뿐만 아니라 신체와 행동, 존재 그 자체를 동시에 고려하고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갈 미래는 평균 연령 100살의 시대입니다. 회사를 오래 다닌다고 하더라도 거의 40년 가까운 시간을 직장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등산만 다니거나 경로당에서 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만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열심히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사회처럼 재난과 질병이 많이 발생하는 시대에는 질적 차원에서도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신체적, 지적, 영적 차원에서 건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러한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까이 두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에게 찾아온 기회를 선용하십시오. 취업이나 스펙에 목매느라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저 역시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4년의 시간은 여러분 앞에 펼쳐진 80년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변태하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나를 창조하십시오!

권경우(문화평론가/nomad70@daum.net)

문화평론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기획실장. 한예종, 계원예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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