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세상을 향한 재미난 복수
지루한 세상을 향한 재미난 복수
  • 박수지
  • 승인 2013.06.11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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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문화행동 재미난 복수]

2003년부터 시작된 부산독립예술가들의 자발적 기획집단이다. 시각예술, 공연예술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기존 문화에 대한 대안을 실험할 수 있는 문화적 행동을 지지한다. 조직된 이래 비일상적인 축제의 공간으로 ‘거리’를 해방구 삼아 다양한 기획을 펼쳐오다 2008년 독립문화공간 ‘아지트(AGIT)'를 설립했다.

장전동에 위치한 아지트는 부산 독립문화의 ‘핫플레이스’다. 레코딩 스튜디오, 레지던스 공간, 갤러리, 합주실, 아뜰리에,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나뉜 250여평의 공간이 꿈꾸는 ‘재미난 복수’들을 대표 김건우(32)씨를 만나 들어보았다.

 

시작, 그들은 왜 복수를 선택했나?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내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싸움을,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

-무라카미 류 'Sixty Nine' 中

 

'재미난 복수'(이하 재복)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사뭇 섬뜩하게 느껴진다. 웃으며 복수 한다는 것이 아닌가. 2003년 8월 부산대학교 정문 앞 거리에서 그들의 ‘복수’는 시작되었다. 그들이 사용한 무기는 ‘거리축제’였다. 보행자와 자동차로 정신없던 거리에 무대를 세우고 노래, 춤, 전시, 프리마켓을 열어 놨다. "재복은 문화운동 단체입니다. 상상력의 빈곤, 다양성을 제한하는 기득권에 대해 ‘재미나게 놂’으로서 복수한다는 뜻이죠."

목마른 사슴이 물을 마시듯 사람들의 흡수력도 자연스러웠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거리’에서 ‘함께 놀며’소통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재복이 거리에서 벌이는 예술 활동은 재복에게는 일종의 거점이지만 사람들에게는 해방구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18개월의 기록

 

좌충우돌, 멈추지 않는 스쾃(Squat)

재복에 짧게라도 동참했던 사람들은 모두 '노가다의 추억'이 있다. 늘 활동자금이 부족해기 때문에 기획부터 섭외, 진행, 홍보, 무대제작, 연출, 음향, 청소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여자 팀원들도 철재 자재를 옮기거나 무대를 설치하는 작업등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어 끝나는 행사의 철수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끝나고 나면 늘 언제나 그렇듯 힘든 건 마찬가지고, 또 우리가 왜 거리에서 이런 것을 하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니까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재복의 활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방면으로‘복수의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가볍게 즐기는 시간도 있었고 무겁고 진지한 시간도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성매매집결지 부산 완월동에서 성매매피해상담소 ‘살림’과 함께 진행하고자 했던 완월동 문화열기 프로젝트 ‘언니야 놀자!’, 고 정서운 위안부피해자 할머니 추모탑 제막식에 앞서 부산과 광주, 서울, 하동에서 진행했던 공연 ‘아름다운 동행’ , 고리 핵발전소 수명 연장에 반대하며 부산청년환경센터 등과 함께 진행했던 ‘즐거운 장례식’ , APEC부산회의에 반대하며 여러 단체와 연대해 진행했던 ‘NO-APEC FESTIVAL', 일본헌법 9조 개정을 반대하는 일본 시민단체 'WALK9’과 함께 진행한 문화제 ‘Power Off, Peace On', 콜트콜택 노동자를 위한 문화집회 등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반문의 결과들이었다.

그들의 대표적인 '재미난 복수 시리즈'

도로 한복판에서 제대로 쉬어보기 '프로젝트 휴休' [2005.6]

완월동 문화열기 프로젝트 '언니야 놀자!' [2005]

-2005년 봄 성매매피해여성상담소 '살림'이 제안하고 재복이 이에 응하면서 함께한 완월동 문화열기 프로젝트는 유일하게 무산된 행사였다. 인권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지만 휘발유와 분뇨통을 준비한 채 거세게 욕설을 내뱉는 포주와 소위 '삼촌'들의 위협으로 청춘, 대학에서 죽다 [2006.9]

프로젝트 리폼 패션쇼 : Re-Fun [2006.7]

공공미술프로젝트 '가치' [2006.11]

스트릿아트 컬렉션 '블록버스터' [2007.8]

사운드 피크닉[2010]

재미난 복수를 위한, 모두를 위한 아지트

시작한 이래로 6년 동안 제대로 된 사무공간이 없었다. 열정 하나로 집 없는 설움을 이겨냈다.“부산대학교 학생회관 안에 잠방이 있었어요. 그 공간에서 재복 사무실을 꾸리면서 정말 많은 예술가를 만났어요. 20㎡(6평 상당)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이 정도 공간만 있어도 사람들이 모이고 에너지가 모이는구나 싶었죠.”

그러나 어디까지나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더부살이였다. 2007년까지만 해도 연 운영비 1000만원 이내에서 행사를 30회 이상 만들어내는 팀이었던 재복에게 공간 운영비는 만만찮은 문제였다. 알아보던 중 장전동의 높은 언덕에 2년 동안 방치되어있던 국립유치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아지트다. 재복의 시즌2가 시작된 것이다.

부산에 없는 공간, 부산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던 만큼 공간은 다양한 장르를 다루지만 한 가지 방향성을 뗬다. 바로 서브컬쳐(Sub-Culture)다. 인디뮤지션을 위한 녹음실과 레이블, 젊은 춤꾼들의 연습 공간, 기존 미술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작가들을 위한 갤러리, 장르와 국적을 넘어 모든 서브컬쳐 아티스트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아지트’가 부산에는 절실했다.

복수의 고단함

누구든 재밌게 살아야 한다는 자극을 주기위해 벌였던 ‘복수들’은 사실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단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재밌지만 불투명한 시간들,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재미난 복수’를 위한 청춘들의 땀이 미화되어 남겨질 수만은 없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고 떠나기를 반복했다.

고단함은 이뿐이 아니었다. 2012년의 겨울은 아지트에게 유독 더 추웠다. 2008년 5월부터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130만 원에 임대해 운영해왔다. "작년 12월에 올 3월 임대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집주인이 건물을 팔겠다는 의사를 통보해왔었어요. 집주인이 우리에게 우선 매입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10억 원의 매입 자금을 마련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현재는 집주인을 설득해 연장계약이 이루어진 상태지만 대비해두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비단 이런 문제가 아지트만의 고민은 아니다. 2011년 10월 대안공간 ‘반디’가 문을 닫았고, 작년 3월 극단 새벽의 ‘실천무대’역시 무리한 월세 인상에 문을 닫았다.

젊은 예술인을 키우는 인큐베이팅 역할도 해왔고, 외국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운영해 인적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이런 식으로 활동하는 부산의 문화단체는 '재미난 복수'가 거의 유일하지만 자본력에 대항하기에는 여전히 힘들다.

 

119개월째, 세상은 아직 지루하다

10년 넘게 이어온 활동에서 다져온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재복은 부산에서 열리는 웬만한 공연은 다 기획하고 있다.“공간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는 행사들은 별로에요. ‘탈핵축제’같은 경우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축제 프로그램을 저희가 기획하고 준비했어요. 가치 있기 때문이죠.”

모든 것이 서열화 되고 시장논리에 휩싸인 시대에 재복의 가치는 ‘진정한 재미’에 있다. 사회 주류에 속하기 위해 아등바등 경쟁에서 이기려고 사는 삶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아지트는 서브컬쳐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자유를 억압하는 거대한 것들에 대한 저항의 본질이 있는거죠. 취업기관처럼 변해버린 대학도 요즘 제정신 못 차리고 ‘자신의 안위’만이 목적인 듯 보이는 세상인데 우리까지 비판의 끈을 놓아버리면 안될 것 같아요. 우리의 주된 방법과 대상이 서브컬쳐라면 서브컬쳐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그리고 한국에서의 서브컬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가 정해진 사람들의 특권이 아닌 만큼 일상에서, 관계 속에서 새롭게 발견해 가는 가치이고 더 많은 사람이 주체로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난 복수에 실패라는 단어는 없어보였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맞는 주파수를 찾아 함께하기도 하고 멀어져가기도 하고, 주파수의 영역을 확장해보기도 하며 지루한 세상을 ‘재밌게’만들어보기 위해 매순간 진동하는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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