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간 큰 이야기
작은 공간 큰 이야기
  • 윤종건 취재기자
  • 승인 2013.10.1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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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에게 문화는 전문적인 사람들만 향유할 수 있는 영역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영화와 대중가요가 전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부산 내 다양한 문화와 시민들을 매개하기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하여 찾아가 보았다. 수영지하철 내 잡다한 점포들 사이로 한번쯤 눈길이 가는 그곳. 바로 문화 매개 공간 ‘쌈’이다.

쌈이라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많은 사람들은 ‘먹는 쌈’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쌈은 ‘Suyeong Station Art Mediate Space’의 약자를 따 만든 단어다. 문화를 매개로 모이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문화를 보고, 말하고, 체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를 즐길 수 있어 부산시민에게 문화 사랑방과 같은 공간을 제공한다.

자유로운 이야기를 지향하다

특히 이 공간의 가장 핵심적인 프로그램인 ‘쌈 수다’는 이 공간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마다 부산지역 문화예술인들을 초대해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고 서로 공감한다. 대체적으로 지역에서 10년 이상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을 초대해 시민들과 함께 수다를 떠는 이 시간은 2010년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총 152회(10월 8일 기준) 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다를 나누는 내내 다과를 곁들이면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활발한 질문과 의견을 나눌 수 있어 상호간의 소통을 이룰 수 있다. 특별한 주제도 형식도 없이 말 그대로 수다를 떠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쌈 수다’의 제 1원칙이다. 지난 9월 24일에는 부산일보 편집국 김은영 선임기자(부국장)가 초대되었다. 문화적인 자리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살아온 인생과 기자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뜸 어떤 중년 남성은 그녀가 농사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리고는 다른 여대생이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이처럼 일방적인 정보를 얻는 강연과 달리 중간 중간 자신의 이야기도 하면서 대화가 산으로 갈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이곳 ‘쌈 수다’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이자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지난 9월 24일 ‘쌈 수다’에 참가한 부미사(부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대표 박희정씨는 이날 참가한 이유에 대해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문화와 예술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 인사들과 지역 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쌈 수다의 또 다른 원칙이 있다면 무조건 9시에 끝낸다는 것이다. 7시 30분 즈음으로 이 프로그램의 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김상화 교수(부산예술대)가 초대 손님을 소개함으로써 수다는 시작된다. 그리고 9시 정각이 되면 무조건 수다를 마쳐야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수다자리에서 1시간 30분 만에 끝낸다는 것이 자칫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곧이어 팔도시장 내 생선구이 집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술 수다’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초대 손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편견 없이 문화를 받아들이다

‘쌈’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다. 길을 지나다 잠시 들러 차를 한 잔 해도 되고, 친구와 마주 앉아 책을 읽어도 좋다. 공간에 비치된 문화 예술 관련 자료도 언제든지 이용 가능하며, 비정기적이지만 유익한 문화예술 강좌까지 제공된다. 원하는 모임이나 동아리 활동이 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을 때에는 ‘쌈’을 이용해보자. 소정의 대관료만 지불한다면, 누구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쌈 기획전시’는 지역과 예술 간의 문화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2주마다 젊은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공간 한쪽 면에 전시하는 것이다. 쉽게 전시할 장소를 찾지 못하는 신인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많은 이들에게 보일 수 있어 좋고, 지나가는 시민들은 오며가며 색다른 예술작품을 가까이 접할 수 있어 좋다.

지역문화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다

2009년 12월 처음 문을 연 ‘쌈’은 부산 지역 내 문화예술인들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도시철도가 갖고 있는 한계가 있지만 이 또한 문화와 예술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에 따라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5년간 부산교통공사를 설득한 끝에 결실을 맺게 되었으며, 현재 ‘쌈’의 공간은 부산교통공사가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즉 ‘쌈’은 지역문화예술인들의 노력의 결실이자 지역과 문화계가 힘을 모은 모범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 공간의 대표인 쌈장 남혜련씨는 “지금 부산 지역에는 ‘쌈’처럼 문화매개를 위한 전담 공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도시철도는 시민들이 이용하기에 가장 용이한 곳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앞으로 ‘쌈’과 비슷한 형태의 공간들이 부산 지역 내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쌈’은 문화와 예술을 만들지 않는다. 문화와 예술을 시민과 연결시키는 다리다. 그런 면에서 ‘쌈’은 우리의 삶과 우리의 도시를 다양한 문화로 물들이는 중이다. 도시철도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사람의 감성이 이어지는 공감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시선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으며 대중문화예술이 더욱 자라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도시철도 한 편의 작은 공간이지만 문화와 예술의 큰 이야기가 울려 퍼지는 쌈!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문화매개공간 ‘쌈’ 쌈장 : 남혜련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동 1077번지 수영지하철역 내 수영상가 13호

대표전화 051)640-7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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