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에서 만난 ‘백조가 된 오리’
[기자가 만난 선배]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에서 만난 ‘백조가 된 오리’
  • 김수영 기자
  • 승인 2013.10.11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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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충분한 생각과 고민,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싸움

 

▲ 김&장 법률사무소 해상·보험 및 선박금융 전문 변호사 이재복 동문(해사법학과·88)

 

 이번 292호 ‘기자가 만난 선배’에서는 국내 최대의 로펌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현재 해상, 보험 및 선박금융 분야 전문변호사로 활동 중인 해사법학과 88학번 이재복 동문을 만났다. 이 동문은 방금 의뢰인과의 상담을 마치고 왔음에도 웃음 띤 얼굴로 기자를 맞이해 주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이 동문의 배려 깊은 한마디와 함께 그의 대학시절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쉽지만은 않았던 시작

 육군사관학교의 진학을 꿈꾸었던 이 동문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육사와 같은 특수대학을 고려하던 중 우리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선(대학)지원 후(학과)선택을 했던 당시 대학입시에서 해양대의 모든 학생들이 정복을 입고 생활하는 줄 알았는데 해사대학 학생만이 정복을 입고 다니는 걸 입학 하루 전에 알았다”며 “선택에 대한 고민을 여러 번 했었다”고 말했다. 이 동문은 하숙과 자취를 하던 1∼2학년 시절 방파제를 걸으며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고민과 생각으로 대학생활을 보냈다. 고향이 서울이던 이 동문은 타지생활의 외로움과 힘든 생활에 맞물려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고생의 대가를 얻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2학년을 마치고 간 군대입대 전까지도 갈등을 하고 목적의식이 불분명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하지만 군 제대 후 이 동문은 마음을 다잡았다. “해양대에 진학한 이상 타대학 학생들이 배우지 못하는 해양산업에 대한 공부를 심도 있게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해사법학과 출신으로서 일반법보다는 해상법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그때부터 영어의 중요성을 느껴 영어에 대한 공부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차근차근 자신을 쌓아 갔다. 94년 졸업 당시 4.1의 학점으로 과 수석 졸업을 한 이 동문, 자신의 대학시절을 “암흑속의 긴 터널 그리고 그 이후...”라고 정의 하였다. 이 동문은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그때 스스로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해 피동적으로 생활하고 스스로 도태된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동기들과 쌓지 못한 추억이 많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동문은 부족했던 자신의 대학시절을 떠올리며 “일반적 관심으로는 쉽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은 자신이 하기 나름이다”, “많은 경험을 통해 편견을 깨도록 노력해야한다", "대학생활 많은 생각과 노력으로 발상과 의식의 전환을 이룬다면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말과 함께 "무엇을 했는가? 하는 가치어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인정시킬 수 있는 대학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불안했던 자신의 대학시절에 대해서는 "지금에서 되돌아 봤을 때도 역시 똑같은 고민과 갈등을 하고 행동과 선택 또한 그대로 했었을 것"이라 말했다.

늦지만은 않았던 꿈을 위한 선택

 이 동문은 졸업이후 컨테이너 회사였던 ‘동남아 해운’을 거쳐 현 ‘삼선 로직스 법무팀’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29살 영국 웨일즈의 Cardiff 로스쿨에 학사과정 유학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나름의 안정된 생활이었지만 그는 새로움을 꿈꾸었다. “늦은 나이었지만 더 큰 꿈과 목표를 위해 나 자신만 중심이 되어 고민을 했고 한계 속에서 다른 길을 찾았다”며 “해사 근무 중 선택하게 된 것이 해양 전문 변호사 였다”고 당시 유학결정의 동기를 말했다.

이 동문은 해운 보험·제도의 대부분이 영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영국 법을 통해 계약을 맺는 해운분야의 특성 때문에 영국의 ‘Cardiff 로스쿨’ 진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유학시절, 대학 때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었던 덕분에 바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영어에 대해 별 어려움이 없었다는 그는 “그때를 돌이켜 보면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고 자부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아직도 부족해 영어공부를 한다”며 웃어 보였다. 이 동문은 로스쿨 졸업 후 2001년 런던 Stephenson Harwood 로펌에서 2년의 수습변호사를 거쳐 2003년 9월 영국 정식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Steamship Mutual P&I Club에서 선주상호 보험 변호사로 2006년까지 활동한 그는 현재 김&장 법률사무소의 해상전문분야 영국변호사다.

결실로 이어진 성공의 순간

 이 동문은 지금까지 그가 공부해왔던 해상·해운에 대한 전문 업무팀이 김&장 법률사무소에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김&장의 변호사를 도전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이라 일컬어지는 김&장 법률사무소의 첫 출근 당시를 묻자 그는 흐뭇한 미소로 "피해의식이 강했던 대학시절 내가 생각했던 고민과 번민·아쉬움들을 한순간에 털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또한 "대학과 유학시절 했던 고생에 대한 열매를 모두 맛보던 날"이라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변호사로 성공한 그의 삶에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다른 대학의 법학과를 졸업한 변호사들에 비해 일반법 분야의 지식이 부족해 고민한다는 이 동문. 하지만 그는 그 속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땐 잘 알지 못했지만 해상·해운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변호사일을 하는 부분에 있어 큰 강점으로 작용해왔다"며 "물론 김&장내 변호사 대다수는 소위 서·연·고 법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들이지만 그 속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전문 변호사다"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에 덧붙여 그는 "우리대학 학생들이 해양대라는 특수성을 잘 살려 자신의 역량을 특화시키고 그 근본이 되는 일반화된 지식 또한 바탕으로 하여 특화됨과 일반화가 균형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행복과 꿈은 멀지 않은 자리에

 책상은 물론이거니와 바닥까지 딱 앉을 자리만을 남겨두고 이 동문의 사무실 안은 갖갖의 사건에 대한 서류로 온통 쌓여있었다. 바쁠 땐 최대 맡은 사건이 5~6개로 눈코틀새없다는 이 동문이지만 오히려 바쁨을 즐긴다고 한다. 기자가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이 무엇인지 물었다. "당황스러웠던 사건으로 중국선박가압류에 대한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며 "어느정도 절차와 규정을 지켜 압류조치가 이루어져야하지만 어찌나 급했던지 의뢰인이 직접 압류장을 들고 중국의 항구로 찾아가 출항 준비중 이던 배에 올라탔고 출항을 온몸으로 막았다"는 것이다. 의뢰인과의 소통과 신뢰를 중요시 한다는 이 동문은 "우리나라는 변호사를 너무 어려워 한다. 하나의 파트너로써 변호사도 의뢰인에게 고용된 서비스 직종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사건에 대한 충분한 소통을 통해 의뢰인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신뢰관계의 형성이 기본이다"며 변호사로써 자신의 신념을 말했다.

이 동문은 “특히 패소가 예상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의뢰인과의 지속적 의견 교환을 통해 최대한의 피해를 줄이는 타이밍을 생각한다”며 의뢰인 변호에 대한 자신의 노하우를 말했다. 꿈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마지막질문에 이 동문은 "현 로펌도 좋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해운사무소 개업을 꿈꾼다"며 "로펌의 입장과 이해관계로 인해 선택치 못하는 것에 대해 직접 판단하고 생각하여 역량을 펼침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걱정과 고민으로 불안했던 자신의 대학생활을 미래의 꿈을 위한 발디딤으로 꾸려나간 이 동문. 그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재밌고 삶이 행복하다며 모든 것이 늦지 않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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