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등수를 정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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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종건 취재기자
  • 승인 2013.12.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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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표준어와 촌스러운 사투리 무엇이 기준인가?

1994년 당시를 생생하게 그려낸 <응답하라 1994>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요새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삐삐’가 등장하는가 하면, 소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한다. 특히 부산을 배경으로 경상도 사투리만 등장시킨 <응답하라 1997>과 달리, <응답하라 1994>는 서울을 배경으로 전국 팔도 사투리가 찰지게 등장한다. 어딘가 착착 감기는 경상도 사투리,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 순박한 충청도 사투리까지. 서울로 상경해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하지만, 숨길 수 없는 고향말의 흔적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2013년 현재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인하대 공대에 재학하기 위해 부산에서 상경한 박혜은 학생(조선우주공학․13)은 “주위를 지나가는 친구에게 습관적으로 ‘밥 뭇나?’하고 물었더니 주변사람들이 웃고 놀렸다”며 “고향에서는 평소에 쓰던 말인데 주위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고 약간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사투리를 밀어내는 우리사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몇 년 전부터 사투리교정학원, 사투리교정스터디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특히 취업준비생들의 수요가 많은데, 최종면접까지 가서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지역 대학에서는 표준어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2년 전부터 부경대 언어교육원에서는 ‘표준어 구사능력 향상과정’을 진행해왔다. 5주간 진행하는 이 과정은 카메라 테스트를 활용해 학생들의 발성과 표정을 진단한다. 이를 바탕으로 호흡과 강세, 발음, 3분 스피치 등의 훈련으로 표준어 구사능력을 높이고 면접하는 회사의 직종에 따라 맞춤형 이미지 트레이닝을 가능하게 한다.

동아대의 경우 올해 초부터 여대생을 대상으로 3주 코스의 ‘사투리 교정 클리닉’을 개설했다. 이 클리닉에 참가한 동아대 이수영 학생은 “우리가 아무리 서울말을 노력해서 쓴다고 해도 우리는 서울말을 쓴다고 생각하는데, 면접관들이나 서울사람들이 너희는 아직까지 사투리가 많이 느껴진다는 말을 들어서 클리닉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대성 교수(동아시아학과 외래교수)는 “말투가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취업을 위해 사투리를 교정해야 한다는 것은 쓸쓸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는 사투리

현재 지방에 고향을 두고 있는 학생들조차도 각자 지역의 고유 사투리 단어들을 물으면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부산에 고향을 두고 있는 허자평(국제통상․13)학생은 “할머니세대에서 사용하던 경상도 고유 사투리를 지금 우리세대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이 종종 있다”며 “몇몇 단어와 말투는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지만 고유 사투리 단어 같은 경우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는 제주도사투리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유네스코는 2011년 제주도 사투리를 ‘소멸위기 언어’로 분류한 바 있다. 최근 제주도 국어문화원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되는 120개의 대표 어휘를 선정해 중․고교생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10% 미만의 인지도를 보인 어휘는 전체 120개 중 45개나 됐다.

 

사투리는 분명 가치 있는 언어다

사투리가 갖는 학문․문화․역사적 가치는 너무도 분명하다. 문학의 경우 작가가 자신의 과거 경험을 문학에 녹여내는 장치로 사투리만한 것이 없다. 사투리엔 당시의 상황이 배어 있고 표준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의미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채만식은 소설 <천하태평춘>에서 윤 영감의 괴팍한 성격과 추측성 어투를 표현하기 위해 전라도 사투리를 활용했다. 사투리를 시어로 많이 활용한 박목월은 시 <사투리>에서 ‘오라베(오빠)’, ‘이슬마꽃(쥐참외 꽃)’ 등의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해 향수를 표현했다. 또한 강원도 사투리는 김유정의 <봄봄>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충청도 사투리는 이문구의 <관촌수필>에서 작품의 맛을 살린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도 사투리는 분명 가치 있는 언어다. 경북대학교 이상규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사투리를 부정하는 것은 언어의 우열을 매기며 인류가 구축해온 지식 정보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사투리의 가치가 명백한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사투리를 평가 절하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1933년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한 이래로 우리사회는 말의 표준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다. 세월이 흘러 국립국어원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 원칙을 내 놓았고, 한정된 표준어 규정과 표준어 중심의 교육정책은 사투리를 점점 위축시켰다. 뿐만 아니라 1970년대는 교사들이 표준어로 수업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을 정도였다. 상황이 계속되자 사투리를 촌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자연스레 우리사회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대성 교수는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개선’을 촉구했다. 그는 “현대 사람들은 표준어는 세련된 말, 사투리는 그보다 촌스럽거나 그 하위에 있는 언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말투에서 발생하는 위계적인 인상이나 생각에 대한 문제의식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TV드라마를 보면 저학력자나 서민들을 그릴 때는 사투리를 주로 사용하면서, 고학력자나 고소득층은 표준어를 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우리 사회의 사투리 의식개선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방증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사투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김 교수는 “사투리의 필요성”을 꼬집었다. 사투리는 본래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언어를 말한다. 그렇기에 그 지방만의 생활양식과 삶이 묻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양식은 획일화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정보를 평등하게 얻을 수 있다. 또한 우리사회는 대도시 중심사회로 개편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삶의 패턴이 대도시 중심으로 변하다 보니 사투리가 별로 필요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김 교수는 “한 국가의 말투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할 일이며, 사투리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 것은 언어적으로 큰 위기다”라고 말했다.

 

사라지는 사투리를 붙잡기 위한 노력

사회구조적 변화에 따라 사투리 소멸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월간 <전라도 닷컴>의 경우 지면에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지역민만의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매떼기를 잡아 보먼 이리 등거리에다가 쪽바리 엔내들 기모노 맹티로 허리에 감아 논 거시 있는디...”와 같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최근에야 ‘전라도 닷컴’을 알게 된 김해나(국제통상․13)학생은 “지역민을 위해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선하고 재밌다”며 큰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중문화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올해 3월에 개봉한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는 제주도 사투리 100%로 제작돼 화제가 됐다. 대사를 해독할 수 없는 다른 지역 사람들을 위해 영화엔 자막이 같이 나온다. 또한 부산 지역의 극단 ‘자갈치’ 역시 창단 이래 무대에 상연되는 극 모두를 부산사투리로 공연하고 있다. 1986년 ‘부산경남의 지역민들과 함께 우리의 문화를 가꾸고 키워나간다’라는 취지로 창단된 이 극단은 지금까지도 지역민의 삶과 애환을 다룬 마당극을 꾸며왔다. 이 극단의 대표 전성호 씨는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극을 꾸미다 보니, 이야기를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사투리를 사용한다”고 전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사투리를 이용한 연구와 사업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사투리를 사용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사투리는 표준어와 다를 뿐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당당하게 사투리를 말하고 이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정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충분한 능력을 갖췄으나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취업에서 밀려나는 청춘들의 모습도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한 국가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존중하고 사투리의 가치를 옹호하는 노력이 계속될 때, 우리는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너른 선진사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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