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대에 발을 디딘 최초의 여학생
해사대에 발을 디딘 최초의 여학생
  • 윤종건 취재기자
  • 승인 2013.12.02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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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5월 15일 본지 115호>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게다가 ‘최초’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해운업에 여성이 진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여기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진 이가 있다. 바로 우리대학 91학번 해사수송학과 권금향 동문이다. 누구하나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여성의 길을 만들어가야 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아치섬에 사는 해사대 여학생들의 어제와 오늘

[1993년]

1991년 우리대학 해사대는 처음으로 여학생 1명을 선발했다. 그녀가 바로 권금향 동문이다. 당시 보도된 기사를 보면 학교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멀끔하게 제복을 입은 해사대 남학생들 사이로 홀로 드러난 짧은치마는 많은 학생들에게 궁금증과 어리둥절함으로 다가왔다. 이에 권 동문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학생들이 내가 단지 해사대 첫 여학생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의식하는데 그런 선입관을 가지고 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며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2013년]

2013년 현재 우리대학 해사대 여학생 입학 정원비율은 15%에 달한다. 아치섬을 거닐 때면 제복 입은 남학생들 사이로 당당히 걸어 다니는 해사대 여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직은 남학생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지만, 해운업이 여성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과거에 비한다면 괄목할만한 성과다. 박희현(해양플랜트운영학과․13) 학생은 “아직까지는 여학생의 비율이 그리 높지만은 않지만 여학생들끼리 끈끈한 정도 있고, 남학생들과도 막역하게 지내기 때문에 여학생으로서의 특별한 의식은 없다”고 말했다.

#2. 원양항해 실습을 떠나며...

 

[1993년]

당시 권동문은 3학년으로 원양항해 실습을 앞두고 있었다. 당차게 시작했지만 승선을 앞둔 2학년 말 그녀는 많은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생활문제였다. 이에 대학에서는 1천만원을 들여 샤워실과 화장실이 구비된 방을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바다호 실습생과 마찬가지로, 바깥소식과의 접촉과 정보교환 그리고 고민토로의 대상이 없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권 동문은 인터뷰에서 “선장님과 사관들과 잘 어울려 지내기 때문에 승선생활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여학생이나 여직원이 단 한명이라도 한바다호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시 기사는 권 동문을 ‘여자를 밝히는 여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2013년]

원양항해 실습은 해사대 3학년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수업일정이다. 학교 실습선에 승선 해 두 번의 실습을 다녀왔다는 이미연(기관시스템공학부․11) 학생은 “과거와 달리 실습선에 여자가 30명 정도여서 딱히 외롭지 않다”며 “외국에서도 와이파이와 핸드폰 사용이 가능해 과거의 불편함은 거의 해소되었다”고 전했다. 또한 “멀미가 심한 편이라 멀미약만 한 달 치를 챙겨갔는데, 멀미도 전혀 안 하고 어려웠던 점 없이 동기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왔다”고 말했다.

#3. 미래를 꿈꾸며...

[1993]

최초의 여학생이자 첫 실습생이다 보니 교수와 동기들, 해운에 종사하는 사람과 집안 식구들까지 권 동문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처음으로 경험대에 오른 실험적 인물이자 내년 후배들의 개척자 노릇까지 해야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권 동문은 인터뷰에서 “아직까지는 배를 몇 년 동안 타고 싶고 직장은 육상에서 잡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여성이 해운업에 진출한 사례가 극히 드문 당시 상황에서 진로 선택에 고민이 많았을 최초의 해사대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2013]

시대가 변한 만큼 해사대 여학생들이 진출할 수 있는 해운분야 또한 넓어졌다. 해사대를 나와 배를 타거나 육상해운회사에 근무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최근에는 교직이수을 통해 교원으로도 진출할 수 있어 선택의 범위는 더 넓어졌다 할 수 있다. 이미연 학생은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경쟁력 있는 국가의 재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면에서 여성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 하다”고 말했다.

 

2014학년도 해사대는 24번째 여학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정해진 규율과 획일화된 제복이 조금 힘들지라도 먼 미래를 내다보며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그녀들. 먼 훗날 검은 제복 뒤에 숨겨진, 그녀들의 보석 같은 성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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