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선택하라 그리고 끝까지 해보라!
[안녕하세요 교수님!] 선택하라 그리고 끝까지 해보라!
  • 이동건 기자
  • 승인 2013.12.06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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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공간건축학과 도근영 교수님

선택하라 그리고 끝까지 해보라! - 해양공간건축학과 도근영 교수님

역사를 좋아했지만 공학도의 길을 택한 사람
한 가지를 선택해서 끝까지 해봤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는 사람

▲역사서와 함께한 도근영교수


건축 외길인생 30년 도근영 교수의 인생을 들어봤다.

 

■대구 출생
■1988년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학사)
■1996년 일본 동경공학대학 사회개발공학전공(석, 박사)
■1996년~1998년 삼성물산 건설부문 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
■현재 산학협력단 부단장


Q. 안녕하세요. 교수님! 교수님은 처음부터 건축 공학도를 꿈꾸셨나요?

사실 나는 역사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집이 멀어 자주 어울리
기 힘들었고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았다. 이때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지금도 로마인이야기, 도쿠가와 이에야스 전기 같은 책은 한 달에 2~3권 씩 읽기도 한다. 대학 진학시 좋아하는(역사)일을 할 것인지, 잘하는(공학)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나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공학전공을 하기로 결정 했고 책상에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움직
일 수 있는 건축 전공을 택했다


Q. 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잘하는 일을 선택하셨나요?

물론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라면 그만한 축복도 없겠지만 많은 사람
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나 또한 그렇다. 보통 한 가지 일을 직업으
로 삼아 하다보면 그 일이 싫어지기도 한다. 이런 힘든 일을 이겨내는 데
좋아하는 일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만약에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좋아하는 일이 싫어하는 일이 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역사)일은 취미로 남겨두고 관심 있고 잘할 수 있
다고 생각했던 건축공학을 택했다.


Q. 어려운 선택을 거친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나의 기억속의 대학생활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것 이었다. 80년대 중
후반 연세대는 민주화시위의 중심지 이었고 학교 입구 공학관에서 수업
을 들었던 나는 매일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등교해야 했다. 내가 3학년이
던 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에 이어 6월 연세대 입구
에서 집회 중 연세대 학생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결
국 사망하는 일이 벌어져 이후의 대학생활도 최루탄 냄새속에 수학을 해
야 했다.


Q. 보통 건축이라 하면 설계를 떠올리는데 환경설비를 택하게 된 계기는?

1, 2학년 수업을 듣다보니 설계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설계
를 하면 다양한 구상이 나와야 좋은데 나는 이상하게 그림을 그리면 사각
형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러던 중 3학년 때 환경 설비에 관한 수업을 듣
게 되었고 설계가 사람의 외형과 장기의 위치를 구성하는 일이라면 설비
는 신경과 근육을 배치하고 운용하는 것을 고민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관
심을 가지게 됐다.


Q. 졸업 후 일본의 동경공업대학으로 유학을 가셨는데 특별히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3학년 환경설비 수업을 들으며 일본 유학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영어에 자신이 없었고 기후조건이 비슷한 일본에서 배우면 우리나
라에서도 적용이 쉬울 것 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당시 형이 일본에서 유학
을 하고 있었기에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학원 선택에는 대학 진
학시와 마찬가지로 먼저 생활하고 있던 형이 추천해 준 곳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 한 것이 제일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학업에 있
어 형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준 것 같다

 

Q. 병역기간을 제외하고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쉬지 않고 이수 하신 이유는?

석사과정 이후 바로 실무경험을 할지 아니면 박사과정까지 더 공부를 하
고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당시 공부하는 김에 끝까지 가보고 선
택을 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바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산 중턱
에서는 정상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이때 고민 하면 넘어 보지도 못하
고 평생 후회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쯤은 고개를 넘어 봐야하고 이
경험이 그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Q. 박사과정이후 우리대학에 들어오시기까지 어떤 일을 하셨나요?

박사과정을 끝내고 실무경험을 하기 위해 바로 삼성물산 건설부문 연구소에 들어갔다.
당시 부산 삼성 자동차 공장의 결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쏟았던 것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하지만 2년 정도 연구소에서 지내보니 내 생각과 실상은 많이 달랐다.
나는 교수처럼 하나의 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적으로 맡아서 해내고 싶었지만
당시 연구원은 연구를 위탁하고 관리하는 일이 더 많았다.
이에 교수의 꿈을 가졌고 당시 해양대에서 설비전공 교수를 필요로 해 오게 되었다.


Q. 강의에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현상의 과정에 집중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과정을 알아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수정 할
수 있고 다른 일에 응용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옥의 대청마루가 시원한 이유는 뒷마당과 앞마당이 있어서보다는
풀이 심어져있는 뒷마당과 모래만 있는 앞마당의 온도차로 인해 바람의 이동이 일어나기 때문
이라는 식으로 강의한다. 그리고 발표수업을 많이 하는데 학생들이 수많은 사례들을 직접 탐구 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남을 설득하는 일인 건축에서 발표능력은 중요하다.
나 또한 삼성 입사 때 발표에서 많은 어려움을겪어 강조 하고 있다.


Q. 16년 동안의 교수 생활 중 기억에 남는 학생들과의 추억은?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대학원 과정이 없었다. 이에 학부생들과 함께 하
회마을에서 일주일간 자료 측정을 했다. 연구 특성상 아침 6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자료를 측정, 정리하고 자는 강행군을 이어 나가야 했는데 마지
막 날 숙소에서 뒤풀이를 하며 학생들과 나눈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고 이
시간이 가끔 그립다.


Q. 학생들에게 평소에 하지 못하셨던 얘기는 없으신가요?

먼저 진로에 대해 조금 더 일찍 능동적인 자세로 생각하면 좋겠다. 원하는 것을 찾고 이루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아리 같은 활동에도 참여해봤으면 좋겠다. 나의 경우 인
생을 살아오며 아쉬운 점이 동아리와 같은 활동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
해서는 다른 활력소가 되는 활동이 필요하고 이런 경험을 통한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은 삶을 살
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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