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대에게 던지는 아날로그적 물음
디지털세대에게 던지는 아날로그적 물음
  • 서제민 기자
  • 승인 2014.02.26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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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12월 10일 고려대학교 정경관 후문에‘안녕들 하십니까?’란 제목의 대자보 한 장이 붙었다.“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란 문장으로 시작한 글의 서두는 담담했다.
하지만 ‘철도 민영화’를 언급하고 ‘비정규직’을 언급하고 ‘88세대’에게“모두들 안녕하십니까!”란 물음으로 끝맺은 대자보는 결코 담담하지 않았다.

 

 

 한국을 넘어 프랑스까지 곳곳에서 들려온 대답

 

 

 

한 장의 대자보가 던진 물음은 곳곳에서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최초의 대자보가 붙은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는 이어지는 대자보로 인해 ‘대자보길’이 만들어졌다. 페이스북 팬페이지 ‘안녕들하십니까’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110여개의 대학(2012년 12월 19일 기준)에 대자보가 붙었다. 또한 안녕에 대한 답은 국경너머로도 이어졌다. 미국의 UC버클리, 일본의 도쿄대, 캐나다의 British Columbia 대학, 프랑스, 독일 등 곳곳에서 유학생과 이주민들의 대자보가 이어졌다.

 

 

 

 대학에만 머무르지 않은 대자보
대자보의 파장은 대학생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각계각층으로 퍼져나갔다. 밀양의 송전탑 건설현장에는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주민의 대자보가붙었으며, 제자들의 물음에 각 대학의 교수들은 대자보로 답했다. 이에 대해 부산대학교 김석준 교수는 대자보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열어주지 못한 기성세대이자 교수로써 미안하다’며 ‘모두가 더불어 안녕할 세상을 꿈꾸는 여러분이 있어 진정 안녕할 내일이 앞당겨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중앙대에서는 학칙에 따라 100만원이라는 벌금에도 불구하고 청소 노동자들의 대자보가 붙었으며, 교학사 교과서 선정에 반대하는 수원동원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였다.  이에 대해 사직여자고등학교 2학년 이예라 학생은 “또래 학생들이게시한 대자보 글들을 읽다보니 학업을 핑계로 두 눈과 귀를 막고 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며 “깨어있는 고등학생으로써 제가 할 수 있는 책임
을 다해야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대자보 물결에서 SNS가 큰 역할을 하였다. 페이스북 팬페이지 ‘안녕들 하십니까’는 개설한지 하루도 안 되어 ‘좋아요’의 수가 9천여 명에 달했으며 현재는 25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또한 단순한 팬페이지의 역할을 넘어 ‘시가행진, 플래시몹, 대자보 백일장’ 등의 다양한 활동을 이끌었다. 현재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는 곳곳의 대자보를 엮어 출판을 준비하는 중이다.

 

 

 

 

 

 

 

 

 

 

 

 

 
▲우리대학 정류장에 붙은 대자보
 

 

 

 

아치섬에서도 ‘안녕’을 답하다

 

 

 


 서울에서 날아온 안녕하냐는 물음에, 아치섬에서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답이 들려왔다. 본인을 한국해양대학교에 다니는 10·종훈 이라고 밝힌 학생은 고려대의 자보를 언급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대자보에서는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길 질문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누구든지 학생이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고 전했다. 잔인한 침묵이 부끄러워 이제야 답한다는 종훈씨는 12월 19일 자친 철거하겠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물었다. 여러분은 안녕‘들’ 하십니까? 종훈씨의 대자보가 붙고, 여러장의 대자보가 더 붙었지 만 며칠 뒤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들에게 ‘안녕’을 물어보다
 졸업을 앞둔 대 2013년의 마지막을 뜨겁게 달궜던 대자보 열풍, 주위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캠퍼스를 뛰어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조현겸(기관시스템공학부·14) 학생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으로써 모르는 것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안녕들 하십니까’란 계기를 통해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좋았다”

 

 

 

이승환(해사법학부·13) 학생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대자보라는 형태로 말하고 교류하는 것인데 좋지 않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정종수(충남 청양) 학부모님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의 학부모로써 학생들이 그 동안 지나치게 침묵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찬성한다”

 

 

안녕이라는 물음으로 교감을 원하는 대학생들
안녕들 하십니까? 질문은 하나였지만 돌아온 답은 대자보를 쓴 사람 수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각자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과 생각들이 이번 계기로 인해 머리 밖으로 분출되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대자보가 우리들의 불씨를 지폈을까? 여기 서울의 한 대학에 걸린 대자보의 전문이 있다.

 

 

 

이슈가 되는 큰 문제에 관한 얘기가 전혀 없다. 안녕하고 싶은데 안녕할 수 없는 이유를 평범하지만 조금은 슬픈 자신의 일상을 보여준다.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고, 무심하게 걷기를 좋아하며, 주말이면 오후 2시까지 잠을 잔다는 그는 ‘우리네 삶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을텐데...’라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안녕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다른 대학생들에게 안녕한가를 묻고 있다.

 

 

 

페이스북 팬페이지 ‘안녕들 하십니까’에 올라온 고려대 대자보에는 많은 댓글이 달려있다. 그 중 많은 공감은 얻은 댓글은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라는 책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이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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