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문학을 사랑하는 공학도
[안녕하세요 교수님!] 문학을 사랑하는 공학도
  • 김태훈 기자
  • 승인 2014.05.19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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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공학부 남청도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코너는 학우들의 가까이에 계시지만 학우들이 너무도 모르는 교수님들께서 살아오신 삶에 대해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공학도 기관공학부

남청도 교수님

 

진주 출생

한국해양대학교 (학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기계과 (석사, 박사)

전 해사대학 학장, 해사산업대학원 원장, 해양경찰교육원 원장, 해양안전학회 논문 심사위원장, 수산해양포럼 공동대표, 국공립해양수산대학장협의회 회장

현 부산교수포럼 부회장, 대한기계학회 부산지부장, 전략물자 판정 자문위원

 

항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문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남청도 교수님의 인생을 들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교수님! 교수님은 어떤 과정을 통해 기관 공학을 전공하게 되셨나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해대를 진학하였다. 당시 우리대학에는 항해학부와 기관 공학부만이 존재했는데 이왕 배를 타는 거 선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항해학부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1학기 초 기관 공학부 교수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사회진출에 기관부가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어 전과를 하였다. 하지만 3학년 실습 때 배를 타게 되니 기관부의 일이 힘이 들어 후회가 되기도 했었다.

 

Q 대학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2학년 여름방학 때 해양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물위에서 네 시간 이상 떠있을 수 있는 학생 80여명을 동원해 현 부산 해사고 앞 훈련소장에서 송도 해수욕장까지의 원영코스를 보트의 도움 없이 주파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송도해수욕장에 상륙하지 말고 도로 헤엄쳐 학교로 복귀하자 건의 하였으나 아무도 동의하지 않아 많이 아쉬웠다. 또 4학년 1학기 중간고사 바로 전날 10월 유신 반대운동이 거세져 휴교령이 내려졌었다. 2학기가 상당히 지난 후에야 귀교하게 되었는데 해기사가 부족하다는 연유로 조기 졸업을 하게 되었다.

 

Q 교수님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아버님이 해군 복무 중에 일찍 돌아가셔서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선무였다. 해외송출을 나가게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는데 다행히 일본 해운회사인 SANKO LINE에 입사하여 4명의 동생들 모두 대학까지 마치게 뒷바라지 할 수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때쯤 해상에서는 더 이상 자기발전이 없다고 생각해 공부를 하고자 하선하려 했다. 하지만 회사 전무님이 사표를 수리해주지 않고 1년간 해운교육 부분을 맞게 하였다. 그때 생각해보니 육지에서 해운 교육을 하다 보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우리대학 공채 교수모집으로 교직에 들어서게 되었다.

 

Q 뒤늦게 대학원으로 진학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 졸업생 중에는 대학원으로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해외송출을 원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군복무를 마치고 해외송출을 나가서 기관장에 오르기까지 오랜 시간 승선해 있으면서 대학원으로 진학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교직에 들어와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전공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부산대학교 대학원의 기계과로 진학을 결정하였다.

 

Q 유럽 여행에 대한 에세이를 쓰셨는데 유럽 여행은 어떤 동기로 하게 되셨나요?

연구를 위해 자매대학인 영국 카디프 대학에 파견을 나갔었다. 파견되어 있는 동안 유럽의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가족여행 한 번 간 적이 없는 나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아 캠핑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고 에세이집까지 쓰게 되었다.

 

Q 해양문학의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평소 빵만으로는 사람이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해 승선 생활동안에도 늘 출판물들을 정기 구독했었다. 교직에 들어와 ‘해양과 문학’이란 교수 수필 동인회를 만드는데 참여해 작품을 쓰게 되었다. 후에 해양문학집에서 운영을 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도움을 보태고자 시작했는데 엉겁결에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회장을 맡은 후 실상 도움을 주는 이도 적었고 단체의 운영도 열약하여 이끌어 가는데 있어 어려움이 참 많았다. 하지만 이미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보고자 했다. 그간의 노력으로 수필집 17호까지 발행 할 수 있었고 동인회도 많이 개선될 수 있었다.

 

Q 어떠한 교수로 학생들에게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옛날에는 학생들에게 엄하고 원칙을 준수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하지만 이런 교육법보다 좀 더 학생들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학생들의 생각을 공감해주고 거리감 없이 다정했던 교수로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학문적으로도 성취가 있고 진로와 꿈에 다가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교수가 바람직한 교수상이라고 생각한다.

 

Q 오랜 교직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처음 대학에 적을 두면서 세계 저명 학술지에 나의 이름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었다. 하지만 실습선에 있는 동안 연구에 힘을 쏟을 수가 없어 목표를 이루기 힘들었다. 하지만 오랜 노력 끝에 작년 유체역학 저명학술지 SAME 11월호에 나의 논문이 등재되었고 꿈을 이루게 되어서 기뻤다.

 

Q 북극항로 개척에 어떻게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해양 수필을 쓰는데 수필의 재료로서 북극을 탐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북극항로에는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가보지 못해 무척이나 아쉬웠다. 계속 기회를 찾던 도중 올해 북극항로 시범 운항에 전문가로서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와서 시범운항의 참여하게 되었다.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학창시절은 자기인생에 있어서 가장 황금의 시절이다. 뚜렷한 꿈을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지 말고 구체적인 꿈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꿈에게 다가가기 위해 4년 동안 전략을 짜는 시간이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이뤄 나갈 수 있는 목표를 바로 알고 그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김태훈 기자 wanx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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