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만큼 참았다”
“참을 만큼 참았다”
  • 김수영 기자
  • 승인 2014.05.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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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없이 자유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갈 표현의 공간 ‘대나무숲’

861년 신라 제48대 경문왕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바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비밀을 참지 못한 이발사는 대나무 숲 가운데로 들어가 이를 외쳤다. 그 후 바람이 불 때면 항상 들린다는 그 소리. 무려 1143년이 지난 2014년 이곳 조도에도 여전히 그 이야기가 들리는데...

 

대나무를 심자

 대나무숲은 12년 9월 ‘출판사X’라는 트위터 계정에서 시작되었다. 계정을 통해 한 출판사 직원은 회사의 부조리를 폭로했고 ‘사장이 직원들을 소집했다’는 마지막 말로 이 계정은 사라졌다. 그 후 최초의 대나무숲인 ‘출판사 옆 대나무숲’이 탄생했고 ‘방송사 옆 대나무숲’, ‘디자인회사 옆 대나무숲’ 등 유사한 계정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렇게 시작된 ‘대나무숲 옆 ㅇㅇ’은 익명성이라는 특성상 평소 말하지 못했던 불만들을 표현하게 만들었고 그 흐름은 ‘대학가’를 초록빛으로 물드렸다. 크게는 대학단위부터 작게는 학과, 학번단위까지 현재 ‘대나무숲’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된 페이스북 페이지만 하더라도 100개에 달한다.

 

▲ 대나무숲의 첫 번째 사연

조도에 심어진 대나무

 지난 2월 28일 우리대학에도 첫번째 대나무가 심어졌다. ‘수영강사가 멋져 설렘으로 레포츠센터에 간다’는 글을 시작으로 한국해양대학교 대나무숲은 현재 3100개 이상의 페이스북 ‘좋아요’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재학생이 6764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대나무숲은 2명중 1명꼴로 ‘너도 나도 안다’는 우리대학의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으로 떠올랐다. 관리자는 “4개의 단대를 아우를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필요함을 느꼈다”며 “학교 홈페이지는 접근성에 어려움이 있어 손쉽게 교류가 가능한 페이스북 페이지로 소통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계기를 밝혔다.

 이종민(조선기자재공학부․13)학생은 “자유로운 의사표현으로 의견공유의 계기가 되어준 것 같다”며 만족을 표현했다. 하루 최대 200개의 사연을 올려봤다는 관리자는 지금의 활성화를 위해 나름의 고심도 있었다. 관리자는 “페이지 첫 개설 당시 부족한 학생들의 호응에 동기를 비롯한 학과 내 사람들의 도움이 컸었다. 하지만 50개에 못 미치던 사연이 지금은 150개 가량 올라온다”며 높아진 대나무숲의 인기를 실감했다. “익명의 관리자로 남을 계획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 특징의 많은 부분을 페이지상에서 힌트로 드렸기에 더 이상 밝힐 필요는 없을 것 이라 생각한다. 궁금하다면 그라찌에 에서 빨간/주황 모자를 쓰고 있을 자신을 찾아보라”며 힌트를 던졌다.

 

▲ 휴강공고가 올려진 대나무숲

해대인의, 해대인에 의한, 해대인을 위한

 쉬운 접근성과 작성자를 알 수 없는 익명성의 보장은 학생들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의견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사소하지만 게재된 사연들의 빅재미는 대나무숲의 기본적 매력이다. 용기 없는 그대들의 달달한 그녀/그놈 찾기부터 사연의 주인공과 작성자를 유추하는 지인 찾기, ‘너 아니야?’ 하는 자작스멜 의혹까지.

 대나무숲은 우리들에게 은은한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나 관리자의 댓글 센스는 학생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이에 관리자는“나도 모르게 내재적인 센스가 튀어 나올때가 있다”며 웃어 보였다. 또한 재학생만의 참여가 아닌 졸업생, 휴학생 심지어 교수님까지 대나무숲을 가꾸어가는 광범위한 해대인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특히나 우리대학의 대나무숲 활성화는 ‘소통공간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 타 대학의 경우 서울대-SNUlife, 고려대-고파스, 부산대-MYPNU 와 같이 학생간의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대학 홈페이지의 경우 5~6천 건의 일일접속자수를 기록하지만 학생들의 의견이 게재되는 자유게시판은 평균 40~50건으로 저조한 조회 수에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다. 그러나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의 경우 4000건 이상의 사연을 기록하고 있다. 서형원(국제통상학과·13)학생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대나무숲과 함께 한다”며 “대나무숲을 자주 찾아본다”고 말했다.

 

▲ 대나무숲에 중독된 학우

대나무를 베는 양날의 칼

 대나무숲의 재미와 긍정적 요소는 한편으로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유독 ‘ㅇㅇㅇ 관심있어요~’와 같은 사연이 게재된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의 주된 흐름으로 대나무숲이 다양한 내용을 담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으로 대나무숲의 익명성 보장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가능하게 하지만 일명 ‘저격글’과 같이 특정인을 비난하는 글을 만들기도 한다. 노현(해운경영학부․13)학생은 “익명성을 악용한 허위사실 게재와 같은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운영자 역시 “양치기 일화처럼 대나무숲에서 익명성이 남용된다면 결국 진실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며 비밀이야기에 진실성이 사라지는 대나무숲을 우려했다.

 

무럭무럭 자라라

 ‘보내진 사연의 선별’, ‘관리자의 중립적 입장요구’, ‘사연 다시보기의 편리성’ 등 대나무숲이 더 발전된 소통의 공간이 되길 기대하는 학생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운영자는 앞으로의 대나무숲 운영에 대해 “페이지는 홀로 만들었지만 이제는 학생 절반이 이용하는 페이지로써 해양대 학우들의 페이지가 되었다”며 “그만큼의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대나무숲을 사랑하고 걱정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며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해대인을 위한 무한 정보제공 페이지 ‘해대방파제’ 

우리대학의 또 다른 페이스북 페이지 ‘해대 방파제’의 관리자 서대일(해사법학부․11)학생을 만났다. 학내 아라미, KT마케터, 부산univ엑스포 기획단 활동까지 평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던 그는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 해대생들을 위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페이지를 만들었다. 식단, 날씨, 대외활동의 단순한 정보제공부터 <해양대 근처 꽃 시장 탐방>, <국제대 과잠 대결>까지 다양한 컨텐츠 제공을 위해 노력중이다. 페이지 운영에 대해 그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운영자를 모집하여 학우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해대생이라면 챙겨야할 필수페이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조도의 대나무숲은 여전히 뜨겁다. “앞으로 재학생뿐 아닌 졸업생, 교직원, 교수님을 포함한 모든 해대인들의 소통창구가 될 수 있길 바란다”는 운영자의 말처럼 대나무숲이 함께 나누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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