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라는 고리로 인연이 된 그들 -부산향토학교
‘배움’이라는 고리로 인연이 된 그들 -부산향토학교
  • 김수영 기자
  • 승인 2014.05.19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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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둘씩 사람들이 들어선다. 현재 시각은 오후 7시.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30분 일찍 나오신 아주머니도 보인다. 힘든 하루일과를 마쳤지만 그들의 열정은 이곳에서 다시 한번 불태워진다. 부산진구 범천2동 통일회관 7층에 위치한 ‘부산향토학교’. 이곳에서 그들은 배움을 주고 받는다.

 

▲ 향토학교의 지나온 역사를 보여주는 학급일지

스물여덟번째 졸업식

 86년 5월 개교한 부산향토학교는 올해로 28년째를 맞이한다. 대학생을 비롯해 교직생활을 퇴직하신 선생님으로 구성된 23명의 자원봉사자와 40대부터 70대까지의 연령을 가진 40명의 학생이 향토학교의 주인이다. 얼핏 보면 학생들의 높은 연령대가 의아할 수 있지만 그들의 가방 속 담긴 책을 보면 답은 간단하다. 향토학교를 통해 부산에 정착한 다문화가정 주민은 한글을, 중/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어머니들은 수학, 영어 등 필요과목을 배운다.

 향토학교의 권오룡 교장선생님은 “예전에는 영도에 향토학교가 있어 많은 해양대학생이 자원봉사를 왔었다”며 찾아간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600명의 학생이 거쳐 간 부산향토학교는 올해로 스물여덟번째 졸업식을 준비중이다.

 

배움이 있는 곳에 찾아온 그들

- 지금이라도

 향토학교를 처음 찾아간 그날 어디선가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읽어가는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를 찾아 들어간 교실에는 왠 할머니 한분이 앉아 글을 읽고 있다. 78세 할머니는 이제 막 한글을 배우고 있다. 할머니는 “어릴 적 육남매로 태어나 가난한 집안형편에 이제야 글을 배운다”며 멋쩍은 미소를 보이셨다. 간혹 글자와는 다른 소리가 읽히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교재 ‘메밀꽃 필무렵’에는 막힘이 없다.

 스물아홉 방앗간과 장삿일을 시작으로 4남매를 키우신 할머니는 자식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그 중 큰 아들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현재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배우지 못했던 어릴 적 생각에, 자식들에겐 배움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며 자식을 키운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회상했다. 쉬엄쉬엄 하라는 아들의 말에도 할머니는 “늙은 나이에 금방 금방 까먹는다”며 주중 영도우체국에서 향토학교까지 한 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매일같이 나온다. 늦은 배움이지만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고 말한다.

 

▲ 슈퍼맘 네자매와 교장선생님의 토요수업

- 슈퍼맘 네 자매

 교실에 앉은 그들의 눈빛은 한곳을 향한다. 바로 칠판에 기록된 선생님의 필기. 성(姓)도 직업도 다르지만 현재 중/고입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네명의 슈퍼맘을 만났다. 학생이라는 명찰 외에도 한복공장 사장, 분식집 아줌마, 주부는 그녀들이 가진 또 하나의 이름이다. 바쁜 일상에도 매주 토요일이면 이렇게 학교를 찾아온다.

 그녀들에게 학교는 ‘작지만 배움을 실현하는 곳’, ‘어렵지만 보람을 느끼는 공간’, ‘알아간다는 즐거움을 주는 장소’라 정의 내려진다. 더 나아가 스무살 적 대학생인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그들이지만 지금은 대학진학이라는 꿈도 생겼다. 자녀들에게 “엄마도 그것 안다”는 대답을 할 때 배움의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이렇게 향토학교는 그녀들에게 배움의 자신감을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늦은 나이의 공부에, 배우는 만큼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제야 학창시절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며 웃어 보이신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어려움을 알기에 더 정이가”

 작년 9월부터 향토학교를 이끌어 가고 있는 권오룡 교장선생님과 향토학교 교사 김봉민 선생님을 만났다. 권선생님은 30대 중반 YMCA 시민운동의 시작과 함께, 자연스레 봉사활동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성인문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의 향토학교를 찾아왔다.

 하루 네 시간씩 꼬박 6일을 학생들과 함께 하며 학생의 눈높이를 고려한 맞춤식 수업과 교재편찬까지, 이에 교장선생님은 어느 인기강사 부럽지 않다. “겨우 자신의 이름정도 적으시던 분들이 주소를 적어 나가는 걸 보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늦은 나이로 쉽게 포기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김봉민 선생님의 직업은 공무원이다. 하루 일과를 마친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향토학교를 향한다. 그렇게 향한 발걸음이 벌써 15년째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부진한 학업성취로 아픈 추억이 있다”며 “학업의 어려움을 알기에,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기 위해 수업준비에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와보으리!”

 향토학교의 또 다른 선생님 두 분을 만났다. 현재 부산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이은빈(경제학과), 조민성(경영학과) 학생은 매주 월요일, 두 시간의 수업을 진행한다. 4학년이라는 부담감에도 12월부터 시작한 그들의 향토학교 출근은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은빈양은 자신을 위한 모든 투자보다 나눔의 생활을 하고 싶어 향토학교를 찾았다. “최근 가르치던 어머니의 고졸 검정시험 합격으로 보람을 느낀다”며 “과외를 통해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는 달리 향토학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향토학교의 자원봉사활동은 지난 대학생활의 모습을 돌이켜 보게도 한다. 조민성군은 늦은 나이에 배우고자 열심히 하시는 모습의 어머니들을 보면 “대학생활을 그만큼 열심히 했었을때가 있었나?”라며 스스로 지난 대학생활을 반성하곤 한다.

▲ 향토학교를 위해 애쓰시는 자원봉사자 선생님들

 

 오후 9시 향토학교의 모든 수업이 마쳤다. 하나둘씩 교실을 나오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두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늦었을지 모를 나이이지만 배움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누구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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