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인생은 예측불가
[기자가 만난 선배] 인생은 예측불가
  • 이민우 수습기자
  • 승인 2014.05.22 0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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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그의 학점은 0.88, 하지만 지금은 해양계의 네이버를 꿈꾸다

 

 

 

 

 

▲바다씨 닷컴 대표권강민 동문 (해양공학과·97)

  이번<기자가 만난 선배>코너에서는 바다씨닷컴 대표이사 권강민 동문 (해양공학과·97)을 만났다. 보장된 미래는 없지만 강한 신념으로 해양포탈사이트를 이끌어나가는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기나긴 방황”

  권동문은 중학교 학창시절 부산 8학군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나름 엘리트였다. 과학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위해 하루 3시간도 채 자지 않으며 공부한 권동문.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돼 있던 ‘우’. 당시 과학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일명 ‘all 수’만이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그렇게 권동문은 일찍이 인생의 허탈함을 느끼고 기나긴 방황이 시작됐다. 그는 “고등학교 때 공부해본 기억이 없어. 수업을 매일같이 빠지고, 자고,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며 그렇게 딱 3년을 보냈지”고 말했다. 부모님은 권동문이 대학에 가길 원했고 그도 대학만큼은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수능 6개월 전 바짝 공부해 시험을 쳤다. 시험 성적은 해양대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이 나왔다.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출신이신 아버지께서는 권동문을 해사대학에 보내고 싶어하셨지만, 어머니께서는 남편이 평생 배를 탔는데 자식까지 배를 태울 순 없다 하시며 권동문을 조선해양공학부에 보내셨다. 그렇게 해양대학에 입학한 권동문. 하지만 기대했던 캠퍼스생활은 찾아볼 수 없었고 크게 실망한 권동문은 입학한 지 1달 만에 휴학하고 1년간 재수를 한다. 하지만 기숙학원에서도 권동문의 방황은 계속되었고 학교로 복학하였으나 1학기 학점은 0.88로 바닥을 밑돌았다. 군대에 다녀와 복학한 권동문은 처음으로 동아리에 들어갔다. 바로 컴퓨터 동아리 마리콤이었다. 그는 “비록 마리콤 동아리를 개인적인 이유로 나오게 되었지만, 그 동아리를 들어간 건 나와 IT와의 첫 만남이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IT 인생의 시작”

  기나긴 방황으로 사회에 나가기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느낀 권동문은 대학원에서 실력을 쌓고 사회에 나왔다.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은 선박용 무전기를 판매하는 작은 가게였다. 그러나 그는 두 달 뒤 문을 닫았다. 온종일 가게에 앉아 손님을 맞이하는 게 너무나 갑갑했고 발로 뛰는 영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게를 닫으며 선박 안전 무전기 방송국에 새로운관심을 두게 되었다. 예전부터 외항 상선과 여객선 문제와 같이 선박 안전문제는 고질적인 문제였고, 내항선의 경우 인적 과실이 상당히 많아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 선박에서 무전기 방송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권동문은 선박 안전 무전기 방송국 사업에 모 통신사 계열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성과를 냈다. 인건비를 끌어오고 무전기를 테스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고 항만청의 모 사무관과 함께 해양FM 방송국을 시작하였다.

  

 

“500만원이 아닌 1억”

  선박 안전 무전기 방송국 일이 끝나갈 무렵 그는 주변으로부터 해양포탈 사이트를 한번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권동문은 굉장한 욕심이 생겼다. 라디오 콘텐츠와 인터넷 콘텐츠 둘 다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디오 방송국의 경우 큰 자금이 필요치 않았지만, 포탈 사이트의 경우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다. 그 당시 돈이 없었던 권동문은 간단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 이곳저곳 투자자를 구하러 다녔다. 주변의 몇몇 분을 만났고 수소문 끝에 투자자가 나타났다. 라디오 방송국을 차릴 때 투자를 부탁드렸던 분이었다. 그때 권동문은 그분에게 투자자금으로 500만원을 부탁드렸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분은 그 이후로 전화를 받지 않았고 끝내 투자를 받지 못했었다. 권동문은 “5,000만원을 말했어야 하는데 500만원을 말하니별 시답잖은 거겠구나 싶었겠지”라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들고간 포탈 사이트 사업은 어마어마한 사업자금이 필요했다. 권동문은 그 분에게 투자자금 1억원을 부탁드리자 그분은 “알겠습니다. 며칠 후에 보내 드리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투자를 받은 권동문은 2013년 3월 26일 포탈 사이트와 사무실을 차릴 수 있었고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를 고용 해 작지만 어엿한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해양계의 네이버를 꿈꾸다”

  얼마 전 권동문은 코마린 전시회에 바다씨 닷컴을 내걸고 참석했었다. 코마린은 수많은 조선 기자재 회사들과 해운 관련 회사들이 본인들의 회사이름을 내걸고 전시와 홍보를 하는 박람회였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이라는 말과 무색하게 조선 기자재와 해운 등 해양과 관련된 정보가 사방팔방 흩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 기자재 용품 중 피스톤링과 베어링 등을 찾고자 할 때 어느 회사에 뭐가 있는지 구글에서 검색하고 각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보를 찾아야 하는 큰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동문은 이러한 문제점을 바다씨 닷컴 포탈사이트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해양에 관한 자료를 가공해 콘텐츠로 만들어 클릭만 할 줄 알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이처럼 권동문은 바다씨 닷컴을 해양의 구글이 아니라 해양의 네이버로 만들 꿈을 꾸고 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권동문은 종종 우리 대학 연구실에 들러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고 조언을 해주는 등 후배 사랑이 지독하다. 이러한 권동문이 후배들을 만나면 꼭 해주는 세 가지 말들이 있다.

  첫 번째, “목적과 목표를 정확하게 구분하라” 목적은 ‘내가 왜 이일을 하고자 하는지’이다. 예를 들어 포탈 사이트를 하는 목적 즉‘돈을 버는 것’, ‘사이트를 키우는 것’ 이게 목적이라면, 목표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며 그는 “나의 목표는 모든 해양인들이 우리 포탈 사이트를 애용하게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두 번째, “내가 지금 보고 듣는 게 전부가 아니다” 후배들이 권동문에게 어느회사를 가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할 때 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권동문 본인을 예로 들어 “나 또한 해양공학과를 나왔지만, IT를 하고 있다”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이 세상 전부가 아니다. 사회에 나가면 얼마든지 더 큰 길이 만들어질 수 있고 더 좋은 게 눈에 들어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 번째, “1픽셀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권동문은 처음 사이트를 만들때 와는 다르게 지금은 작은 글자 하나, 1픽셀 티끌 하나가 안 좋은 느낌을 주는 걸 안다. 어떠한 일이든 1%의 노력을 덜 해 명품을놓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말이다.

 


  권동문의 인생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는 “모험 정신은 힘든 일이다”며 “하지만 10년후를 내다보면 지금 하는 내 일이 그렇게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바다씨닷컴의 대표인 그의 경영 이념은 ‘해양 분야에 혁신적인 서비스로 온라인 바다 세상을 만들어간다’이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권강민 동문. 해양분야에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그는 오늘도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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