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실패는 성공을 위한 인생의 경험, 포기는 젊은이의 적
[안녕하세요 교수님!] 실패는 성공을 위한 인생의 경험, 포기는 젊은이의 적
  • 문대성 기자
  • 승인 2014.10.08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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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영문학과 이건수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코너는 교수님께서 항상 학우들 곁에 계시지만 어렵거나 잘 모르는 우리들을 위해 교수님이 어떻게 삶을 살아오신지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자유를 추구하며 열린 마인드를 가졌던
영어영문학과 이건수 교수님

충북 청주출생
한남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위스콘신대학교(매디슨) 언어학 석사
위스콘신대학교(매디슨) 언어학 박사
전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강사/강의조교
전 Washington University-St. Louis 강사
전 University of Missouri-St. Louis 전임강사
전 University of Texas at Arlington 객원 조교수
전 한국해양대학교 국제교류협력원 원장
현 한국해양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현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부원장

실패는 성공을 위한 인생의 경험, 포기는 젊은이의 적
실패는 할 수 있지만 포기는 하지마라고 당부하는
이건수 교수님의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Q. 안녕하세요. 교수님! 교수님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입시위주의 교육이 싫었고 자유롭게 놀기 좋아해"
고등학교 때 베이비 붐 막바지세대로 한 학급에 65~70명이 함께 공부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시기와 비슷한데 선생님들이 기합도 많이 주던 입시위주의 교육 시절이었다.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구속되는 게 싫어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 당시 호주 가수였던 올리비아 뉴튼존의 팬이었고 팝 문화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대전에 클럽이 있었는데 수염을 잔뜩 기르고 나이를 속여 입장한 적이 있다. 클럽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외국인들과 함께 춤추고 자유롭게 노는게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맬라니 맥민이라는 미국 여자친구를 만났다. 맬라니 맥민 덕분에 미국문화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영어도 잘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맬라니 맥민은 미국으로 떠나면서 헤어졌다. 하지만 영어실력도 늘고 미국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어 대학교를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생활 1학기 후 유학 떠나기로 마음먹어"
고등학교에 충분히 즐겼기에 대학시절은 공부를 열심히 했다. 사실 1학년 1학기는 놀면서 권총(F학점)도 많이 받고 학사경고도 받았다. 하지만 2학기부터 열심히 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1학년부터 준비하던 유학은 3학년이 되었을 때 대학에서 미국석사과정으로 2년을 공부할 경우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학점과 어학시험 점수였다. 미리 준비해뒀기에 학점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높았고 교비 유학생 중 영어시험도 1등을 했다. 그 때 교수님은 "미리 준비를 해뒀기에 가능했다"며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대을 선택해 유학을 떠났다"고 말하며 웃으셨다.

"내가 실세, 중대보급담당"
미국에서 석사를 끝내고 군대를 가기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석사장교라는 제도로 석사 소지자 중 시험을 통해 우수한 사람을 선발하여 6개월간 군사훈련과 전방 체험을 거친 후 소위로 임관과 동시에 전역시켜주는 제도가 있었다. 교수님은 "석사 때 열심히 공부해 둔 보람이 있었다"며 "전부 올 A학점이었고 하나만 B+이었다"고 머쓱한 웃음을 지으시며 말했다. 군대생활은 영천3사관학교에서 4개월 훈련을 받고 전방에서 2개월 생활했다. 행군을 할 때 낙오되는 동료들의 소총을 6개까지 들어주고 솔선수범하며 군생활을 했다. 또한 중대 보급창고에서 보급담당을 맞고 있었다. 그때 교수님은 "초콜릿, 라면 등도 몰래 먹고 말 잘 듣는 친구들에게는 라면도 나눠줬다"고 회상하며 웃었다.

"대학시절 사귄 여자친구와 백년가약 후 다시 미국으로"
군대 제대 후 대학 시절 사귀던 여자친구와 다시 연락을 통해 만났다. 대학시절 같은 학과였던 여자친구는 학내에서 이쁜 외모로 소문이 났었다. 그 당시에도 40~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만난 사람이다. 교수님은 "제대 후 다시 만난 여자친구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최고의 인연이다"고 말했다. 결혼 후 함께 미국으로 떠나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미국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도 자주하고 부부동반으로 놀러도 다니며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

"84년부터 시작한 스쿠버 다이빙"
84년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서클활동으로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다. 지금도 매년 여름마다  입수하고 있다. 30년을 해 온 스쿠버 다이빙이지만 물속에서 아찔했던 경험도 있다. 한 번은 울릉도에서 다이빙을 했을 때 작살을 들고 물고기를 따라 너무 깊이 들어간 적이 있다. 40m정도 들어갔을 때 에어탱크에 공기가 거의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당시 교수님은 "물 밖으로 급상승해서 나올 경우 잠수병이 걸릴 수 있다"며 "겁이 났지만 다행히 주위 동료를 발견해 함께 짝호흡을 하며 물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거제도에서는 조류에 떠내려가 통통배에 구조된 적도 있다면서 웃으셨다.    

Q.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우리대학 학생들의 수준이 아주 높다. 괜한 자격지심을 가진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미래가 변한다. 왜 쓸데없이 국내 대학들과 비교하는가? 경쟁상대를 외국의 명문대로 생각하고 넓게 보고 계획을 세워 열심히 활동하길 바란다. 또한 국제화시대인 지금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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