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망설이지 말고 부딛혀봐!
[기자가 만난 선배] 망설이지 말고 부딛혀봐!
  • 이동건 기자
  • 승인 2014.10.08 17: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마리나 마린서비스 팀장 최영재 동문 (해양체육학과·98)

 

이번 <기자가 만난 선배>코너에서는 서울 한강에 위치한 복합 해양 레저 시설인 ㈜서울마리나에서 항만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베테랑 최영재(해양체육학과·98) 동문을 만났다.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도전하지 않은 미개척지인 해양레저의 세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활동하고 있는 최 동문의 인생 개척기를 들어보자.

 

“고등학교 은사님과의 인연 바다와 이어져”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 고등학교 진학 후 자연스럽게 체육학과 진학을 목표로 했다. 마침 학교 선생님중 한분이 요트, 윈드서핑을 즐기셨고 이에 간간히 해양레포츠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 진학을 고민 하던 3학년, 진학 담당 선생님의 “남들 다 가는 체육 관련 일반 학과 보다는 흔하지 않은 해양체육학과에 진학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는 조언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대학 해양체육학과 1기로 입학했다.

‘선배 도움 아쉬웠던 새내기 시절’


내가 입학 했던 98년은 학과가 처음생긴 해였고 선배가 없었다. 더욱이 해양체육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까지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없던 학문이라 매 수업을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선배 없이 동기들끼리 학과생활을 하는 것이 아쉬울 때도 많았지만 이 때문에 후배가 생기면 우리가 느꼈던 아쉬움을 겪게 하지 말자는 마음이 동기들 사이에 생겼다.

 

‘새내기, 진.짜.선.배. 되다!’
이에 학과 교수님들 도움을 받아 동기들과 함께 ‘윈드서핑 연구회’를 만들었다. 후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동기, 후배들과 함께 방중 훈련도 하고 대회도 출전했었는데 특히 해양대 앞바다에 바람만 불면 수업을 빼먹고 바다로 나갔던 탓에 교수님, 학과 조교님께 호되게 혼났던 것이 대학생활의 추억으로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연구회를 만든 것을 계기로 많은 후배들이 해양레저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듯하다.

 

 

‘전국 요트 대회 입상’
아직 우리학교에 충분한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던 당시 우리 학과 최보열 교수님(현 명예교수)께서 부산시 요트협회에서 요트와 윈드서핑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셨다. 흔하지 않은 기회였고 이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달리 요트운영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99년 전국 요트 대회에서 대학부 미스트랄급 3위를 할 수 있었고 함께 했던 후배인 99학번 김근수, 송민재 등은 현재 요트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동기 중에 해양레저관련분야 종사자는 거의 없어”
내가 졸업 했던 2005년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해양레저스포츠 분야의 일자리가 거의 없었다. 이렇다 보니 현재 동기 중에 관련분야에 일하고 있는 친구는 거의 없다. 나 또한 졸업 전부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꿈과 진로를 이루는 방법을 찾는데 최대한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주말에는 송정, 송도, 수영만 요트 경기장등을 쫓아다니며 일을 배웠고 항상 관련 분야 소식을 살폈다. 결국 국내에서는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해 일본 오키나와의 이시가키섬에 위치한 해양레저 복합리조트에서 해양 스포츠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 보다 관련 분야에 15년 정도 앞서 있었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이에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지원 했다.

“홀로 떠난 외국생활 중 아내 만나”
다행이도 외국계기업의 리조트 여서 많은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해 언어 때문에 큰 고민을 하지는 않았고 서로 외로운 처지라 적응도 더 빨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업무 중에는 당연히 일본어를 쓸 일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익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같은 팀에서 일하던 일본인 동료에게 많이 의지 하게 되었고 지금은 이 사람과 결혼해 함께 하고 있다.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는 오지 않아”


일본 취업 전까지 나는 평생 내가 외국에 나가서 일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일본어를 배우고 국제결혼 까지 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황이 닥쳤을 때 일단 부딛쳐보는 내 성격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 같다.
솔직히 아직까지 공인어학성적이 없을 정도로 영어, 일본어 공부를 정식으로 해본 적이 없다. 모두가 다가온 상황에 필요한 부분을 채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일에 필요한 수준까지 외국어를 구사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후배들이 사회에 나오기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좋겠지만 당장 능력이 없다고 눈치만 보고 있으면 기회를 잡기 힘들 수도 있다고 본다.

 

‘새로운 기회 찾아 한국으로 돌아오다’
일본에서 일한지 2년이 지날 무렵, 한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 했지만 아직까지 딱 맞는 일자리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나마 원하는 방향과 근접한 힐튼 남해 리조트의 호텔 서비스 관련 일을 맡으며 한국으로 돌아왔고 1년 뒤 기회를 잡아 현대요트(당시 현대라이프보트 요트사업부)에 취업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파워보트 개발사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ASAN 42' 개발 코디네이터를 맡게 되었다. 당시 전체 디자인은 해외에서 하고 세부설계 및 제작은 국내에서 했는데 나는 해외 디자인 인력과 국내 인력간의 의견조율을 주로 맡았다. 당시에는 지금 만큼 내수시장이 활성화 되지 않은 상황이라 어려웠지만 이 사업이 디딤돌이 되어 지금 국내요트의 세계진출에 힘을 보탰다는 자부심이 있다.

 

“기회 된다면 후배들에게 경험 전달 하고 싶어”
이후 꿈꿔왔던 마리나 운영분야에서 일할 기회를 찾았고 2010년부터 서울마리나에서 일하게 되었다. 기회를 잡는데 에는 대학시절부터 키워온 현장경험이 큰 힘이 됐다. 내가 졸업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해양레저분야는 계속해서 성장해왔고 앞으로 마리나 분야의 성장이 이어지면 요트 계류, 관리, 정비, 컨벤션, 관광 등에서 더욱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 된다. 특히 남해안의 환경은 세계적인 명소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고 경험상 우리나라의 서비스 수준 또한 선진국과 경쟁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에 따라 최근 관련 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어 앞으로 10년은 후배들과 함께 이 분야를 개척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