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보단 낙천적인 생각과 자신의 철학으로 사는 삶
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보단 낙천적인 생각과 자신의 철학으로 사는 삶
  • 문대성 기자
  • 승인 2014.12.11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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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치열한 고민보단

낙천적인 생각과 자신의 철학으로 사는 삶

 

해양대 출신 감정평가사

김재원 동문

(무역학과-현 국제무역경제학부 94학번)

 

 '지구가 가장 추울 때는 태양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다' '이 말은 이제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로 '지구가 가장 따뜻할 때는 태양과 가장 가까울 때이다' '즉, 지금은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김 동문은 "인생도 자신이 한 행동에 따른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행동에 따른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치열한 고민보다는 낙천적인 생각으로"

김 동문은 학창시절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학생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파도소리 동아리 초창기 멤버이기도 하다. 김 동문은 "제대 후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기타 치는 게 좋아 창간 멤버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제대 후에는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놀며 족구를 많이 했다. 그 당시 도서관은 공부하는 공간이라기 보단 집에 가기 싫은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도 하고 족구도 찰 수 있었던 모임의 공간이었다. 그는 "수업 후 친구들과 족구를 하다가 공이 바다로 들어가 가지러 많이 입수했다"며 웃었다. 그리고 "족구를 찬 후 친구들과 자갈마당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며 회상했다. 그는 학창시절 지금의 학생들처럼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고 한다. 강원도에서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미래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제대 후에도 무엇을 할지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원래 꿈같은 것은 없었다"며 "우연히 감정평가사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시작해봤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평가사공부를 하면서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막상 그만두면 할 게 없고 언젠가는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아 계속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는 당당히 감정평가사에 합격했다.

 

"100명에서 19명으로"

김 동문은 대학 3학년 때 감정평가사 공부를 시작했다. 3학년 때 어떤 시험인지 알아보기 위해 응시한 시험에서 떨어진 후 공부를 해 4학년 때 1차 합격을 했다. 그리고 졸업 후 2차 시험을 쳤다. 그러나 2차에서 100명 이상 뽑아오던 감정평가사를 1994년 5회 감정평가사 때 합격자를 19명으로 축소했다. 그는 "원래 합격했는데 갑자기 합격 인원을 줄여 떨어지고 나니깐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부당하다고 느낀 100등 안에 든 사람들이 돈을 모아 소송을 냈다. 당시 각 5만 원씩 모아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서 이겼다. 그 결과 다음 해 부터는 제도의 안정성과 시험의 합격 인원 확보의 장치를 마련했다. 그는 "시험에 합격을 시켜 달라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에 다음 회 시험합격인원 100명을 확보한 데 의의를 뒀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한 막걸리 한 잔"

5회 감정평가사에 떨어진 후 1년 뒤 6회 시험에서도 1차 합격을 하고 2차 시험을 쳤다. 2차 시험을 치고 난 후 합격자 발표까지는 3~4개월의 시간이 있다. 김 동문은 그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들과 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합격 발표 전날 밤 친구들과 당구를 치고 있었다. 그 당시 합격 발표 전날 밤 10시에 학원으로 연락하면 합격자를 알 수 있었다. 한 번 떨어져 본 트라우마 있던 그는 당구를 치다말고 밤 10시 5분이 되어 당구장 어두운 계단에 앉아 학원으로 전화를 했다. 그 때 그는 "통화연결음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며 "손이 떨리고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화 연결이 된 후 담당자에게 수험번호를 말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몇 분 후 담당자는 "합격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 동문은 다시 몇 번씩 수험번호를 말하고 재확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전화를 끊은 후 어머니 생각에 막걸리를 한 통 산 후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도착한 후 어머니에게 큰 절을 했다. 아들이 시험에 합격만 하면 아픈 곳도 모두 나을 것 같다던 어머니였다. 그는 "어머니와 막걸리 한 잔을 하며 어머니 근심을 덜어드려 너무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잠을 자고 일어난 후 신문에 감정평가사 합격자 명단을 보고 합격했다는 것을 느꼈다.

 

"양복 티켓, 돈 봉투, 아파트 한 채"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은 부동산 평가가 대부분이다. 주로 토지, 건물을 평가하기 때문에 출장이 많다. 그는 "부동산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땅과 건물을 실제로 봐야 한다"며 "사무실에서만 일하면 답답한데 출장을 다니며 바람을 쐬며 일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직업의 특성 상 담보평가와 보상평가를 할 때는 뇌물을 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담보평가는 높게 받을수록 은행에서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다. 한 번은 김해 공장을 평가하러 간적이 있다. 건물의 평가를 기다리는 사장은 매일 연락이 왔다. 저녁을 먹자고 연락이 오고 거절하면 점심을 먹자고 연락이 오고 또 거절하자 차를 한잔 마시자고 연락이 왔다. 계속 이렇게 불편한 연락을 하기 싫어 차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서 사장은 계속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 동문은 "저한테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죠?"라고 묻자 사장은 "전화도 잘 받아주고 일도 열심히 해서 고맙다"며 양복 티켓을 줬다. 이에 김 동문은 "공장 평가 후에도 고마우면 연락해 달라"며 "그 때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술을 사도 사겠다"며 자리를 일어났다. 그리고 평가 후 매일 연락오던 사장은 일이 해결되고 나니 연락 한 통 없었다. 또 한 번은 평가를 위해 사무실 회의 할 때 책상 밑에서 툭툭 치며 돈 봉투를 줬다. 그는 그 봉투를 회의 책상 위에 올려두고 화장실을 가고 담배도 피러가며 돈 봉투를 무시했다. 그러자 돈 봉투를 건 낸 사람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감정평가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파트를 준다고 해서 당황한 적도 있었다. 김 동문은 "전세 집에 살고 있는데 목소리가 떨려 크게 쉼 호흡을 하고 거절한 적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평가다 보니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어떻게는 부탁을 하던 사람들이 결과가 나오고 나면 욕을 하기도하고 모른 척 한다"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데 진심으로 접근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어떤 사람이 될까를 고민해봐라"

말괄량이 같던 딸 민경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빠 내가 커서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어?"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민경아 네가 무엇을 할까는 아직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어떤 사람이 될까를 고민해보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고민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 되어 사회에 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된다. 인생을 살아갈 때는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고 자신도 행복해 질 수 있다. 김 동문은 "후배님들도 앞으로 자신의 확고한 철학만 가진다면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며 "좋은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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