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영도의 전설
들어는 봤나 영도의 전설
  • 배수혁 기자
  • 승인 2015.02.2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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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심 많은 영도 할매?', '영도의 옛 이름은 절영도?'

어린 시절에 누구나 흥부와 놀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신비로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영도에도 전 국민이 다 아는 삼천궁녀 이야기 못지않은 스토리를 간직한 전설이 가득하다. 우리대학이 위치해 있지만 영도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에 기자는 영도 지명의 유래를 시작으로 곳곳을 탐방해 봤다.

'영도'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영도는 오래전부터 말을 기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영도에서 기른 말이 얼마나 빠르면 달리는 말의 그림자가 끊어지는 섬이라는 의미의 영도의 옛 이름은 '절영도(絶影島)'였다. 이토록 말이 빠르기로 유명한 장소였기 때문에 영도는 오래 전부터 국마장(國馬場)으로 활용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선덕여왕이 김유신의 손자인 김윤중에게 절영도의 말을 하사하니 다른 신하들이 모두 부러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고려사』에서는 견훤이 태조 왕건에게 절영도의 명마를 선물로 주었다가 절영명마가 고려로 가면 백제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청하여 돌려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영도주민을 지켜주는 영도 할매

▲ 봉래산 정상에 위치한 할매 바위
영도의 중앙에 위치한 봉래산(해발 395m)은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백련사, 고신대학교에서 출발하는 여러 등산로가 마련되어 있다. 봉래산 정상에서는 종종 등산객들이나 주민들이 바위에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바위가 바로 '영도 할매 바위'이다. 봉래산 영도 할매는 산신처럼 여겨지는데 영도주민을 을 보호해준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영도 할매는 욕심이 많아서 영도로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만 밖으로 떠나가는 것은 싫어한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영도에 살았던 주민이 영도를 떠나 영도 할매가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3년 내로 망해서 돌아오게 된다는 속설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인들에 의해 왜곡되어 생겨난 속설이다. 일본인들은 영도의 지형이 일본을 향한 새의 형상이라고 호도하며 영도를 떠난 사람들을 영도 할매가 해코지한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사실 영도 할매 전설은 순박한 섬사람들이 외지로 가서 고생할 것에 대한 걱정이 담긴 메시지를 담고 있다.

봉래산에 살았던 9척 거인과 장사바위

▲ 봉래산에 위치한 장사바위. 신발모양이라고 일컬어진다.
영도 마을버스 5번을 타고 쌍용자동차학원에서 내려서 2분만 걸어가면 봉래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이 나온다. 그 길목 옆에 '해련사'라는 절이 위치해 있고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 장사바위가 위치해 있다. 장사바위는 봉래산 정상에서 청학동 방면으로 내려다보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큰 바위 위에 신발 모양의 바위가 있는 모습인데 이것을 가리켜 장사바위라고 한다.

장사바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첫 번째는 거인장사 이야기다. 봉래산 속에 키가 9척인 거인이 주민들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마을에 괴물이 나타나 처녀를 잡아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에 거인은 보답을 하고자 괴상한 그림자와 격투를 하다 죽어서 신발모양의 큰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는 거인장사의 신발 이야기다. 장사가 봉래산에서 영도 앞바다를 넘어 감만동을 향해 뛰었다. 그런데 신발이 벗겨져서 남은 신발이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장사바위는 신발의 모습이므로 그 앞에서 자식의 미래를 빌면 건강과 성공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해진다. 또, 아이를 밴 여성이 바위를 만지면 아들을 낳을 수 있고, 수험생이 이 앞에서 빌면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신라 태종무열왕이 활을 쏘며 놀던 '태종대'

태종대라는 이름은 신라 29대 임금 태종무열왕이 와서 활을 쏘고 놀았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신라의 태종무열왕이 아닌 조선의 태종과 관련한 이야기도 있다. 큰 가뭄이 있었던 서기 1419년, 조선의 태종은 태종대를 찾았다가 5월에 비가 내리기를 빌어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음력 5월 초열흘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태종대는 고대사회부터 지역적으로 중요성을 띄었던 만큼 다양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3가지 금기를 어기면 신선 할배가 용서하지 않는다!

▲ 태종대 등대에서 바라본 주전자섬(생도)
신선대(신선바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주전자모양으로 생긴 섬 하나를 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주전자섬(생도)'이다. 예로부터 주전자섬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3가지가 있다. 주전자섬에서는 아무리 급해도 용변을 보면 안 되고, 추워도 불을 피워서는 안 되며, 남녀가 정을 나누면 안 된다. 이를 어기면 신선바위에 머무는 할배가 벌을 내려 큰 재난을 당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는 예로부터 제사를 치르던 신성한 공간인 신선대와 가까운 섬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섬은 육지에서 멀지 않지만 조류가 가파르고 미끄러운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3가지 금기를 전하는 주전자섬의 전설은 자칫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지역에 출입을 못하도록 전달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내님은 언제 오나" 기다리다 굳어버린 '망부석'

▲ 신선대 위에 위치한 망부석
태종대 등대에서 30m가량 떨어진 곳에서는 바다를 향해 2개의 해안단구(신선대)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오른쪽에 위치한 해안단구를 신선대(신선바위, 신선암)라 부르고 왼쪽의 것을 태종대(태종바위, 태종암)라고 부른다. 망부석은 신선대 위에 마치 홀로 서있는 듯 보이는 돌을 가리킨다.

망부석에 얽힌 전설은, 옛날 왜구에 끌려간 지아비를 애타게 기다리던 한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여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 땅이 보이는 신선대에 서있었다. 돌처럼 기다리던 여인은 마침내 돌덩이로 굳어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전설을 따라 돌에 망부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실제로 망부석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육안으로도 대마도까지 보일 만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예로부터 영도는 왜구가 자주 출몰하여 어민들의 피해가 많아 중앙조정에서도 고심했던 지역이다. 망부석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거치며 국외로 나간 남편들을 기다리는 여인네들이 그리움을 달래는 장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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