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쓸모 있는 '동네백수'가 되고 싶다.
우린 쓸모 있는 '동네백수'가 되고 싶다.
  • 김태훈 기자
  • 승인 2015.08.31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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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백수들의 실험실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지만 대한민국 청년들에게는 빙하기도 이런 빙하기가 없다. 청년 고용률이 10년째 40%를 유지해 혹한의 날씨와 같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빙하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취업 준비생은 63만 명. 여기에 공무원 준비생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청년 실업자는 무려 116만 명에 달한다.
 청년실업. 머지않은 이야기에 꽉 막힌 기분이 절로 드는 것이 찝찝하고 더운 여름보다 더 불쾌하다. 이런 빙하기에서 직접 취업을 위해 뛰어든 '불덩이' 같은 청년들이 있다. 이름하여 백수! 그것도 동네백수란다. 자신의 동네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함께 자립하는 것이 꿈이라는 백수들의 '왠지 멋있는'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동네 길거리에 영화관이 들어섰다고? 
 

이바구길 주민들이 모여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초량 이바구 길을 올라가다보면 보이는 이바구 정거장에서 기자는 백수들과 처음 만났다. 백수들은 흰 티를 입고 등에는 동네백수라고 크게 적혀있는데 ‘백수’ 라는 것이 창피하고 한심한 대중적 이미지와 다르게 자랑스러워 보여 인상적이었다. 백수들이 점거한 이바구 정거장은 1층 백수다방, 2층과 3층은 작은 규모의 도서관과 쉼터로 꾸며져 있다. 말 그대로 그 곳은 주민들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동네 정거장이다.
 백수들은 1층 백수다방에서 간간히 들리는 손님들에게 음료를 판매하며 옆 공터에서 ‘달밤의 영화’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달밤의 영화'는 주민들에게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는 기획으로 홍보부터 빔 프로젝터 연결, 전선정리, 의자 준비와 모기향까지 직접 준비한다. 백수들의 뒷모습이 ‘노동’임에도 즐거움이 엿보였다. 미취학 아이들과 손잡고 온 부모님부터 동네어르신들 그리고 달밤 데이트를 즐기던 커플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고 갔다. 젊은이들이 떠나버린 원도심 초량 한가운데에서 과연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역에 쓸모 있는 백수가 되기 위해
 이바구 정거장을 점령한 동네백수는 작년 12월 처음 출발점에 섰다. 처음으로 시작한 김정우(백수, 28)씨와 협동조합 스터디를 통해 인연을 같이한 멤버들로 총 5명이 운영하고 있다. 김정우씨는 "지금은 개인 사업체로 동네백수가 등록되어 있지만 협동조합의 모습을 이상적인 방향을 잡고 있다"며 "한마디로 자발적 백수들의 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실험실로 정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 백수의 활동 방향은 청년 그리고 지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백수학교를 통해 '모두의 발견', '모두의 기획'이라는 수업으로 청년들이 자아를 찾고, 기획하는 방법들을 가르치는가 하면 범일동 '가마뫼 마을축제'를 기획해 젊은이들이 필요로 하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또한 동구청에서 진행하는 '한 지붕 두 가족' 사업에 참여해 이바구 정거장을 중심으로 2년간 청년층의 유입에 앞장서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동네백수는 마을 주민들이 청년들과 관계를 맺어 청년들의 역할을 찾고 역량을 통해 관광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순 없을까?’
동네백수 한 명의 물음에서 시작되어 삶터를 일터로 만들려 하는 동네백수의 노력이 희미하게 그렇지만 분명히 빛을 내고 있다.

이바구 정거장에 백수다방 전경

 

백수는 앞으로도 지역에서 살아가고 싶다.
 동네백수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단체다. 그것은 동네백수들 스스로도 마찬가지이다. 김정우 씨는 “지금은 활동을 무리해 늘려 나가기보단 현재 멤버들 간 내실을 탄탄히 다지고 싶다”며 가장 코앞에 목표를 말했다. 지금도 백수들의 힘으로 지역사회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행하고 있지만 '더 체계적인 방향과 매뉴얼을 구축해 정체성을 잡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동네백수는 정체성을 잡는 중에도 쉬지 않고 달릴 생각이다. 처음으로 시도했던 ‘달밤의 영화’도 지속적으로 시도할 예정이며 9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리는 ‘초량골목축제’에도 참여해 두 가지 프로그램을 맡는다. 초량골목축제에서 백수들이 맡은 꼭짓점은 ▲ 7080 캐릭터 재현 ▲ 7080 라이브콘서트이다. 김정우씨는 “연기와 노래에 재능 있는 청년들로 프로그램을 꾸려 지역사회를 돕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에 맡는 페이도 지급해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앞으로 정기적이진 못해도 꾸준히 백수학교를 열어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모두의 발견' 을 수업중인 백수와 학생들

아직 돈을 벌고 있지는 않다.
 어떤 단체든지 돈이 문제이듯이 동네백수도 돈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백수학교로 벌어들인 수입의 3할은 동네백수들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으로 사용하지만 막상 모든 백수들에게 직접적인 수입은 없다. 현재는 이바구 정거장을 운영해 ‘동네백수’ 단체 자체의 자금난은 줄었지만 최종적인 협동조합의 모습은 아직 먼 이야기이다. 백수들이 그리는 미래는 조합원 모두가 자신의 역량을 살려 함께 일을 하고 자신의 타당한 몫을 가져가며 남은 이익을 단체에 투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언젠가는 숫자 100을 등에 단 백수 조합원까지 만들고 싶다는 게 그들의 조그만 목표라고 한다.

 

지역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
 지난 7월 27일, 정부 6개 부처 관료들이 만든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50쪽이 넘는 이것은 일자리 창출이 아닌 일자리 ‘기회’를 창출하겠다고 쓰여 있으며 54개의 추진 과제 중 48개는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시행 예정인 정책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효과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정책들도 우겨 넣은 것을 보면 과연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가 있는 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혹독한 취업 빙하기에 정부 대책도 의지할 수 없는 오늘, 스스로 자신의 일을 만들어가는 동네백수들의 열정은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 큰 도시로 향하는 때에 지역을 살리고 청년도 살리겠다는 그들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김정우(백수, 28) 씨는 “부산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혼자서는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우리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 좋겠다”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백수들의 발자취는 과열경쟁에 지친 우리들에게 유쾌하게 다가온다. 자발적으로 백수가 되어 자신의 진짜 재능으로 지역을 살린다는 그들의 목표가 이뤄지고 우리나라 청년들의 빙하기가 끝나기를 바란다. 이 시대 타의적 자의적 모든 백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동네백수들이 이바구길을 내려다 보고 있다.

김태훈 기자
wanx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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