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서툰 아버지들을 위해
세상의 서툰 아버지들을 위해
  • 김효진 기자
  • 승인 2015.11.30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_아버지학교를 만나다

_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나는 항상 ‘무뚝뚝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아버지인 게 처음이고 서툴 텐데 누구 하나 ‘아버지가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내를 어떻게 존중해야하는지, 자식과는 어떻게 대화해야하는지 늘 고민하면서도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그래서 더 무뚝뚝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여기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모인 아버지들이 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공통점인 그들의 학교, 아버지학교를 찾아가 보자.

 

 

울컥하는 그 이름 ‘아버지’

_우리에게 ‘아버지’라는 단어는 꽤나 울컥하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것이 아버지와의 끈끈한 친밀감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2014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서 13~24세 청년들의 63.2%가 주중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1시간 미만이라 답했다. 박항효(해양플랜트운영학과·14) 학생은 “어렸을 땐 아버지를 엄청 좋아했다”며 “사춘기 시절을 지나면서 아버지와의 대화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답했다. 아버지들도 자식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문을 걸어 잠근 자식의 방에 노크를 하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방문조차 두드리지 못하는, 서툰 이시대의 아버지들을 위해 아버지의 역할을 재정립해주고 일깨워주는 곳이 바로 ‘아버지학교’이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아버지학교는 65개국 250여 도시에 뻗어나가 벌써 20년째 진행되고 있다. 애기 아빠부터 다 큰 자녀를 둔 우리 아버지 또래까지 함께 조를 이루어 아버지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고, 아버지가 되어간다.

 

 

 

서툴지만 괜찮아, 시작이 반인걸

▲ 아버지들이 정한 조이름과 구호
_아버지들의 첫 활동은 조의 이름을 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쪽 벽면 가득한 그림들은 아버지학교 수강생들이 각각 정한 조이름과 구호로 그들의 첫걸음이자 포부이다. ‘낄까말까 할 땐 끼자’, ‘친구 같은 아빠가 되자!’와 같은 구호는 아버지들의 소망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번 서부산지부 아버지학교 14기에 참여한 한 아버지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며 “좋은 아빠, 좋은 남편에 대해 이제야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아버지학교 수료생에서 스텝이 된 정범룡 씨는 아버지학교를 통해 많이 바뀐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결혼하고도 술, 담배, 도박 등 사나운 생활이 이어졌고 아내를 때리는 건 예사였다”며 “그러던 중 아픈 아내가 꺼낸 이혼이라는 말에 겁이나 아버지학교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 변한 그는 “산적같이 사납다는 말을 듣던 내가 이젠 인상이 순하다는 말도 듣는다”며 멋쩍게 말했다.

 

 

 

숙제도 있는 진짜 학교랍니다

▲ 강의 내용을 필기하는 아버지의 뒷모습

_아버지학교도 여느 학교처럼 매주 숙제가 주어진다. ‘아내에게 편지쓰기’, ‘자녀와 1대1 데이트하기’, ‘자녀와 아내가 사랑스러운 100가지 이유 적기’, ‘아버지에게 편지쓰기’ 등 매주 해온 숙제에 대해서는 조원들끼리 발표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낭독하기도 한다. 한 명 한 명 낭독이 끝날 때마다 테이블에서는 격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때론 생각지도 않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도 한다.


 

수업 내용은 크게 아버지의 영향력, 남성, 사명, 그리고 가정으로 구성된다. 매주 늦은 시간, 수업을 듣는 게 고될 법도 한데 ‘아버지의 올바른 권위’에 대해 설명을 듣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필기까지 해가며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식후에는 수료식 때 아내와 함께 출 율동을 노래에 맞춰 배운다. 옆의 짝과 율동하는 모습이 쑥스러우면서도 열심이다. 율동을 열심히 추던 아버지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다고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아버지 되기도 쉽지 않다”고 웃어 보였다.

▲ 노래에 맞춰 율동을 연습하는 아버지들

 

 

 

내 안의 태양 아내와 자식들에게

_아버지학교에서는 배우자를 ‘아내’라고 부르도록 한다. 아내는 ‘안의 해’에서 온 말로 내 안의 태양이 바로 당신이라는 뜻이다. 아내라는 호칭은 아내를 더욱 존중하고 사랑하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학교 마지막에 진행되는 수료식에는 꼭 아내를 데려오는 것이 좋다. 그 동안 숙제로 썼던 ‘아내에게 쓰는 편지’와 ‘사랑스러운 100가지 이유’를 낭독하고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몇 십 년을 함께 살았어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궁색했던 남편의 입에서 나온 ‘사랑합니다’라는 말에 아내들은 기어코 눈물을 터뜨리곤 한다고. 또한 아버지운동본부는 ‘아버지가 바뀌면 자식도 바뀐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처음엔 자녀들의 거부반응도 적지 않다. 변화는 서서히 스며들며 시작된다. 회사원 딸을 둔 수료자 스텝은 “처음에 안아주려니 어색하다고 질색팔색하더라”며 “그러던 애가 지금은 출근할 때 일부러 안아 달라 기다린다”고 말한다. 자녀를 하루에 한 번 이상 안아주고, 사랑한다 고백하고. 무엇보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이 아버지학교의 철칙이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입니다

▲ 교도소아버지학교 수료식 중 세족식이 진행중이다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제공)

_아버지학교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교도소이다. 아버지학교는 프로그램을 통한 교정의 효과를 인정받아 징역 3년 이상의 수감자들은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된다고 한다. 아버지학교운동본부 고명주 서부산지부장은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징역15~40년형 살인범 40명중 절반이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었다”고 말한다. 교도소 아버지학교는 그런 그들에게 올바른 아버지의 사랑을 일깨우고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도록 돕는다. 실제로 프로그램 중에는 교도소 내 사건과 갈등이 줄고 편지쓰기, 고백하기 등의 활동을 통해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참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기업체, 군부대, 노숙자 등을 대상으로 종교적 색채를 배제한 아버지학교가 2004년부터 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비 아버지학교, 해외 아버지학교 등 종교적 색을 넘어 사회계몽운동임은 선포했다. 올해로 수료자 30만 명을 넘긴 아버지학교는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으로 아버지를 돌려보내는 것이 목표이며 아버지들이 올바른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이어지고 있다.

 

 

 

_아버지학교 수료생들은 가장 큰 변화로 ‘자녀와의 데이트’를 꼽는다. 자주 연락하고, 고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더욱 행복해진다고 말이다. 특히나 “기자님은 아버지랑 자주 톡해요? 나는 딸이랑 자주하는데”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전화를 켜 확인한, 아버지와 주고받은 메시지는 스크롤을 내리고도 한참 내린 가장 아래쪽이었다. 두 달 전 도착한 ‘비가 오니 춥지 않게 자라’는 아버지의 메시지를 보고 진짜 무뚝뚝한 것은 나라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학교에서 만난 아버지들은 모두 우리 아버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겉으로 표현 못할지라도 속은 따뜻한 연탄처럼, 언젠가는 가정을 따뜻이 데우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