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소중한 것은 생각보다 멀지않은 곳에 있기에
[안녕하세요. 교수님!] 소중한 것은 생각보다 멀지않은 곳에 있기에
  • 김기섭 기자
  • 승인 2015.12.01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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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공간건축학과 송화철 교수님
 야구 광팬으로서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직접 유니폼까지 준비해주신 정감 넘치는 송화철 교수님을 만나보았다.
 
 
 
 
 
 
 
 
 
 
 
 
 
 
 
 
 
 
 
 
 
 
 
 
 
 
 
 
 
 
 
 
 
 
 
 
 
 
 
 
 
 
 
 
 
 
 
 
 
 
 
Q. 안녕하세요 교수님! 교수님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약값의 키높이가 내 키높이와 같아...
 

_ 어릴 때는 선천적으로 병을 가져 몸이 좀 불편했고, 자연스레 약값이 많이 나갔다. 이 때문에 아버님이 내게 종종 “네 키가 약값의 키 높이랑 같다”고 이야기 해주시곤 했다. 하지만 왜인지 운동을 정말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 마다 친구들과 공터에서 야구를 즐겼다. 당시에 나는 거의 모든 포지션을 도맡아가며 경기를 했는데, 가끔 거동이 불편하다는 신체적인 핸디캡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야구가 좋았다. 한 때는 야구 구단주의 꿈을 키워도 봤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진 못했고 지금은 경기를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현재는 롯데의 열렬한 팬인데 요즘 두산이 잘해서 살짝 마음이 틀어질 것 같기도 하다.
 
 
교육부 지정 학생의 위엄, 당구장에서 잃을 뻔하다
 
 
_ 태어날 때 몸은 선천적으로 병을 앓았지만 다행히 학문적 재능은 부모님의 좋으신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그래서 공부에 대해서는 다른 학생들처럼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고 과목 중에서도 특히 수학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과목은 자연스레 열심히 공부했고, 다른 과목도 최고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다. 또 엄하신 부모님의 가정교육이 있어 항상 예의바르게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주위 친구들이 ‘교육부 지정 학생’ 이라고 부를 정도로 모범생의 범주에 들어갔다. 평소에 일탈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고3 때 학력고사를 친 이후 친구 따라 당구장을 갔다가 경찰 단속에 걸린 일이 기억난다. 당시에 당구장은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이었는데 당구를 치다보니 야구만큼 재밌어서 몰래 갔다가 걸린 것이었다. 경찰관이 ‘무기정학’ 얘기를 꺼내는데 순간 아찔해져서 한 번만 눈감아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경찰관도 학력고사까지 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일탈을 이해해주셨는지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건축에서 느낀 예술성과 꿈을 갖게 한 야학교사
 
 
 
_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 이면에는 음악의 영향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바이올린을 배워 학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할 만큼 음악을 자주 접했다. 나는 그 때 생긴 음악적 감수성으로 건축이 가진 예술성에 매료되었다. 고등학생 당시의 나는 공대를 지망했는데, 공과분야 중 가장 예술적인 분야가 건축이라 느꼈고 건축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건축설계’란 분야를 공부하면서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방황을 많이 했다. 그래서 대학교 2학년 때는 학과공부보단 사회복지분야나 청소년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전공과 상관없는 사회복지학과의 ‘청소년문제’ 같은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학생들 중 한 명이었던 절친을 따라 야학 교사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수학을 가르쳤는데, 이때가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일이 무척 즐겁고 나랑 잘 맞는다고 알게 된 계기인 것 같다. 언젠가 교수가 되고 싶다고 느낀 것도 아마 이 때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 ‘건축학과 교수’라는 꿈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말석에서 1등까지, 희로애락의 대학원 시절
 
 

 대학원 진학을 위해 입학시험을 쳤는데 결과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시험 일주일 후 내게 오셔서 내가 문 닫고 들어온 학생이란 것을 알려주셨다. 원래 꼴등이라서 떨어트리려고 했는데 일단 두고 보기로 하고 붙여주셨다는 것이다. 사실 학부생 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학과공부는 거의 뒷전이었는데, 4학년이 되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2,3학년 때 했어야할 공부를 1년 동안 몰아치듯이 공부했다. 그러면서 ‘구조공학’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고 그 분야의 수업에 매료되었다. 그 때 그 수업의 교수님이 내가 진학한 대학원의 지도교수님이셨다. 그런데 그분으로부터 내가 꼴등이라고 들으니 왜인지 오기가 생겼다. 그 오기를 연료삼아 독하게 공부를 했고, 입학 후 첫 시험에서 박사과정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1등을 차지했다. 그 때 그 쾌감은 실로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데, 나를 모르던 사람들에게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 보여준 느낌이었다. 그 후로도 연구실에서 4학년 때 몰아치듯 공부 했던 것처럼 열심히 공부했고, 가끔씩 지도교수님, 연구실 선배님들과 신촌 맥주집에서 시원한 생맥을 들이키며 생활했던 기억이 난다.
 

100 중의 1이 아닌 새로운 하나라는 자부심
 
 
 석사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준비했는데, 원래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유학을 준비하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이 다 미국으로 간다고 해서 내가 미국에 가야할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음악적 감수성에 이끌려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올랐고 이후 독일 슈투트가르트대학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물론 가서 고생도 정말 많이 했다. 그래도 그 시절 무모했지만 진취성을 가지고 결정했던 그 유학길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해양건축도 이러한 진취성을 가지고 있단 생각을 한다. 처음 해양공간건축학과 교수로 왔을 때 내가 2기 교수였을 만큼 아직 해양건축 분야는 개척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무궁무진하고 매력적이다. 한국에 건축학과가 100개가 넘는다 해도 해양건축은 100개 중 하나가 아닌 새로운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학생들이 이 새로운 분야를 진취적으로 개척해나간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소중한 것은 생각보다 멀지않은 곳에 있기에
 
 오래된 책인데 스펜서 존슨이 쓴 선물(The Present)이라는 책을 읽고는 많이 동감한 적이 있었다. 알다시피 현재와 선물은 영어단어가 묘하게 똑같다. 따라서 나는 책의 요지를 지금 현재가 나에게 주어진 제일 크고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살면서 내 주위에 소중한 것이 널려 있는데도 잘 자각하지 못하고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강의실 옆에 앉은 친구들도 여러분에게 큰 선물이고, 멀리 고향에서 매일 여러분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부모님이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도 큰 선물이다. 투명 엘리베이터 안에서 본 부산 북항의 전경도 환상적인 선물이고, 자갈마당 바닷가의 파도소리도 시원한 선물이다. 그리고 교수인 나에게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수업할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선물이다.
 끝으로 소중한 선물을 더 받으려면 조금은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면 좋겠다는 작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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