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역사가 현재에 던지는 의미
아픔의 역사가 현재에 던지는 의미
  • 김효진 기자
  • 승인 2016.04.13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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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제동원의 아픔과 무뎌진 발걸음

 

 

  발목 언저리를 간신히 적실만큼 비도 얌전히 쏟아지는 날, 영도에서 적어도 두 시간 정도는 달려 도착한 기장군에서 배차간격이 120분이나 되는 마을버스를 한 시간이나 더 탔다. 그제야 기장군 일광면에 위치한 ‘일광광산’과 그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는 것은 둘째 치고 해가 뉘엿해지니 버스가 없어 돌아갈 걱정이 절로 들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찾아오기도 힘든 곳에 강제동원의 역사가 담긴 표지판 하나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TV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우토로 마을이 전파를 탔다. 이후 우토로 마을과 강제동원이 행해졌던 하시마 섬이 재조명 되었지만, 여전히 일제강점의 아픈 기억,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에 표지판 하나 제대로 없을 만큼 발걸음이 무디다. 이곳 기장군의 일광광산처럼 말이다.

 

 

 

 

  차근차근 밟아보는 그날의 기억

01.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에 위치한 광산마을의 모습

_ 일광광산은 부산에서도 위쪽 끝자락의 시골 마을에 위치해 있다. 이곳 광산은 일본의 대표 기업인 스미토모 광업주식회사의 운영으로 강제노무동원이 일어난 곳이다. 규슈와 훗카이도에서 광산사업에 주력하던 스미토모사가 30년대 말 조선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이곳 일광광산 채광활동에 많은 조선인이 끌려왔다고 한다. 마을에서 뒷산 방향으로 조금 걸으면 광산 입구에 강제동원의 앞잡이 격인 스미토모사의 사무실과, 강제동원 된 조선인들의 숙소가 나온다. 옛날과 다를 바 없는 목조 건물의 모습은 그 시절에 멈춰 있는 듯 했지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라는 안내나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광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사람의 발걸음이 드문 듯 무성한 풀과 이끼는 희미해진 관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일광광산’ 강제 동원, 

   비 인륜적 노동 착취

02. 방치된 듯 보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동원자들의 숙소


_ 이곳 일광광산은 일제강점기 때 인력을 강제로 동원되었던 현장이 그대로 남아있는 편이다. 광산은 이미 폐쇄되어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무리였지만, 해가 넘어가는 시각에 바라본 광산과, 광산입구의 사무실, 그리고 강제동원자들의 숙소는 금방이라도 야위고 지친 얼굴의 노역자들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 기록에 따르면, 이 광산에서 일한 조선인은 ‘1944년 4월 1일 이곳에 끌려와 그날 이후 쉬는 날도 없이 고된 일을 반복해야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는커녕, 몸을 누이기에도 열악한 숙소에 쉬는 날 없이 매일 주간과 야간 2교대로 구리 채광에 동원 되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임금을 받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며 발가락 등이 절단되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 사람도 부지기수다.

 

 

 

 

  7,827,355명의

  아픔의 상징물


03. 일제강제동원역사관 _ 광산의 강제노무자들
_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 총수는 자그마치 7,827,355명.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10년 동안 한반도 지역 강제동원 사업장과 군사시설 조사 결과 국내 8천3백여 곳에서 강제동원이 있었던 것으로 공식 확인되었다. 특히 이 가운데 부산·경남 지역에만 광산 266곳과 공장 98곳 등 모두 707곳이 확인 되었으며, 젊은 청년들뿐 아니라 10살 남짓한 어린아이까지 사지만 멀쩡하면 다 끌려가는 일도 있었다. 강압적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노동재해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조차, 사과 한마디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더욱 슬픈 것은 이런 아픔이 녹아있는 현장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제동원 현장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아픔의 상질물이라는 의미에서 가치가 높다. 이에 지난해 12월, 부산 대연동에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문을 열었고 올 초 위안부 소녀상이 부산에 세워지는 등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일광광산을 비롯해 당시의 현장들이 보존 된다기보다 방치되어있는 모습에 가깝다. 이미 발길이 끊겨 잊혀가는 모습으로 말이다. 대부분의 현장들이 조그만 표지판 하나, 설명 하나 없이 덩그러니 놓여만 있을 뿐이다.

 

 

 

 

  아픔의 역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

04. 일제강제동원역사관 5층, 시대의 거울

_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 5층, 전시물을 둘러보고 나면 ‘시대의 거울’이란 곳을 지나게 된다. 이 시대의 거울 가운데 놓인 철길을 따라 걷다보면 양 옆에 피해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강제동원 된 이들의 이름이 모여 만들어진 그들의 모습 위에 철길을 걷는 내 모습이 거울로 비춰진다. 괜히 묘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이 조형물은 박물관 측에서 ‘해결되지 않은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우리의 몫이란 아픔의 역사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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