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보내는 글, 해양학술
바다로 보내는 글, 해양학술
  • 윤종건 기자
  • 승인 2016.04.13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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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학이란 무엇인가?

_해양문학을 언뜻 들을 때는 ‘바다가 등장하는 문학’정도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해양문학은 나름의 고유 장르와 학술적 범위를 갖고 있다. 학술적 의미의 해양문학이란 ‘근대적인 해양에 대한 체험이 중요한 지배소가 되는 문학’이며 근대성과 체험성, 이 두 가지 요건에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근대해양을 향한 글

_근대성은 해양문학의 시작점이자 해양문학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전근대적 사고의 해양인식이 ‘동경과 관조’였다면, 근대적 사고의 해양인식은 ‘개척과 발명’으로 확대되었다. 아래 제시된 시는 시인 최남선이 쓴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의 일부분이다. 이 시는 해양시의 근대성을 드러낸 대표작으로 꼽힌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_시의 제작 당시인 1927년은 우리나라에 근대문명이 물밀 듯이 밀려온 때였다. 따라서 시에 등장한 바다의 파도는 근대문명이자 근대문물이며 이는 소년, 즉 선각자에게 주려고 했던 신문물이다. 시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해양은 근대의 표지를 지니는바, 해양문학 또한 이러한 해양에 기원을 둘 수밖에 없다. 일부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해양과 근대가 등가임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해양이라는 개념자체가 그만큼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대와 근대성을 논외하고는 해양문학을 설명하기 어렵다.

바다에서의 기억을 써내려간 글

_근대성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던 한국해양문학의 확대는 해방 이후 대륙과의 단절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의 변화에서 기인했다. 대륙을 통한 활로가 막힌 한국에게 나아갈 곳은 해양이 유일했으며 부산은 그 중심에 섰다. 또한 1960년대 정부의 해사산업 육성정책아래 해운업은 가파르게 성장가도에 올랐고 많은 해기사를 양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해양문학은 근대성을 넘어 해기사들을 중심으로 한 체험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가가 바로 시인 김성식이다.

<김성식의 작품세계>

_1962년 한국해양대학 항해과를 졸업한 김성식은 1967년 9월 미국 소재 라스코 해운 3등 항해사로 해양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문학활동은 1970년 말 승선 중에 투고한 시 <청진항>이《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화된다. 한국해양문학에서 그의 해양시가 아직까지 독보적인 것은 그처럼 많은 해양 시를 쓴 사람은 한국 문학사는 물론이고 세계 문학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선장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선원의 구체적인 삶’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을 상당수 발표했다. 아래는 김성식의 시 <갑판(甲板)을 정비하며>의 일부분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느낀다 / 하루종일 날이 선 망치로 / 두드리던 갑판의 저 쇠울림이 / 찡하게 어깨를 진동시켜 / 녹슬어 녹으로 가득 찬 / 심장 한 모서리가 / 까맣게 시들어감을 막으려 / 우리들 몸 여기 저기를 / 쪼아대는 아픔 삼키면서 / 매일매일 갑판을 닦아내고 있었음을 / 바다가 좀 조용해지면 / 세상 모든 썩은 것들을 중오하며 / 거센 주먹을 휘두르듯이 / 우리들은 갑판 구석구석을 정비한다

_시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갑판을 정비하는 선원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 시인은 표면적인 행위와 함께 ‘녹슨 심장’, ‘쪼아대는 아픔’등과 같은 표현을 활용해 선원의 자기정화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세상 모든 썩은 것들을 증오’한다는 표현을 통해 근대세상을 향한 선원의 저항성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선원의 구체적 삶과 인식’을 묘사하고자 했던 김성식의 시적 경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해양문학의 다양한 확장

▲ 우리대학 도서관 앞에 위치한 김성식 시인의 겨울바다 시비

_근대의 해양문학에는 지역발명, 식민지배, 타자정복과 같은 근대적 주체의 시각이 고스란히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해양문학도 다양한 해양문학에 착목하기보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근대 세계를 향하는 모험의 서사에 주력해왔다. 또한 체험(경험)이라는 준거를 강조하는 동안 작가들이 해양문학의 바탕이 되는 콘텐츠 탐구에 집중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이에 해양문학이 문화콘텐츠라는 관점에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① 해양도시들을 잇는 거대 공간 재현 : 해양을 주무대로 하면서 해양도시들을 잇는 거대 공간을 재현하여 다문화적인 상상력을 내용으로 하는 서사가 요청된다.

② 해군 소설 : 영미권 해군 문학은 매우 발달해 있다. 우리의 경우 해군소설의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순신 서사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요청되는 한편, 현대적인 해군소설의 가능성을 탐문해가야 할 시점을 맞고 있는 것이다.

③ 연안역 문학 : 연안역 문학은 지구적 시각에서 지역적 연안 문제를 재현하는 해양생태환경문학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연안역 문학은 어촌과 섬, 어항, 등대, 항구, 해수욕장 등과 같은 다양한 해양문화 콘텐츠를 배경으로 창작될 수 있다.

앞으로의 해양문학을 위해

_얼마 전 한국해양대가 후원하고 부산일보가 주최하는 해양문학상 공모전이 대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공모전 심사위원들에 따르면 해양문학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이 ‘바다에 대한 감상’에 그치거나, 실제 체험이 아닌 지도를 보고 쓴 듯 구체성이 떨어지는 글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한국해양대 구모룡 교수(동아시아학과)는 “해양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바다만 등장시키는 문학은 해양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며 “앞으로도 해양문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콘텐츠와 결합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해양문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_21세기 세계는 신 해양의 시대이며 해양은 근대성을 뛰어 넘어 세계화의 장으로 접어들었다. 구 교수는 “해양문학도 이러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해 교역과 교류의 열린 공간 사이에 만들어진 문화변동을 담아내야하며 국민국가의 억압으로 사라져가는 해양문화를 살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해양문학이 이제는 영미문학을 뒤따르는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 나가야 할 단계를 맞고 있다”며 “이를 위해 해양문학을 ‘바다가 등장하는 문학’과 같은 소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근대성’과 ‘체험성’을 기반으로 해 달라지는 해양문학의 지평을 보다 유연하고 풍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참고자료 : 구모룡,《해양문화》《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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