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해양대 학생에서 교수로 귀환한 미소천사!
[안녕하세요 교수님!] 해양대 학생에서 교수로 귀환한 미소천사!
  • 김효진 기자
  • 승인 2016.04.13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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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공학과 채규정 교수님

 

 

  남자들의 로망,

  총을 만들다

_ 어렸을 때는 자기주장이 확실한 아이였다. 스포츠도 좋아했고, 과학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또한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유년시절하면 뭔가를 만들던 기억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초등학교 때 총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남자들은 총에 대한 로망이 다들 있다. 어렸을 때 화약총을 가지고 많이 놀았는데, 사냥하는 사람들이 공기총을 가지고 비둘기도 잡고 하는 것을 보고는 진짜 총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있는 긴 판으로 된 의자의 나무를 하나 뜯어와 프레임을 만들고 우산 가운데 대를 꺼내 총구, 총신을 만들었다. 맨 끝에는 자전거 바람 넣는 곳을 잘라내 총알이 들어갈 수 있는 나선형 홈을 만들었는데, 화약을 조금 넣어서 방아쇠를 고무줄에 연결해 놓으면 화약이 탁 터지면서 총알이 앞으로 나갔다. 나무에도 박힐 정도로 세고 위험해 아버지께 혼나긴 했지만, 진짜 내가 만들어놓고도 감탄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해양대에 오다!

_ 솔직히 말하면, 고향이 이곳도 아니고 한국해양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수능 1세대였는데 8월, 11월 두 번의 시험을 본 후 마음에 드는 성적이 아니라 재수를 할까, 대학을 가지말까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친구네 집에서 친구 아버지가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 사진이 바로 우리대학의 항공사진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멋진 학교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 사진 한 장에 바로 매료되었다. 때마침 해양과 환경이 만난 해양환경공학과라는 새로운 학과가 궁금해졌고, ‘나 저기 가야겠다’는 생각에 조도에 입성했다.

 

 

 

  대학시절,

  공부에 대한 흥미와

  즐거운 생활들

_ 고등학교 공부나 중학교 공부에서는 그렇게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냥 공부하는 거니까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학교에 오니 공부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관심 있는 분야를 더 찾아보고 공부하는데, 공부가 이런 거구나 하는 재미가 생겼다. 우리 학생들이 대학 수업이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난 사실 참 재밌는 것이 대학시절 공부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으면 하고 관심 있는 분야를 더 찾아볼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가. 그래도 보면, 공부는 어느 순간에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 시점을 맞이하면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 그렇다고 대학시절에 그렇게 공부만 한 것도 아니다. 미팅, 소개팅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특히 나는 아치사에 살았는데, 방학 때도 방을 비워야하는 기간이 아니고서는 학교가 좋아 계속 남아있었다. 바로 옆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수영 후엔 테니스도 치고. 기숙사에 와서 낮잠 한 숨 자고서는 연극동아리에 관심이 있어 부산 외부의 연극동아리에 놀러 가기도 했다. 동기들과 함께한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일학년 첫 학기 후 동기들과 함께 SK텔레콤과 중앙일보에서 주관하는 대학생 환경국토대탐사에 참여했는데, 지금의 공모전과 비슷하게 대학생 20팀에게 300만원을 주며 방학 때 국토탐사를 한 보고서를 써내는 프로젝트였다. SK텔레콤에서 팀당 두 대를 줬었는데, 그때 당시 휴대폰이 처음 나온 때라 당시 돈으로 300만 원 정도 했다. 그런데 다시반납해야 하는 휴대폰을 탐사 중 숙소에 도둑이 들어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었다. 또 나름 선전해서 마지막에 입상을 하게 되었는데, 시상을 하는 곳이 청와대 근처여서 상 받으러 간다는 게 청와대 쪽으로 잘못 들어갔다. 갑자기 누가 어깨를 딱 잡더니 청와대를 지키던 사복경찰을 만난 웃픈 에피소드도 있었다.

 

 

 

  교수로

  부임하기 까지


_ 대학원에서 석사공부까지 하면서 석사 후에는 사회경험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기업 병역특례가 되는 자리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IMF가 터져서 대부분의 곳에 자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석사 2년차 마지막 발표 후 코오롱 엔지니어링에 위원장으로 있는 분이 내 발표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또 그분이 좋게 봐주셔서인지 회사 연구소에 병역특례로 갈 수 있게 되었다.
_ 처음 3년간은 회사에 필요한 현장 연구도 하고 재밌게 생활을 했는데, 그 순간이 지나자 미래에 어떤 것을 할까 생각하게 되었다. 병역특례가 끝나자마자 사표를 내고 당시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가 계신 고향 근처의 광주과학기술원에 박사과정을 하려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붙잡는 조건으로 공부를 지원해주겠다고 말을 했고, 다시 박사학위과정 3년 후 회사에서 5년간 지내게 되었다. 그 후 다시 사표를 내고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사실, 학교에 오기 전에 중국과학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와 사표를 쓴 후 가기로 준비를 해놓았다. 심지어 현지에 실험실 세팅도 해둔 상태였는데, 우리대학 우리학과에서 교수채용공고가 뜬 것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쪽이 더 맞는 것 같아 우리대학에 오게 되었다. 지금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전생에 무엇이 있었는지, 어찌 보면 인연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_ 나도 대학생 때 꿈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었다. 진로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을 했고 22살에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웠다. 20대는 꿈을 세우는 단계, 30대는 준비하는 단계, 40대는 화려한 40대로 어떤 분야든 최선을 다해서 내일을 꽃피우기, 이를 바탕으로 50대는 연륜이 묻어나는 관록의 50대, 60대는 놀기, 일 안하고 봉사하러 다니는 등의 십년 터울의 계획을 세웠다. 지금 해주고 싶은 말은, 인생의 목표를 너무 짧게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취직이 안 되거나 눈앞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좌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금 더 길게 잡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았으면 좋겠다.
또 하나 바라는 것은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하면서 사제 간의 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카드를 써준 적이 있다. 작은 성의지만 마음을 전해준 것에 대해 너무 감동스러웠다. 사제 간의 정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매스컴에 나오는 대학은 너무 삭막하다. 이런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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