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그들이 사는 세상
  • 윤종건 기자
  • 승인 2016.06.07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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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청년연극인들의 이야기

 

_영화계에서는 '천만 영화'의 등장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연극계는 낮은 관객수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극단의 존립조차 흔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산의 대표 연극제라 불리는 ‘부산 국제 연극제’마저 지난해 60%이상 찼던 객석을 올해는 반도 채우지 못했다. 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나날이 줄어드는 수요의 어려움까지. 연극인들이 살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사진1] 부산국제연극제 대상 '표풍'

_현장의 이야기 궁금했다. 수치로서 그려지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각 예술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무작정 소개를 받아 찾아간 곳에, 올해 ‘표풍(漂風)’이라는 작품으로 부산 국제 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들이 모였다. 그들은 연극을 통해 진심을 표현했고, 열정과 땀방울로 삶을 빚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왜 연극배우가 되었는가?

_배우란 사람을 웃기기도하고 눈물 흘리게도 하는 직업이기에 사람들의 감정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연극배우의 경우 다른 매체문화보다 관객들에게 더욱 직접적인 감동을 줄 수 있다. 올해로 연극 9년차에 접어든 권혁진(30)씨는 원래 연극의 길을 꿈꾸지 않았다. 대학도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런 그가 연극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연극하는 선배의 권유가 있던 후였다. 선배는 그에게 같이 연극을 해볼 것을 권했고, 그 때 그는 연극의 재미를 알았다. 군 제대 후, 영화학과를 복수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에 돌입한 그는 극단을 찾아다니며 연극을 배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재 그는 연기할 때가 제일 행복한 진짜 ‘배우’가 되었다.

 

[사진2] 부산국제연극제 대상 '표풍'

_고미선(30)씨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학과 전공을 꿈꿨으나 정형화된 입시미술에 지겨움을 느꼈다. 그래서 어릴 적 꿈이었던 피아노로 진로를 다시 틀었다. 그런 그녀에게 피아노 선생님은 뮤지컬을 소개했다. 그녀가 전공하고 싶었던 피아노, 성악, 그리고 미술(무대디자인)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Musical을 ‘뮤직헐’로 적을 정도로 뮤지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그녀지만, 대학생활은 그녀의 인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대학을 입학하고 한 학기동안 무대를 배우면서 무대의 맛을 알았다. 1학년 때 잠시 휴학을 하고 개인적 시간을 가질 때도 그녀는 미치도록 무대를 그리워했다. 그 길로 복학해 계속 극단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연극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진 3] 연극연습에 열중인 그들. 대사뿐만 아니라 안무적인 요소도 중요하다.

[사진 4] 연극연습에 열중인 그들. 대사뿐만 아니라 안무적인 요소도 중요하다.

나는 왜 연극을 하는가?

_연극을 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연극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만큼이나 뜨거운 질문이 있을까? 그 누구도 연극을 강요한 적이 없을 텐데, 그들이 지금까지 연극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김아름(30)씨는 고등학교 때 연극을 처음 배웠다.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연극을 미치도록 하고 싶다는 감정적인 끌림이 더욱 강했다. 극단에 처음 들어간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믹스커피를 타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남은 잡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극단이 그런 곳인 줄 알았으면 절대 안 들어갔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녀지만, 어느새 인생에서 연극을 제일 재밌어하는 ‘배우’가 되었다. 그녀는 “내가 연극에서 재미를 찾지 못했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었다”며 “지금의 나는 연기할 때가 제일 재밌고 무대에 설 때가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오늘도 연기한다”고 전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오는 고비

_2015년 예술 활동 연 평균 수입을 살펴보면, 부산의 지역 예술가 중 72.8%가 500만원 이하의 수입을 얻고 있다. 2016년 1인 가구의 연 최저생계비가 약 78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턱 없이 부족한 수치다. 현장에서 일하는 배우들 역시 상황이 넉넉지는 않다. 권혁진 씨는 연극 하는 사람들을 ‘하루살이’라 말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들처럼 연극배우들은 저축도 어렵다.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며 벌어먹고 살만하다는 말은 자기 몸 하나 건사한다는 말이다. 올해로 32살인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가진 친구들을 볼 때면,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크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가장 큰 고민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다. 그럼에도 그는 공연하는 날이 되고 무대에 올라서면 “마음속에 어떤 어려움도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 없이 많은 고비를 넘겼을 그가 지금까지 연극계에 남은 이유다.

 

[사진 6] 연습은 보통 다 늦은 저녁이 돼서야 끝난다.

_김아름씨 또한 낮은 수입에 하루에도 여러 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돈이 없을 때 가장 그만두고 싶지만, 내가 모자라서도 아니고, 직업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환경이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다”며 “그만 두고 싶을 때마다 참 다행이도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같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 오늘 하루도 고비를 넘긴다.

 

부산에서 계속 연극할 수 있을까?

_문화예술부문의 수도권 편중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문화예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비와 공급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부산은 둘 다 부족하다. 특히 문화예술의 공급은 예전부터 지적되어온 문제다. 박 센(30)씨는 “서울에 대학로만 가도 수십개의 소극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반해 부산은 예술을 만들어내고 누리는 데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며 “시장의 규모자체가 다르니 연극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어려운 점이 크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내 놓은 <2015 문예연감>을 살펴보면 부산의 예술활동 수는 308개로 서울의 1,212개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이는 인구 비례를 따져보아도 부족한 수치다. 고미선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1년 정도 극단생활을 했다. 그녀가 서울에 있을 때는 몰랐으나 부산에 내려오고 나니 자신이 타지에서 외로웠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마음 같아서는 부산에서 계속 연극하고 싶지만, 문화예술 특히 연극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서울을 가야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_지역 예술의 어려움은 공평하지 못한 지원금에서도 차이가 난다. 극단을 운영하는 권혁진 씨는 “재정적인 문제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로 내려오는 문화예산의 대부분은 서울이 먹다보니, 지방의 극단들은 남은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극단 또한 어려운 재정여건 때문에 공연을 기획하면 배우와 스텝들에게 돈을 십시일반 걷어 진행할 때도 있었다. 당연히 페이는 물론 교통비도 줄 수 없다. 그러다보니 배우들에게 극단의 일을 강요할 수 없고, 그 또한 소속된 극단 외의 일도 함께 병행한다.

 

나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 것인가?

_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상당시간 연극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다. 그런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권혁진 씨는 “긴 시간 연극을 해오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며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작품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쟁쟁한 배우들이 만났을지라도 호흡이 깨지면 훌륭한 작품이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는 연극에 한정되기 보다는 좀 더 다양한 매체에서 연기활동을 해보고 싶은 목표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센 씨도 “내가 앞으로 지금처럼 연극을 계속 할 수도 있고, 기회가 닿아 TV나 영화에 출연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내가 개척하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내고 싶다”고 그는 웃으며 전했다.

 

_인터뷰가 마무리 될 무렵, 권혁진씨는 웃으며 자신과 단원들을 바보라고 표현했다.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벌면서 꿈을 위해 꾸역꾸역 살아가는 자신들의 모습이 바보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그들의 삶에 꿈을 향한 진정성이 살아있기에,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 자체로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윤종건 기자

j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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