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갈 때 가더라도 어묵 한 꼬치 괜찮잖아
[문화] 갈 때 가더라도 어묵 한 꼬치 괜찮잖아
  • 윤종건 기자
  • 승인 2016.06.07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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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의 신세계를 찾아서

_고소한 기름에 달달 볶아 밑반찬으로 먹고, 뜨끈한 다시마 국물에 담가 술안주로도 먹고, 뜨거운 기름에 튀겨 간식으로도 먹는 어묵.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음식이기에 어묵의 가치가 서서히 잊히는 듯했다. 그런 와중에 고급화와 다양화라는 새로운 활로를 찾은 어묵은 다시 한 번 빛을 발할 기회를 잡았다. 온갖 향토음식과 독특한 간식이 줄을 잇는 부산의 맛 쟁탈전 속에서 나날이 승전보를 울리고 있는 부산어묵의 신세계로 들어 가보자!

 

왜 부산어묵인가?

_국어사전 속 어묵은 ‘흰색의 물고기 살을 으깨어 소량의 소금·설탕·녹말 등을 섞어 반죽한 것을 가열하여 응고시킨 음식’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유독 부산어묵이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어묵이라고 해서 부산에서 잡히는 흰살 생선을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부산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아야한다.

 

_예로부터 부산은 육지와 해양을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한민족 특유의 요리법과 외부로부터 전파된 다양한 나라들의 식재료가 뒤섞이면서 다양한 음식문화를 창조해왔다. 이러한 문화는 1876년 개항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했다. 일본과 인접한 부산에 대거 이주한 일본인들은 영도, 기장, 하단 등에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조선음식과는 다른 일본의 음식들도 전파되기 시작했다. 특히 부산은 수산업이 발전하기 좋은 환경적 요건이 어우러져, 시간이 흐를수록 어묵을 비롯한 일본 음식이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다.

 

_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어묵제조시설을 가지고 몇몇 조선인들이 어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부산의 1세대 어묵산업 종사자들이다. 이후 한국전쟁과 산업화의 궁핍한 시기를 거치면서 어묵은 값싸고 기름진 음식,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인식되었다. 이들에게는 어묵 몇 장을 사가지고 들어와 밥과 볶아 먹는 것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는 반찬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부산어묵은 부산의 지난 역사와 그 걸음을 같이하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남포동에서 60년 넘게 맥을 이어온 백광상회는 어묵탕이 대표 메뉴다. 창업자인 남편과 지금껏 운영해 온 조수련 사장은 “예전부터 어묵탕은 없는 사람들이 소주 몇 병 시켜놓고 하루 종일 시간 보내기 좋은 메뉴였다”며 “요즘도 우리 국물 맛을 못 잊어 수십 년간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웃으며 말했다.

 

60년 넘게 남포동을 지켜온 백광상회의 어묵탕

나날이 올라가는 어묵의 인기

_부산을 대표하는 먹거리였으나, 여전히 어묵은 값싼 반찬이자, 김밥에 들어가는 부재료일 뿐이었다. 이러한 어묵에 새로운 바람이 분 것은 2013년부터였다. 부산발전연구원은 연구보고서에서 어묵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전통적 형식의 어묵생산과 유통시스템에서 벗어나 제조와 유통과정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하여 부산어묵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어묵산업은 식자재 가공업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매장의 고급화로 백화점에도 대거 진입해 ‘고급 베이커리’로의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단순히 ‘생선묵 제조’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는 치즈, 깻잎, 소시지, 문어다리, 가래떡, 새우 등과 적절히 혼합해 창의적 종합식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_이러한 노력 덕분에 2015년 부산의 어묵시장 규모는 3,000억 정도로 부산시는 추산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 어묵시장의 37.5%에 해당한다. 높아진 인기를 증명하듯 유동인구가 많은 부산역 내에 어묵매장은 어묵을 사려는 손님들로 줄을 잇는다. 업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삼진어묵은 2013년 매출액이 82억 원이었으나 2014년 210억 원, 2015년은 530억 원으로 2년 만에 6.4배로 성장했다. 명실상부한 어묵계의 ‘큰 손’으로 성장한 것이다. 어묵을 구매하기 위해 KTX역사 내 삼진어묵 매장을 찾은 강성민(23·대전)씨는 “가족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어묵 크로켓과 같은 색다른 제품을 구매했다”며 “어묵은 부산이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빵집처럼 어묵도 골라 담아 먹자 (부산어묵 영도점)

이 중에 네 취향 하나쯤은 있겠지

_지금처럼 부산어묵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어묵의 다채로운 변화 덕분이다. 땅을 기고, 하늘을 날고, 바다를 헤엄치는 모든 먹거리는 부산어묵의 재료가 된다. 입맛따라 모양따라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한 어묵의 각양각색을 살펴보자.

 

① 문어다리꼬치어묵 : 문어다리와 어묵을 한데 모아 직화에 맛있게 구워냈다. 쫀득쫀득한 문어의 맛이 일품이다.

문어다리꼬치어묵

 

 

 

② 치즈빵빵 : 좀 더 색다른 맛의 재미를 찾고 있다면 치즈빵빵을 추천한다. 크림치즈의 고소한 맛은 느끼하기 보다는 부드러워 누구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치즈빵빵

③ 고구마말이 : 단순히 고구마를 갈기 보다는 적당히 찐 고구마를 송송 집어넣어 씹는 내내 고구마 특유의 식감과 고소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고구마말이

④ 옥수수핫도그어묵 : 빵 대신 옥수수와 어묵으로 소시지를 감싸 안았다. 쫄깃한 어묵에 부드럽게 씹히는 옥수수의 고소함이 금상첨화를 이룬다.

 

옥수수핫도그어묵

_이 외에도 통깻잎말이어묵, 떡말이어묵, 통새우말이어묵, 고추튀김어묵, 참치치즈볼어묵, 베이컨말이어묵, 흑임자어묵 등 모두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한 어묵의 무한변신은 지금도 계속된다.

 

부산어묵의 새로운 도전

_부산 소비자연맹이 작년 11월 ‘지역상품인식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부산시민 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부산지역상품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40%인 220명의 시민이 ‘부산어묵’을 1위로 선택했다. 생선회와 기장미역이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2년 전 2013년 조사결과 ‘기장미역’이 1위를 차지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업계의 다양한 상품개발, 고급화, 브랜드화, 공격적인 마케팅이 빛을 발한 것이다.

 

_이제 부산어묵은 관광 효과를 창출하는 6차 사업으로 거듭날 채비에 들어갔다. 베이커리형 매장 중심의 새 수요를 창출하는 데서 나아가 지역 재생 사업과 연계한 대단위 '어묵 빌리지'를 꿈꾸고 있다. 어묵기업인 고래사어묵은 사하구에 체험·관광형 어묵 공장(사업비 100억 원) 막바지 공사에 한창이다. 앞서 삼진어묵도 기존 영도 공장 내 어묵 체험·역사관을 인근 봉래시장의 역사를 가미한 콘텐츠로 확대·개편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수산업계는 이 두 업체가 사하와 영도를 기점으로 경쟁적으로 관광 인프라를 개발하면 부산 어묵 관광 산업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람들로 줄을 잇는 이화동 ‘어묵 고로케’

_흐른 시간만큼이나 부산어묵은 외형도 부속물도 조리방식도 크게 변했다. 그럼에도 지역의 음식은 그 곳의 문화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말처럼, 부산어묵에 담긴 부산사람들의 삶과 애환은 아직 여전하다. 오늘도 부산어묵은 부산을 거쳐 가는 많은 이들의 손에 들려 전국 이곳저곳으로 떠나간다. 그리고 부산어묵에 담긴 부산의 이야기도 함께 떠나간다.

 

윤종건 기자

jk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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