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생활보고서] 3부_ 낭만전쟁
[청년생활보고서] 3부_ 낭만전쟁
  • 김효진 기자
  • 승인 2016.06.10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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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낭만의 변화,
  ‘쉬는 시간’이 필요해

 

‘낭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문조사 그래프 (대학내일20대연구소 제공)

_낭만에 대한 노래하면 요즘 대학생은 ‘낭만고양이’를, 8090학번은 ‘낭만에 대하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신기하게도 이런 걸 두고 세대 차이를 느낀다. 뿐만 아니라 낭만에 대한 정의도 사뭇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8090학번들에게 낭만의 키워드가 ‘이성교제’ 혹은 ‘여행’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의 대학생들은 ‘여유’라는 키워드로 정의하고 있다. 과거 각종 문화·여가 생활들에서 시간적인 혹은 경제적인 여유로 낭만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대학생의 40%가 낭만이란 ‘시간적인 여유로움’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연구소는 현재의 대학생들이 학업과 취업 및 스펙 준비, 생활비 부담 등으로 인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지쳐있다고 분석했다. 도서관에서 만난 해과기대 임모 학생은 “왠지 모르게 시간에 뒤쫓기는 것 같다”며 “여행도 좋고 남자친구도 좋은데 그냥 마음 놓고, 걱정 놓고, 공부도 놓고 쉬는 게 소원이다”고 답했다. 지금 우리에게 낭만이란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내 거친 취업과,
  불안한 미래와,
  그걸 지켜보는 나….


_대학생의 77%가 낭만의 존재에 대해 동의하고 있지만, 실제로 2명중 1명은 졸업 후 진로걱정으로 낭만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한다. 낭만을 누리는 것도 흡사 전쟁과 같아진 것이다. 우리대학 10학번 박모 학생은 “솔직히 취업 부담이 크지 않다면 거짓말이다”며 “몇 번 실패하고 나니 의기소침해지고 노는 건 죄인이 된 기분이다”고 표현했다. 취업준비생 뿐 아니라 대학 내 만연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사상최악으로 치닫는 청년실업률과 불확실한 미래는 갓 입학한 새내기들까지 짓누르고 있었다. 본인을 풋풋하지 않은 새내기라 소개한 김모 학생은 “지금 당장 꿈이나 목표가 확실한 것이 아니라 더 불안하다”며 “그래서 시험기간은 아니지만 토익공부라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함에 이것저것 하게 된다는 것. 불안에 떠는 대학생들에겐 낭만을 즐길 여유보다 미래에 대한 부담감과 짐이 더 큰 것이다.

 

‘낭만을 방해하는 요인’에 대한 설문조사 그래프 (대학내일20대연구소 제공)

 

 

  취업이란 잣대를 욕할 수 있나,
 
중요한 건 사회적 분위기

_이렇듯 우리가 불투명한 미래에 떠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취업이다. 그리고 그 취업을 위한 대학이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여타 대학들은 ‘취업양성소’라는 별명을 떼지 못하고 있다. 사회수요가 적은, 즉 취업이 잘 되지 않는 과의 정원을 줄이고 수요가 많은, 취업이 잘되는 과의 정원을 늘리고 있다. 우리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구조개혁에 따라 학과를 통폐합 시키고, 전문기술인 양성을 위해 교양교육과목, 인문과목 보다는 전공과목의 비중을 더 크게 두고 있다.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에서 운영하는 전체 교육과정영역 중 교양과목은 10개 중 2개 수준에 밖에 되지 않는다. 연구팀은 “대학 교육의 핵심은 전문적인 지식을 통한 전문기술인만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다”며 “교양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능력, 합리적 의사소통능력 등을 갖춘 전인적 인재를 육성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아이비리그 대학의 경우 교양교육과정을 30~40% 정도로 편성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교양과목이 현저히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학만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왜 대학을 가는가’에 대해 가장 많은 46.7%의 대학생이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라 답했다. 결국 대학의 ‘취업양성소’라는 별명은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 사회 변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취업이라는 잣대를 진리의 상아탑에 들이미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솔직한 잣대를 누가 추악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대학내일20대연구소 박진수 수석연구원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에너지 넘치는 20대의 많은 대학생들이 역대 최악의 실업난 속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낭만이라는 개념도 이전과 다르게 변해가는 형상은 향후 우리 사회의 질적 행복수준을 걱정하기에 충분하다”고 전했다. 덧붙여 “20대들의 현실적인 스트레스와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무심코 그려본 낭만

‘나는 왜 대학을 가는가’에 대한 설문조사 그래프 (EBS 제공)

_길 가던 학생들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당신이 꿈꾸는 낭만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수없이 다양하고 각기 다른 답이 쏟아져 나왔다.
  ‘20몇 년째 모태솔로인데 캠퍼스를 여자친구와 함께 걷는 것이 낭만 아닐까요’, ‘외국여행에서 운명적으로 인연을 만나는 거요’, ‘우리대학 앞바다에서 수영하고 낚시해서 회를 한 접시 먹는 것’….  취업 얘기를 할 땐 우울함이 뚝뚝 떨어지던 그들의 눈은 어느 때보다 생기 돋았다. 전쟁이 낭만이라고 할 수 없듯, 해맑은 그들의 낭만 또한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지현(환경공학과·14) 학생은 “더욱 무섭지만 위안이 되는 것은 이것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며 “나와 같이 힘들고 고민하는 사람이 수천, 수만 명 있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위로가 된다”고 전했다.

 

 

 

 시험기간 무심코 바라본 고양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의 표정에는 걱정 한 톨 없어 보였다. 요즘 중2병보다 대2병이 더 무섭다는 소리를 들었다. 사춘기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로 자신감이 과하게 넘치는 중2병과 다르게, 대2병은 취업 실패와 부담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대학생들을 가리킨다고. 괜히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초라해지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날이 갈수록 초조하다. 노래방에서 ‘낭만고양이’를 울부짖던 중2병, 그때의 자신감으로 걱정을 떨칠 수는 없을까.

 당신의 낭만은 전쟁이 아니다. 전쟁이 낭만이 아니듯.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낭만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것만이 캠퍼스에 남은 낭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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