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몸 튼튼, 마음 튼튼! 사람을 사랑하는 진정한 바다사나이
[안녕하세요 교수님!] 몸 튼튼, 마음 튼튼! 사람을 사랑하는 진정한 바다사나이
  • 김수영 기자
  • 승인 2016.09.01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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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군사대학 김용환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_안녕하세요 교수님! 코너는 학우들과 함께하지만 쉽게 여쭤볼 수 없는 교수님의 학창시절, 교직생활 등 교수님의 삶을 이야기하는 공간입니다.

 

몸 튼튼, 마음 튼튼! 사람을 사랑하는 진정한 바다사나이
해양군사대학 김용환 교수님

 

 

 

 

- 1980. 해군사관학교 공학사(기계공학전공)
- 1998. 충남대학교 대학원 행정학석사(국가안보정책전공)
- 2002. 12 ~ 2005. 12 국방부 장관 보좌관실 의전실장
- 2005. 12 ~ 2007. 11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사령관
- 2007. 11 ~ 2008. 04 해군본부 비서실 비서실장
- 2008. 04 ~ 2009. 11 방위사업청 무기체계 계약부장
- 2009. 11 ~ 2010. 07 해군대학 총장
- 2010. 07 ~ 2010. 12 해군본부 인사참모부 부장
- 2011. 01 ~ 2011. 05 해군본부 전평단 단장
- 2011. 05 ~ 2011. 07 해군본부 정책연구관
- 2011. 10 ~ 2012. 02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군사대학 개설준비 위원장
- 2013. 한남대학교 대학원 행정학박사(정책전공)
- 2011. 10 ~ 현재.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과학기술전문대학원 전임교수
- 2012. 03 ~ 현재.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군사대학 학장

 
인터뷰를 위해 찾은 교수님 연구실 문 앞,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라는 글귀가 기자를 반겼다.

꿈을 꾸던 그 시절, 아버지와 선생님
_어릴 적 여러 가지 꿈을 꾸었다. ‘섬마을 선생님’, ‘군인’ 등... 특히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기계를 직접 설비하며 제작하던 아버지의 영향에 이를 이어받아 공대를 가고 싶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공대를 가기위해 공고를 가야 하는 줄로 알아 용산공고 기계과에 진학한다. 하지만 실업계라는 현실에 부족한 학업준비로는 대학진학에 제약이 있었다. 이에 당시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야간에는 대학진학을 위한 준비를, 주간에는 실업계공부를 병행하게 된다. 공부를 하며 그는 다시 꿈을 꾼다. 결국 불철주야의 노력 끝에 어릴 적 가졌던 꿈들 중 군인이 되기 위해 사관학교를 선택한다. 수영은커녕 헤엄치는 법조차 몰랐지만, 제복이 멋져 해군을 선택했다. 이렇게 그는 바다사나이의 인생을 시작한다. 당시를 떠올리며 “다행히 사관학교를 합격했지만 아마 문을 닫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웃어보였다.

 

외로움은 독이 아니다
_꿈꾸던 군인,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생도 생활은 쉽지 않았다. 훈련은 엄했지만 훈련 외 시간을 통해 선배들은 고교동문 후배들을 챙겨주었다. 하지만 실업계 고등학교였던 용산공고를 졸업한 선배는 있을 리 없었다. “동기들이 선배들과 함께 외출할 때면 혼자 방에 남았었다”며 “부럽기도 하고, 외로웠던 시절이었다”고 당시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면회 온 아버지로부터 받은 테니스라켓으로 홀로 남은 시간에는 테니스를 쳤다. 함께 칠 사람이 없으니 목표를 정하고 벽을 상대로 연습을 했다. 한 번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결국 매번 목표치를 채워나갔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테니스를 치게 되어 5년 연속 ‘전국 교수 테니스 대회’에 우리대학 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또한 외로움의 시간을 동기를 대신해 당직을 서주기도, 수영연습에 매진하기도, 동기들의 추억을 위해 졸업사진 제작도 도맡아 했다. 이랬던 그의 노력과 솔선수범은 4학년, 그를 대대장 생도로 만들어 주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_한 개의 별을 달았던 군 생활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 중에서도 경북함(구축함) 함장으로 있던 때를 꼽았다. 당시 경북함은 ‘탑건’으로 포격술에 있어 해군 내 최고로 인정받던 함정이었다. 이에 2함대 평택에서 열리는 포격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동해에서 서해로 출발한다. 그러나 항해 중 좋지 않은 날씨 탓에 전선고착으로 인한 과열로 통풍관 화재가 발생한다. 다행이도 초기조치를 잘하여 큰 사고가 나지 않았지만 수리를 위해 진해기지로 회귀한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용환이 끝났다’며 암울한 미래를 예견했다. 화재원인을 밝히기 위해 감찰팀까지 출동했지만 내부적으로 결함이 없어 어떠한 문제도 지적받지 않았다. 이후 병기창 인원들의 열성을 다한 도움으로 시합 하루 전 수리를 마무리한다. 이에 거친 파도를 뚫고 전속력으로 항해한 결과 대회 시작 몇 시간 앞두고 평택에 도착한다. 그 해 해군 작전사 전체를 통 들어 전비태세 최우수함의 칭호를 갖게 된다. “최선을 다해준 대원 모두의 노력이 빛을 바랬다”며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을 함께 해낸 것이었다”며 당시의 영예를 떠올렸다.
_35년 6개월, 부하들을 관리해야하는 장교로서 그가 느낀 사람에 대한 관리, 올바른 리더십에 대한 정의는 ‘섬김의 리더십’이다. 헤아릴 수 있는 리더십으로 솔선수범하여 사람들이 따르게 하는 것. 진실해야 하며, 인정, 존중, 배려의 ‘인·중·배’를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다 사나이, 섬마을 선생님이 되다
_해군과 맺은 학·군 교류협정서를 토대로 해군대학 총장, 해군본부 인사참모부 부장의 경력을 살려 2011년 해양군사대학 개설준비 위원장으로 우리대학에 오게 된다. 군인에서 교수로 삶의 변화는 단연 어려움이 따랐다. 학칙, 규정, 강의개설 준비 등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더군다나 문화의 차이도 있었다. “예를 들어 5시 약속을 잡으면 30분, 15분전 대기가 있는 해군의 특성이 몸에 뵈어 항상 모임의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학교에 와서 보니 5시 약속은 그때부터 모이기 시작한다. 시간개념이 달랐지만 지금은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현재 그는 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초교육원에서 진행 중인 ‘국가안보론’과 ‘무기체계론’ 수업을 맡고 있다. 수업을 들었던 ROTC 후보생이 실무에서 소위로 나가 인사를 해올 때, 학생들이 학점정정을 위해 정성이 담긴 메일을 보내올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학점정정 메일은 하나하나 꼼꼼히 보고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는데 이제껏 바꿔준 적은 없다고 한다. 어릴 적 섬마을 선생님을 꿈꾸던 그는 정말 조도의 교수가 되었다.

 

몸 튼튼, 마음 튼튼!
_섬마을 선생님의 삶도 5년째를 맞고 있다. 수업은 항상 “몸 튼튼, 마음 튼튼”의 멘트와 함께 마무리 한다. 선창을 하면 후창은 학생들의 몫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생각에서이다. “과거부터 해양산업을 이끌었던 대학이라는 자부심과 해양에 대한 미래, 비전, 가치를 전해주고 싶다”며 교수로서의 목표를 밝혔다. 또한 학생들에게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최선을 다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바란다. 따라서 본인의 역량과 전문성을 키워 미래 해양 분야를 이끌어갈 든든한 인재들이 되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_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는 진정한 바다사나이 김용환 교수님의 인터뷰도 기자의 “마음 튼튼”이라는 외침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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