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학사회가 남긴 분노의 발자취
[사회] 대학사회가 남긴 분노의 발자취
  • 윤종건 기자
  • 승인 2016.11.29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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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분노가 들불처럼 번졌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의혹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전 국민적 분노가 치솟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난 12일에 열린 ‘2016 민중총궐기’ 행사에선 100만여 명의 시민이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에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에 목소리를 모았다. 이날 집회에선 전국 각 대학 총학생회의 깃발 아래 모인 대학생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사실 이번 사태에 가장 발 빠르게 의견을 모은 곳도, 다름아닌 대학이다.

▲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분노하는 대학사회와 엇갈린 시선

_ 지난달 26일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대한민국,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대학가 시국선언의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최순실 자녀 정유라의 입학·학사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총장사퇴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후 지역에 상관없이 전국 대학가에는 시국선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번 시국선언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한국외국어대는 지난달 28일 “국가의 뿌리를 흔드는 행위에 박 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국선언문을 영어, 중국어, 힌디어로 등 9개 언어로 번역해 낭독했다. 또한, 같은 달 31일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시굿선언’을 열어 굿판을 벌이고 예술인으로서 불의에 항거하겠다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년단체 ‘청년하다’의 유지훈 공동대표는 “예전처럼 말로써 사안의 엄중함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독특한 학교 문화와 기풍을 담아 일반 시민의 결집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_ 대학가에 시국선언이 확대되면서 대학사회 내부에서도 몇 가지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26일 민중연합당 등의 단체와 함께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다. 부산대신문은 학내보도를 통해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들의 의견 수렴 미비 △동참한 단체의 정치적 편중 등에 비판이 일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에 부산대 총학생회는 이달 10일 ‘우리 학교 총학생회 및 2만 효원인 일동’의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재차 진행했다. 고려대 총학생회 또한 시국선언문으로 홍역을 앓았다. 총학생회의 이름으로 발표된 시국선언문에 노동자연대 고려대 모임, 민중연합당·흙수저당 고려대 분회 등 특정 정치성향을 띤 단체의 이름이 병기됐고, ‘백남기는 죽이고 최순실은 살렸다’는 문구가 ‘최순실 국정농단’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학생들의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총학생회의 탄핵안이 발의되었으나 표결 결과 부결되었다.

_ 이와는 반대로 총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시국선언을 진행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울산대 총학생회는 “시국선언 진행이 모든 학우의 의견이 아닐 수 있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고, 인제대 총학생회 또한 “대표성을 띤 학생회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으로 비칠 수 있어 중립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 3일 각 대학 일반 학생들이 주도해 총학생회는 불참한 채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부경대 총학생회 또한 당초 ‘부경대학교 전체 재학생의 과반이상 동의를 얻는다면 시국선언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일반 학생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사과문을 발표하고 총학생회와 재학생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진행하였다.

분노한 아치섬의 목소리, 함께 키워나가다

_ 우리대학의 경우 지난 10일 시국선언을 진행하였다. ‘청년하다’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일까지 시국선언을 진행한 대학은 약 145개로 파악되었다. 상대적으로 늦은 감이 있는 우리대학의 시국선언을 두고, 그 이전부터 우리대학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커뮤니티 ‘아치섬’의 익명 게시판엔 “우리대학처럼 수동적인 대학이 어디 있다고 시국선언이냐?”라고 하는가 하면, “우리같은 지방 하류대가 퀄리티(quality)낮게 시국선언 하느니 조용히 있자”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당신들이 말하는 소위 지잡대라 해서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퀄리티가 낮다고 국민의 목소리가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쏟아내며 우리대학 총학생회의 시국선언을 촉구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0월 31일부턴 어울림관, 버스종점, 국제대학관 하차 정류장에선 학내 1인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시위를 처음 시작한 이채원(국제무역경제학부·13)학생은 “우리의 생각을 온라인에서만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좋겠다고 여겨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_ 여론이 시국선언으로 기울자 우리대학 총학생회는 지난 2일 열린 제 4차 전체학생대표자 회의에서 이를 논의하였다. 당시 김영근 총학생회장은 “2007년 이후 현재 비운동권대학으로 분류되는 우리대학이 시국선언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후 8일부터 10일까지는 ‘단결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어울림관 인근 교차로 부스에 현수막 6개를 설치하고 현수막의 빈 곳 어디에나 학우들의 의견을 기재하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10일 15시 40분경,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직원, 학생이 공동 시국선언 및 기자회견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다른 대학에 비해 조금 늦어져 총학생회의 좀 더 발 빠른 대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우리대학 학생들의 뜻이 모여 시국선언이 진행된 것은 참 다행이다”라고 전했다.

 

▲ '단결 캠페인' 현수막

▲시국선언 후 학내행진하는 이들 (현한솔 제공)

_ 한편 지난 4일과 5일, 양일간 진행예정이었던 우리대학과 부산예술대 총학생회 주관 클럽파티가 무산되기도 했다. 총학생회 측은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를 통해 “현 시국 이전에 진행하려했던 사업이고, 단 한분의 학우라도 혜택을 받으실 수 있는 것이 합당하다 판단하여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몇몇 학생들은 댓글을 통해 국립대 총학생회가 이름을 내걸고 파티를 개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에 총학생회는 행사 당일인 4일 오후 “학우분들의 진정성과 사회분위기에 대한 우려와 지적을 반영하겠다”며 행사를 전면 백지화하였다.

_ 그렇다면 우리대학 학생들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 학내에 게시된 대자보 13개와 총학생회 주관 ‘단결캠페인’ 현수막에 적힌 의견 61개를 수집했다.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대한민국(35회)이었으며, 박근혜(30회), 최순실(22회), 국민(30회), 대통령(20회)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단어들은 우리대학 학생들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 사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주된 쟁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민주주의(9회)였다. 또한 ‘박근혜’와 함께 등장한 단어는 최순실, 대통령, 물러가라(6회), 하야(6회)였다. 단어 의미를 연결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 비선실세 최순실에 대한 분노,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 학내 설치된 일러스트 및 대자보
▲ 학내 설치된 대자보

_‘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지며 대학가 시국선언의 불길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대학생들은 공통적으로 법적 권한이 없는 비선 실세가 국정에 개입해 민주적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시국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과연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그저 대학 안에 메아리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유의미한 정국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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