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기자가 만난 선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윤종건 기자
  • 승인 2017.03.21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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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수 지 동문 (국제무역경제학부·09)

 

 

2월의 추운 겨울날이었다. 이번 <기자가 만난 선배>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중앙동으로 향했다.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사이로 뻗어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 묵은 벽들 사이로 옛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곳을 오르고 올라 찾아간 곳엔 미술문화잡지 <비아트 b’art>의 편집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박수지 동문(국제무역경제학부·09)을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비아트 b’art> : 부산문화를 기록하다

_ 현재 중앙동 일대는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가 자리 잡고 있다. 부산미술인 중 선정된 일부 작가들에게 제공된 작업 공간으로, 개인 작업실로 시범 운영하는 프로젝트 공간이다. 박 동문을 포함한 총 6명의 에디터는 이곳에서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술문화잡지 <비아트 b’art>를 만든다. 그녀는 “부산의 전시를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과 다름없다”며 “작품과 작가와 미술계의 사안을 기록하는 데 방점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대학생활을 돌이켜보면

_ 박 동문은 경제학과를 전공했지만, 현재는 미술문화잡지를 만들고 있다. 언뜻 보면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분야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대학생활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통기타 동아리인 ‘파도소리’에 들어갔다. 당시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대학가요제에 나갔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에선 동아리에 대한 여전한 애정이 묻어났다. 그녀는 “한 동아리 선배의 집에 2박 3일 정도 합숙하며 노래를 만들어 대학가요제에 나갔는데 본선엔 못 올랐지만, 예상외로 붙고 또 붙고 계속 붙어서 우리도 놀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_ 또한 박 동문은 신문사 사회문화부 객원기자로도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부산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인을 만나게 되었고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의 삶을 돌이켜보면 나는 내 언어를 남에게 전달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며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파도소리는 음악으로 내 언어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고, 학보사는 기사로서 내 언어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잡지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전시회 큐레이터도 함께하고 있는데, 이 또한 전시를 통해 남에게 나의 언어를 전달할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_ 박 동문은 3학년까지 우리대학에서 다니다가 4학년은 학점교류를 신청해 부산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더 많은 교양 수업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 시기에 처음으로 전시 쪽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어 장전동에 위치한 ‘독립문화공간 아지트’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잠시 폐간되었던 미술문화잡지 <비아트 b’art>가 복간하면서 본격적인 에디터 활동에 나섰다.

작품의 소리를 들어라

_ 미술문화잡지이다 보니 부산지역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가는 것은 박 동문의 일이자 최대의 취미생활이다. 그런 그녀에게 미술문화작품을 보면 무엇을 느껴야하는 지를 물었다. 꼭 전문적으로 향유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은 미술작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전시회를 즐기지 못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작품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조언했다. 이어 “미술작품은 작가의 언어를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며 “작품을 딱 보고 ‘난 너를 못 읽겠어’라고 거부감을 느끼기 보다는 모든 감각을 활용해 계속 소통하려고 노력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더 나은 문화예술계를 바라며

_ 인터뷰를 하는 내내 박 동문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으로 가득 차 보였다. 앞으로 그녀는 “지역에 더욱 충실한 잡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글로컬(glocal←global+local)’이라는 말처럼, 지역적인 것으로부터 전체를 본다는 것이다. 더불어 “부산이라는 지역적 소스를 분명히 가져가면서 사람들의 눈과 귀에 더욱 와 닿게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선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과 문화예술계와의 협력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파행’이라 불릴 정도로 문화계 상황이 좋지 않아 그녀도 걱정이 많아 보였다.
_ 현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드러나면서 전 국민적으로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더불어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조금씩 그 실체를 보이면서 정부는 ‘문화융성’이라는 국정 기조에 역행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박 동문은 이러한 상황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이를 수단화하고 시혜적 접근으로 나아가다 보니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어 문화예술계 내부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남성 중심적인 문화와 성별적 위계, 형님문화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동문은 “문화예술계가 소위 ‘꼰대주의’를 타파하고 동료주의를 강화해 권력과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_ 박 동문의 인생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언제나 ‘조르바와 같은 삶’을 원했다”고 말했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지향한다. 그가 지향하는 자유로운 삶이란 욕망에 충실한 삶이며 이러한 삶이 행복을 부른다는 진리다. 박 동문은 “우리는 어떤 욕망이 있으면 욕망의 여집합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다”며 “그러기 보다는 조르바식 인생 살기처럼 언제나 나의 마음에 충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경제학과로 우리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통기타 동아리인 ‘파도소리’에 들고, 학보사 사회문화부 객원기자로도 활동했다. 또한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부산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미술문화잡지를 만들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_ 끝으로 박 동문은 후배들에게 “동료를 발굴하라”고 조언했다. 서로 비평이 가능한 동료를 만들어 서로서로 견인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가치관은 비평을 업으로 하는 그녀의 삶에도 드러난다. 그녀는 “현재 대부분의 비평은 정형적인 언어로 작가와 작품을 재단하는 데 머무르고 있다”며 “이는 권위적인 칼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이어 “나는 비평을 퀴어하게 만들어 비평 자체가 하나의 창작물로서 여겨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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