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8경을 걷다
영도 8경을 걷다
  • 김현지 수습기자
  • 승인 2017.03.2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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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8경을 걷다
_우리대학이 위치한 조도는 영도 안의 또 다른 섬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영도의 본래 이름은 절영도(絶影島)였다. 끊어진 그림자라는 뜻의 절영의 기원은 옛날 이 섬에 있었던 국마장에서 유래되었다. 영도는 옛부터 나라의 말〔國馬〕을 키우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기르는 말 중에 천리마가 있어 그 말이 한 번 달리면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이름을 따 절영이라 불렀다. 그 후에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절’ 자가 떨어져 나가 지금의 영도라 불리게 된 것이다.
_우리대학은 영도에서 가장 최남단에 있는 조도에 자리 잡고 있다. 영도로 들어오는 입구인 영도대교에서부터 우리대학을 지나 태종대까지 8개의 영도 정경을 만나보았다.

▲ 영도 8경

80년의 역사, 영도다리
_영도로 들어서기 직전 가장 먼저 보이는 장소다. 부산시 영도구 대교동에 위치한 영도대교는  1934년에 개통되었으며, 부산 최초의 연륙교다. 다리 위에 전차궤도를 설치하여 전차를 운행하기도 하였고 당시는 하루에 7번 도개, 이를 보기 위한 수많은 관광객들로 거리를 메웠다. 하지만 1960년대 영도구의 인구증가에 따른 교통량 증가로 도개를 중단하고 전차궤도도 철거 되었다. 한편 2006년에는 부산시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도개기능을 복원하기 위한 영도 대교의 완전 철거가 실시되었다. 이후 영도대교는 2013년 11월 재개통 되어 매일 오후 2시에 1번 도개한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현인, 굳세어라 금순아

_한국전쟁 막바지인 1950년 12월, 부산이 임시정부가 되고 난 후 전국각지에서 몰린 피난민들은 영도대교를 건넜다. 전쟁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이 대부분이었다. 피난길에서 가족을 잃는 것은 예사였고 헤어진 이산가족을 영도대교에서 만나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영도대교는 6.25 동란 당시 많은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절영해안산책로
_영도의 관문인 영도대교, 부산대교를 지나 영선동 아랫로타리에서 제2송도 바닷가 쪽으로 500m정도 가다보면 산책로 입구에 위치한 관리동 및 휴게시설이 보인다. 지형이 가파르고 험난한 군사보호구역이라 접근이 어려웠지만 시민들의 해양관광을 위해 공공근로사업으로 산책로를 조성했다. 산책로의 바깥에는 바다가 보이고 안쪽은 봉래산이 우뚝 서있다. 굽이진 산책로와 그 아래로 내려가면 장승과 돌탑, 장미터널, 파도광장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많다. 작년 여름 태풍 복구 작업을 위해 일부 산책로가 차단되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복구가 완료된 상태이다.


봉래산
_절영 해안 산책도로는 양쪽에 바다와 산을 끼고 있는데 이 산이 바로 봉래산이다. 영도의 바로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봉래산은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으며 예로부터 신선이 산다고 알려져 있다. 부산발전연구원의 자연환경조사연구용역결과에 의하면 봉래산은 부산에서 가장 많은 곤충이 서식하는 산이다. 당시 총 16목127과658종이 관찰되었고 환경부 보호대상인 고려집게벌레, 늦반딧불이 등 많은 희귀종이 발견되었다.
_봉래산을 기준으로 한 영도 숲길은 총 16개가 있으며 주요 등산로는 해사고교에서 출발하는 2개의 코스가 있다. 봉래산 전체가 원추형이며 특히 남쪽사면은 급경사여서 하산할 때는 바다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75광장
_절영해안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면 목장원 앞의 해안 쪽으로 돌출된 작은 광장이 나온다. 75년도에 조성되었다는 의미에서 75광장으로 불리며, 정자, 매점 등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그 중에서 75광장의 아름다움은 야경에 있다.

동삼동패총 박물관
_영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영도에서 출토되는 선사시대 유물 패총으로 보아 신석기때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추측하고 있다. 해양대학교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동삼동패총 박물관이 그 증거다. 영도의 패총, 즉 조개더미는 1930년대 일본인에 의해 최초로 발굴된 이래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여러차례 발굴 대상이 되었으며 1979년에 사적 제266호로 지정되었다. 2002년에 설립된 패총 박물관에는 신석기시대의 유적분포 및 생활상, 동삼동패총의 발생·유물 분포와 특징 등을 연출해두었다.

아치섬
_한국해양대학교 입구인 르네상스 게이트를 지나 800m의 방파제를 지나면 한국해양대학교가 자리한 아치섬이 보인다. 아치섬은 영도(影島)의 동남단에 위치해있으며 한국해양대학교가 있는 남쪽과 남서쪽 해안을 제외하고는 가파른 경사지로 되어있다. 또한 아치섬은 부산에서 제일 먼저 아침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조도라고도 불린다.
_1974년 이곳에 거주하는 103세대의 주민들을 동삼동 하리에 집단 이주시킨 후 해양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지금도 동삼동 하리 선착장에는 각종 생선을 파는 새벽 어시장이 열리고 있다.

감지해변 산책로
_해양대 입구에서 하리를 지나 태종대 온천을 지나치면 태종대로 가는 길과 감지해변으로 가는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감지해변으로 가는 길로 향하면 조개구이집이 즐비한 감지해변이 보인다. 가게들을 지나치면 감지해변의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3km의 산책로가 나온다. 산책로 주변에는 벌개미취 등 우리꽃 10종 24,000본을 식재하여 학생들의 자연학습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운동시설, 전망 정자 등의 부대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절영해안산책로와 연계한 도심 속 산책공간으로써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태종대
_태종대 온천 앞 두 갈래의 길에서 태종대로 가는 길을 선택하면 태종대 유원지 입구가 있다. 태종대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 전국을 순회하던 중 이곳의 해안 절경에 심취하여 활을 쏘며 즐겼던 곳이라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태종대 입구를 지나 100m 정도 올라가다보면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서 좌측 순환도로로 향하면 태종대가 자랑하는 맑은 공기와 잔잔한 해풍을 느낄 수 있다. 우측에는 해안선과 숲이 어우러져 있으며 순환도로변을 계속 올라가다보면 전망대가 있다. 날씨가 좋다면 전망대에서 일본 대마도가 볼 수 있고 그 앞의 주전자섬을 관찰할 수 있다. 전망대를 지나 순환도로를 계속 내려가면 태원자갈마당, 곤포해안가도 관광할 수 있다. 태원자갈마당, 곤포해안가에서는 유람선도 운영하고 있다. 유람선을 타면 등대와 자살바위, 신선바위, 아치섬, 태종대의 해안절벽 등 태종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_현재는 태종대 정문 정비 공사로 인해 입구가 막혀있는 상태다. 이는 올 3월 말까지 예정되어 있다.


김현지 기자
KMOUkhj012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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