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청년이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 윤종건 기자
  • 승인 2017.04.04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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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정치의 시대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정치 판세는 시시각각 변한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하나라도 놓칠 새라 기사를 확인하고 주변사람들과 정치이야기를 나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사회적 문제였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여러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의 90% 이상이 ‘앞으로 치러질 대선에 투표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동안 정치의 들러리로 인식되었던 청년층이 당당히 주인공의 자리로 나온 것이다.

분노가 들불처럼 번진 대학가

_ 청년을 정치로 끌어들인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분노다. 지난 해 10월, 그 모습을 드러낸 최순실 게이트는 온 국민에게 피멍으로 남았다. 상처는 분노로 변했고, 청년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전국에 대부분의 대학이 시국선언을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 빼앗긴 이 땅의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청년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청년의 목소리를 그저 대학 안에 메아리로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유의미한 정국의 변화를 위해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나서는 것이었다.

20대만의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다

_ 모두가 연상하듯 7080 운동권 세대의 민주주의는 화염병을 내던지고 피를 흘리는 ‘거친 시위’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변화는 시작되었다. 더 이상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다. 자신들의 방법으로 가치를 공유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근 20대들의 독특한 정치참여 경향을 두고 ‘팬텀세대(Phantom: 유령+세대)’라 말한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소통하길 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대학의 커뮤니티 ‘아치섬’이다. 학생들은 익명게시판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학생회의 시국선언을 촉구했다. 글을 쓴 사람도, 댓글을 적은 사람도, 그리고 그 글을 본 사람도 알 수 없다. 이처럼 20대들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이른바 ‘단타성’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

_ ‘팬텀세대’의 경향은 SNS상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청년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 집회참여를 인증하고, 일제히 통일된 해시태그를 사용하며 ‘#이게나라냐’와 같은 물음을 던진다. 근원지는 알 수 없으나 청년들은 공감했고 그 어떤 세대의 목소리보다 강력했다. 온라인에서 시위 날짜를 정해 공유하고, 함께 혹은 홀로 시위를 나갔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소셜(social)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


_ 또 다른 경향은 창의성과 유쾌함이다. 노년층의 비율이 높은 태극기 집회의 경우 ‘계엄령을 선포하라’ ‘빨갱이는 죽여도 돼’와 같이 군사적·반공적 색채가 짙다. ‘애국시민’을 자칭하는 만큼 국민의례도 한다. 중간 중간 사회자가 질서유지를 위해 “좌향좌, 우향우”를 외치는 등 제식훈련의 구호를 외친다. 시위방식은 단순하다. 연사가 앞에 서서 연설하면 집회참여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집회에 참가한 창의성과 유쾌함보다는 엄숙함과 군사적 결의마저 느낄 수 있다. 반면에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는 장수풍뎅이연구회, 민주묘총, 범깡총연대, 얼룩말연구회, 트잉여운동연합 등 우스꽝스러운 깃발이 등장한다. 각자의 예술성을 이용해 의견을 표출하기도 한다. 함께 웃으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이다. ‘시위’ 자체를 축제로 승화시키며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었다.

지난 선거를 돌이켜보며

_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기각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온 나라가 대선분위기로 들떠있다. 유력한 대선후보와 그 가족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정책을 설명한다. 아직까지 인용이 된 것은 아니지만, 현직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대통령의 검증이 중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가장 큰 힘은 투표에서 나온다.

_ 지난 18대 대선의 연령대별 투표율을 살펴보자. 50대(82.0%)와 60세 이상(80.9%)이 80% 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보였고, 이어서 40대(75.6%), 30대(70.0%), 20대(68.5%) 순으로 연령이 낮아질수록 투표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나마도 20대의 투표율은 17대 대선에 비해 13%가 상승한 수치다. 선거인수를 따져보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같은 18대 대선에서 연령대별 선거인수를 조사한 결과, 40대가 21.8%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60대 이상이 20.8%였고. 30대(20.1%), 50대(19.2%), 20대(16.4%) 차례였다. 투표율도 선거인수도 젊은 층의 의견이 반영되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보성향이 강한 '2030' 유권자의 비중은 감소하는 반면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 유권자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다.

_ 그럼에도 현재 20대의 90%는 ‘앞으로 치러질 대선에 투표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 같은 유권자들의 응집된 힘은 선거 결과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선거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19대 총선 당시와 비교해 20대 총선에서 적극적인 투표 의사를 밝힌 비율을 살펴보면 19~29세의 경우 36.1%→55.4%, 30대 47.1%→59.6%, 40대 56.3%→63.2% 등 큰 폭으로 늘어났다. 젊은 층의 반란은 야권 분열로 인한 여대야소 전망을 뒤집고 여소야대 정국을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 더욱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공직선거법까지 개정돼 투표연령이 18세로 인하될 경우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은 더욱 파괴력을 지닐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유력한 대선후보들은 20대들을 위한 정책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청년이 뭉칠수록 청년을 위한 세상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2017년 우리가 빚어갈 민주주의

_ “돈도 실력이야.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유라의 설익고, 오만하고, 비뚤어진 망언은 이 시대 청년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열심히 살면 잘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언제쯤 꺾였던 것일까?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정신차려보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너무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청년은 정치의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이다. 이 사태를 겪으며 청년층의 힘을 사회에 떳떳이 드러냈다. 이 시대는 우리가 바꿀 수 있다. 청년은 정치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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