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똑바로 자신만의 길을 걷기
[기자가 만난 선배] 똑바로 자신만의 길을 걷기
  • 김현지 기자
  • 승인 2017.06.07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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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선원 해사 안전과에서 근무하는 박찬홍 동문

 

_이번 314호 신문 <기자가 만난 선배>의 주인공은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선원 해사 안전과에서 근무하는 박찬홍 동문(해사수송학부·98)이다. 제법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는 조용하고 담담하게 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정을 위해 택한 곳에서 나를 찾다
_박찬홍 동문의 집안형편은 넉넉지 않은 곳이었다. 그 뿐 아니라 그가 입학할 시기에는 IMF 외환위기가 닥친 때였다. 어릴 적부터 부산에서 자라왔던 그는 학비를 아끼기 위해 부산 내 국립대를 알아보다 우리대학을 발견했다. 해사대는 전원 기숙사제에 숙식이 제공되고, 졸업 후 승선생활을 하면 웬만한 일반 현역 군인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도 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지만 바다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던 박찬홍 동문은 해사대의 강도 높은 훈련에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오전 6시에 일어나 구보를 뛰는 것부터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 등 군대와 같은 분위기는 낯설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박찬홍 동문은 전우애와 같은 동기애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는 학생들도 몇몇 있었지만 오래 함께하면 마음 맞는 동료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기숙사 생활뿐만 아니라 오후 6시까지 꽉 차있는 수업, 수업 외의 갖가지 훈련들을 동기들과 견디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 선후배 사이에도 딱딱한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히 마음을 열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딱히 모범생이었던 건 아니고”
“그냥 체력이 약해서 체벌 받지 않으려고 한 거죠”

_큰 문제나 소동 없이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낸 박찬홍 동문은 자신을 그렇게 덤덤히 표현했다. 그러한 상황이 버티기 힘들지는 않았냐는 물음에 그는 “다른 대안도 없었는걸요”하고 웃어 보였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군말 없이
_3학년이 된 박찬홍 동문은 바다로 실습을 나갔다. 1학기는 한나라호를, 2학기는 외부 선사에서 승선실습을 했다. 그 당시 한나라호의 경우 매일 저녁 훈련이 끝나면 배에서 내릴 수 있었지만 외부 선사는 아니었다. 6개월 동안 바다 위를 항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부 선사의 실습생은 일반 회사의 인턴과 같다. 직접 배를 운항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개중에서도 마찰이 일어나는 사람은 분명 존재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 동료와 함께 숙소에서 술로 회포를 풀었다는 이야기는 박찬홍 동문의 소소한 추억거리였다.

“당연히 해야 하는 거였으니까”
“해야 하는 일에 불평·불만을 해도 소용없으니까요”

_대학 졸업 후 박찬홍 동문은 한진해운에 입사,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큰 배를 항해한다는 사실에 압박감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느 직업이 그렇듯 선사 내에서도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며 갈등도 있다는 점에 집중했다. 배의 운전은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며 내팽개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담담하게 그 시절을 이야기 하는 그의 모습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 배가 출항하기 전 내부를 정비하는 박찬홍 동문

 

 

▲ 박찬홍 동문이 선장과 일대일 면담을 하는 모습

 

현장에서는 항상 준비된 자세로
_박찬홍 동문의 올곧은 심성 덕일까. 박찬홍 동문이 2학년을 마친 그 해 겨울방학, 그는 국비장학생으로 발탁되었다. 국비 장학생은 오늘날 ‘지방인재채용목표제’와 같은 제도로, 등록금 지원은 물론 졸업 이후 일정기간의 승선생활을 끝내면 공무원으로 취직할 수 있다. 제 아무리 공무원이 인기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고 해도 200여 명 가까이 되는 항해학부 학생들 중 단 한 명만이 선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_3년 간 한진해운에서의 승선생활을 끝낸 박찬홍 동문은 1년 간의 휴식을 가진 뒤 현재 그가 근무하는 부산지방해양수산청으로 오게 되었다. 처음 수산청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부산 홍보과, 선박 안전 검사 등 여러 부서를 거쳐 지금의 선원 해사 안전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올해로 11년이 된다.
_선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선원 해사 안전과는 사전 관리와 사후 관리로 나뉜다. 사전 관리는 외국으로 나가는 배들이 국제협약에 어긋나지는 않는가, 선원들이 근무할 환경이 제공되어 있는가 등 미리 배와 선원들을 관리하는 일이며 사후 관리는 체불임금 등의 문제를 관리하는 일이다. 사전 관리는 외항선만을, 사후 관리는 내항선과 외항선 모두를 포함한다. 사전 관리에는 선내 환경 관리뿐만 아니라 선원들과의 일대일 면담도 있다. 선내 환경이 정비되지 않거나 선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배를 띄울 수 없는 것이다. 박찬홍 동문은 이곳에서 사전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저도 같이 배를 타는 입장이었으니까 이해하죠”
“최대한 선원들이 피해 입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어요”

_특히 일대일 면담에서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피해를 입었다면 그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다.

 
자만하지 않고 겸허하게

 

“과정 속에 힘든 일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은 일이 되는 경우도 있죠”


_그는 나름 인생이 잘 풀린 사람에 속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말했다. 순탄해 보이는 인생이지만 자세히 보면 힘든 일도 있다. 박찬홍 동문은 자신 역시 힘든 상황에서 불평·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아내는  ‘이미 끝난 일이잖아?‘,‘지금와서 무슨 소용이야’,‘앞으로를 생각해’라고 말해 본인을 번뜩 정신 차리게 만든다며 박찬홍 동문은 따스하게 미소 지었다.

“성실함보다는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_박찬홍 동문은 “후배들이 그저 지금을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옛날과 지금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기성세대인 자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며 "그냥 미래 하나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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