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저기도 화학물질, 이거 실화냐?
여기도 저기도 화학물질, 이거 실화냐?
  • 이윤성 기자
  • 승인 2017.12.24 2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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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포비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

▸우리 생활 속 화학물질, 얼마나 많을까?
_아침에 눈을 뜬 한나라 양은 곧바로 화장실로 향한다. 오늘은 1교시부터 전공 수업이 있는 날이다. 서둘러 치약을 묻혀 양치질하고 폼 클렌징으로 세안을 한다. 향기 좋은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로 깨끗이 씻고 나서는 능숙하게 에센스와 로션, 수분 크림을 바른다. 아이라인에 틴트까지 오늘 메이크업 완벽하다. 나가기 전에 밀린 빨래를 돌려야 하는데 세제랑 섬유 유연제도 거의 다 쓴 것 같아 오는 길에 사와야겠다.
_3시간 연속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한바다 군은 허기진 배를 잡고 냉장고를 뒤진다. 마침 냉동 만두랑 즉석 밥이 보인다. 전자레인지로 돌리는 사이, 컵라면이 또 눈에 들어온다. 그래, 맛있는 건 다 같이 먹어야지. 배가 고파서 인지 오늘따라 더 맛있는 거 같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이면 오늘 하루 정말 만족스러울 것 같다.

_위의 이야기는 우리대학 학생들의 하루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문득 집안을 둘러보면 화학물질이 안 들어 있는 것들을 찾기가 힘들다. 목욕용품, 세제, 화장품, 간편식까지 이미 우리 생활 속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이러한 제품들이 편리하면서도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믿고 먹을 것도 쓸 것도 없다
_하지만 최근 몇 년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이런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이른바 ‘옥시 가습기 살균제’, ‘메디안 치약’, ‘릴리안 생리대’ 사건 등으로 생활에서 밀접하게 사용되는 제품 속 화학물질이 몸에 유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A 여학생(해양환경학과·15)은 “다른 건 몰라도 몸에 직접 접촉하는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것은 충격이었다”며 “요즘에는 천연 면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재현(국제무역경제학부·17) 학생은 “살충제 계란 사건 이후 달걀을 먹는 게 내키지 않는다”면서 “도대체 무엇을 믿고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야 노케미족
_한편 이러한 화학물질 공포감 확산 속에 좀 더 적극적으로 화학 제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기피하는 소비자층인 ‘노케미(No Chemical)족’이 등장했다. 이들은 직접 천연 재료를 구매해 피부 자극을 최소화하는 화장품을 만드는가 하면, 화학 첨가물이 적게 들어가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_자취생 이하준(전자전기정보공학부·14) 학생은 자칭 ‘로(Low)케미족’이다. 이 씨는 “현실적으로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을 전혀 안 쓸 도리가 없어 완전 노케미족은 아니다”면서도 “화학제품 사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기자가 살펴 본 그의 자취방 곳곳에는 이색적인 모습이 제법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베이킹소다가 담긴 통이 있었는데, 이는 주방 세제를 대신해 설거지를 하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 베이킹소다는 화학물질이지만 인체에 무해하다. 이 씨는 “과일이나 채소를 씻을 때 베이킹소다를 사용하면 잔류 농약을 거의 제거할 수 있다”며 “싱크대뿐만 아니라 얼룩이 생긴 곳을 청소할 때 따뜻한 물과 섞어서 사용하면 효과만점이다”고 전했다. 이 씨가 이런 습관을 갖게 된 것은 평소 예민한 피부 탓에 저자극 화장품에 관심이 많으신 어머니의 영향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생활비를 걱정하는 자취 인생의 꿀 팁이 됐다. 인근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등을 활용해 화장실과 주방 청소는 물론 빨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실제로 생활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며 “무엇보다 내 몸에 조금이라도 무해하다는 사실이 기분 좋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 베이킹 소다와 구연산을 활용해 청소하는 이하준 학생

▸지구도, 내 몸도 소중하니까
_우리대학과 가까운 영선동에 위치한 천연 화장품 공방 샤이네이처에는 최근 화장품 만들기를 배우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신혜연(45) 씨는 “1~2년 전에 비해 교육생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문의 전화도 많아졌다”며 “특히 어린 아이를 둔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취미반 수업을 듣는 김혜옥(대교동·58) 씨는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밀랍과 시어버터를 활용해 직접 립밤을 만들어 쓴다”며 “한 번에 여러 개를 만들어 나도 쓰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선물했는데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또한 가정주부 전민주(초량동·32) 씨는 “시중의 저자극 화장품을 사고 싶어도 대부분 고가여서 부담이 됐다”며 “좋은 성분으로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봤는데 경제적이고 재미도 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 천연 화장품을 만드는 수강생 모습

▸건강한 먹거리, 내 마음 속에 저장~
_대학 생활 중 제일 걱정이 바로 끼니 해결이다. 해 먹기는 귀찮고 사 먹기엔 돈이 많이 들다보니 결국 먹을 것은 인스턴트 음식뿐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든 대학생들이 있다. 건강하고 올바른 먹거리를 홍보하는 동아리 ‘한술’이 바로 그들이다. 한술은 순천향대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올바른 식습관과 건강한 음식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2년째 한술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채린(23) 학생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음식 속 화학 첨가물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SNS에 가공식품을 대체할 건강한 재료를 찾아 소개하면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실제로 한술은 단호박을 활용해 파스타를 만드는가 하면 당근 등 각종 야채로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간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로컬 푸드를 활용해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전국 곳곳의 양심적인 음식점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홍 씨는 “화학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곳을 찾을 때 가장 보람 있고 기분이 좋다”며 “대학생들의 먹거리를 위한 한술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고 말했다.

▲ 한술이 직접 만든 단호박 파스타와 콥 샐러드

▸ 화학물질 사용은 더욱 엄격하게
_한편 정부와 국회는 소비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의 일환으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국내에서 제조, 수입되는 모든 화학 물질은 유통량에 비례하여 등록 기한을 다르게 규정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연간 1톤 이상 제조, 수입되는 화학물질에 한해서만 등록하고 이를 3년마다 일괄적으로 지정하여, 기준량 이하로 반입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기존 유해 화학물질 외에도 발암성, 생식독성, 돌연변이성 물질 등을 ‘중점관리 물질’로 지정, 이를 함유하는 제품은 의무적으로 성분과 함유량을 신고해야 한다. 화학물질을 등록하지 않고 제조, 수입할 경우 지금까지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렸지만, 앞으로는 과징금이 신설돼 불법 행위로 얻은 영업 이익을 전액 환수하게 된다.
_화학제품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소비자 스스로 더 꼼꼼히 따져보고, 가능한 화학제품을 덜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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