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인연
[기자가 만난 선배]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인연
  • 이윤성 기자
  • 승인 2017.12.24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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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도시철도공사 2호선 기관사 신채우 동문(해운경영학부·03)

▸인생을 관통하는 인연, 스킨스쿠버
_신 동문은 경영학도였지만, 현재는 부산 시민의 출·퇴근길을 책임지는 도시철도 기관사로 일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기관사를 하게 됐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대학에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낯선 땅 부산에 오게 된 신 동문은 우연히 태종대에서 스킨스쿠버 강사로 일하는 고향 형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는 “스무 살부터 형과 같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스킨스쿠버 강습 일을 돕게 됐다”며 “공교롭게도 이 일을 통해 처음 기관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강습 도중 만난 한 손님이 직업을 고민하던 신 동문에게 기관사 도전을 추천해주면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_기관사가 된 지금도 그의 스킨스쿠버 사랑은 여전하다. 기자에게 수중 촬영 사진을 보여주던 그는 틈이 나면 장비를 챙겨 전국 곳곳의 바다를 누비고 다닌다. 최근에는 사내 스킨스쿠버 동아리를 통해 회사 동료들과도 함께 하고 있다. 스킨스쿠버는 신 동문에게 단순히 취미 활동만이 아니다. 처음 디딘 낯선 환경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준 형, 그리고 가슴 뛰는 기관사란 직업을 만날 수 있게 한 소중한 ‘인연’이다.

 

▲ 스킨스쿠버를 하는 신 동문

▸뒤 쫓을 바에는 다른 길을 가자
_그의 대학 시절은 여느 학우들처럼 평범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방파제 중간에서 고기 구워먹고 바다에서 수영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며 낭만이 있던 캠퍼스 생활을 회상했다. 신 동문은 새내기 시절 봉사 동아리 ‘로타렉트’에서 활동했었다. 사실 그는 놀고 싶어서 동아리에 들어갔다고 한다. “오죽하면 동아리 별명이 ‘술타렉트’였다”며 웃어 보이던 그는 동아리 후배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최근에 동아리 선후배 모임이 있어 학교를 찾았는데, 열심히 활동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_취업을 고민하던 시기, 신 동문도 처음에는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갖고자 했다. 당시만 해도 해운 경기가 좋고 사무직도 많이 뽑던 시기라 교수님과 선배들은 해운, 무역업계 취업을 권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기관사였다. 그는 “이상하게 남들처럼 해운이나 무역회사는 가기 싫었다”며 “기관사는 교대근무다 보니 정해진 시간 말고는 자유로운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_4학년을 앞두고 기관사 면허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계를 내자, 담당 교수님은 신 동문을 불렀다. 그는 “갑자기 교수님께 기관사 면허를 따러 서울에 간다고 하니까 다들 어학 연수가는 마당에 제정신이냐고 만류하셨다”고 그 때를 기억했다. 하지만 신 동문은 확신이 있었다. 그는 어학연수를 가는 것은 남들 뒤만 쫓는 거 같아 1년 버리는 셈치고 아예 방향을 틀어보기로 결심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
_신 동문은 전남 영암 출신이다. 2남 2녀 중 막내인 그는 시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형, 누나를 대신해 항상 부족한 일손을 채워야 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논으로 향하는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는 “2000평이 넘는 과수원에 농약 뿌리고 학교 가는데 정말 힘들었다”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에게 유년 시절은 행복했던 기억이다. 그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끼리 어느 날은 이 집 가서 일하고, 다음 날은 우리 집 일하고 그랬다”며 “일을 마치고 어른들이 주시는 술 한 모금만 기다렸다”고 환하게 웃기도 했다.
_그의 아버지는 늘 아들이 공무원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회사원이 되길 바랐다. 지역 명문 목포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이런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그는 “난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데 아버지는 무조건 펜을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비록 사무실은 아니지만 내가 공기업에 들어가자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혼자 살던 그에게 아버지, 그리고 가족이란 이름은 항상 힘이 되는 존재다.
_서울에서 1년간 면허 취득 교육을 받으면서도 힘들었지만 참고 견뎠다. 모든 걸 걸고 시작한 일이라 잠도 설쳐가면서 준비를 했다. 문과였던 그는 “면허시험 과목이 철도안전법이랑 물리학개론인데 완전 생소했다”며 “고등학교 물리 참고서를 들고 무작정 하루 종일 인강만 봤다”고 했다. 부모님의 헌신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이기에 매일 피나는 노력을 했다. 지금 어떤 곳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의 생활력도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기관사는 만능이어야 한다
_기관사 중에는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터널 같은 어두운 곳에서 혼자 큰 지하철을 운전하다 보면 혹시 모를 고장과 같은 돌발 상황이 생길까 항상 부담감을 갖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 동문도 그런 고충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두는 동료도 여럿 보았다. 하지만 그는 “나는 이상하게 어두운 곳이 편안해서 기관사가 체질이라고 느낀다”며 “웬만한 선배, 동기들보다 큰 고장이 많았는데도 딱히 두렵지 않았다”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_이런 신 동문도 아찔한 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 그가 운행 중일 때 운전석 뒤 분전함에 철심이 떨어지면서 합선된 것이다. 그는 “곧바로 분전함을 열었는데 불꽃이 막 튀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당황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차량을 멈추고 차근차근 조치를 취했다. 지하철 끝에서 끝을 쉴 새 없이 뛰면서 수리했고 3분 만에 정상적으로 운행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차량 안에서 발생하는 위협에 초동 조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다”며 “기관사는 각 분야를 책임지는 검수팀만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_출·퇴근 하는 시민들의 발을 자처하는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명절, 휴일이 따로 없다. 이번 추석에도 신 동문은 고향에 못 가게 됐다. 그는 “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해서 솔직히 좋진 않다”면서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친구들끼리 만나서 술 한 잔하면 다들 직장 생활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는 적성에 맞는 일이라 그런지 만족스럽다.
_교대 근무를 하는 기관사는 시간대가 맞는 사람들끼리 동아리 활동을 많이 한다. 특히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해 풋살, 족구, 배드민턴, 등산 등 운동 관련 동아리가 다양하다. 또한 평소에 운전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만큼 음주에 대해서는 무척 엄격하다. 그는 “다음 날 근무면 회식 자리에서 소장님이 술을 따라줘도 ‘내일 출근이니까 못 받겠습니다’ 할 수 있다”며 “소장님도 ‘오 콜!’이라고 웃으며 인정해주신다”고 했다. 그를 비롯한 기관사들은 근무 투입 전 반드시 음주측정을 한다.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른 일은 못해도 뭐라 안 하는데 이 경우에는 크게 혼난다”는 그의 말에서 단호함이 묻어난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_신 동문은 “처음 기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막막했다”며 “인터넷에 검색해도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지 와 같은 진짜 필요한 정보를 얻을 곳이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영도를 떠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라고 말한다. 그는 “나 스스로도 부경대, 부산대 스터디 말만 들었지 섣불리 못 갔다”며 “하지만 우리끼리 학교에만 갇혀 있으면 발전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그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게 ‘해양’이란 말을 붙이면 특별해 보이지만 실상은 안 그런 부분도 있다”며 “후배들이 해양 특성화대학이란 울타리에만 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낌없이 조언했다.
_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단번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 부딪혀 보고 경험했으면 좋겠다”며 “언제 나한테 귀인이 올지 모른다”고 답했다. 자신을 예로 든 신 동문은 “일반 학생이 기관사가 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알겠는가”라며 “정말 우연찮게 손님으로 온 그 회사 선배가 나한테는 귀인이 된 셈이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마주치는 경비 직원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모습에서 평소 그가 어떻게 ‘인연’을 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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