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가 들불로 번지다 #MeToo
작은 불씨가 들불로 번지다 #MeToo
  • 윤지운 수습기자
  • 승인 2018.03.12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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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들의 분노와 연대
▲ 미투 운동

상사가 자신의 몸을 만진 일, 술자리에서 선배가 성희롱을 저지른 일 등 그간 쉽사리 말하지 못했던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 한 달간 많은 여성들과 성폭력 피해자들이‘미투 운동’을 계기로 용기를 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시키자

_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인 타라나 버크는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미투 운동을 최초로 시작했다. 그는 2007년 성폭력 피해의 취약계층인 흑인, 히스패닉계 소녀들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하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힘을 모아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투 운동을 제안했다.

 ▲ 알리사 밀라노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

_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0년이 지난 2017년이었다. 작년 10월 초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이 배우 애슐리 저드의 폭로를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저드의 폭로는 미국에 큰 파장을 불러, 이를 계기로 하비와 작업했던 배우와 영화 관계자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미디어를 통해 이 사실을 접한 많은 미국민들이 공분했다. 이때 할리우드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자신의 SNS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의 규모를 알리기 위한 'MeToo'캠페인을 제안하였다. 그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SNS에 올릴 때 해시태크를 붙인 ‘#MeToo’를 적을 것을 제안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미투 운동이 활발해졌다.

한국으로 번진 미투 운동

_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된 것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부터였다. 그는 검찰 내부통신망을 통해 피해호소문을 올린 후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여 그동안 다뤄지지 못했던 검찰 내부의 성폭력을 공론화했다. 특히 검찰 내부통신망을 통한 피해 사실 폭로와 장관 면담 신청 등 서 검사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 내부에서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또한, 지난 2월에는 최영미 작가의 시 ‘괴물’이 재조명을 받으면서 고은 시인이 성 상납 강요와 성희롱 사실이 알려지며 미투 운동이 문단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폭력을 성토하는 미투 운동이 전국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이 늦어진 이유

_ 그렇다면 미투 운동은 왜 한국에 유독 늦게 일어나게 됐을까? 지난해 10월부터 할리우드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퍼진 미투 운동에 한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3개월 뒤에야 사회 각계에서 피해 사실 폭로가 있었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성평등상담실 유가영 상담원은 그 이유를 크게 2가지로 분류했다.

➊ 사회적인 직위를 이용한 범죄
_ 대다수 폭력은 권력이 있는 쪽이 권력이 없는 쪽을 향해 가해진다. 성폭력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유 상담원은 “성폭력 가해자의 대부분은 직장 선배, 교수 등 피해자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휘를 이용해 위협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피해자와 목격자는 발설 시의 불이익이 두려워 성폭력 사실을 묵인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전했다. 이어 유 상담원은 “지금과 같은 수직적인 구조 속에 피해자를 도울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고발은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➋ 성범죄에 대한 그릇된 인식
_ 문제가 어떤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선 문제의 원인을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5년 교육부에서 제작한 성교육 표준안에는 성폭력 대처 매뉴얼이 있다. 이 매뉴얼은 ‘성추행으로부터 안전한 옷 고르기’,‘성추행을 당했을 때 행동',‘이성과 단둘이 있을 상황 만들지 않기’등 잠재적 피해자의 행동에 중점을 맞춰 서술됐다. 하지만 피해자의 행실에 중점을 두고 바라보는 것은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다. 유가영 상담원은“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찾는 것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행위이며 피해 경험을 얘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를 책망하면 피해자에게 죄책감과 공포심을 부여해 발언과 행동의 제약을 주며 사건에 가해자는 다뤄지지 않게 된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성폭력 사건의 은폐, 축소를 야기해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악순환을 만든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꽃뱀, 몸 판다 등의 말이나 피해자의 옷차림을 지적하는 행위 등이 해당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한다

_위와 같이 성폭력 경험을 꺼내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에도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첫 폭로 이후 많은 분야에서 지금까지 34명의 가해 용의자가 드러났다. 또한,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통계에 의하면 미투 운동에 동참한다는 여론이 88.6%에 육박해 미투 운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유 상담원은 “나만 겪었던 것이 아닌 모두가 겪었거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공통감이 미투 운동을 지속시키는 원동력 것 같다”고 밝혔다.


대학의 상황은?

_대학은 성범죄로부터 자유로울까?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127곳의 대학에서 114번의 성범죄가 발생했으며 44명의 성범죄 교원이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마저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70여 곳의 대학을 제외한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 성범죄는 더 많이 발생했을 수 있다. 한편, 대학생 간의 성범죄도 문제가 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인근 대학 대나무숲 페이지에 단톡방 성희롱 제보가 올라와 논란이 되었다. 또한, 서울의 모 대학에서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도중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 등을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졌다는 폭로가 터져 논란이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여러 언론을 통해 학위를 담보로 한 교수의 대학원생 성폭력 문제가 터져 나오는 등 대학도 성폭력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_현재 대학 내 미투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이화여대 의대 동아리를 중심으로 ‘FeminismXMedicine’ 세미나를 열어 미투 캠페인과 ‘#의료계_내_성폭력’ 포스트잇 캠페인을 통해 대학생과 의료 분야 종사자가 자신이 겪었던 성폭력을 적어가며 공유하는 행사를 가졌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대학 내 미투 운동은 소규모의 단체나 개인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예방적 측면에만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기계공학부 학생이 성추행을 한 사실을 적은 사과문

_우리대학 역시 미투 운동과 같은 조직적인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부터 2016년 하반기까지 총 19건의 성폭력이 발생했으며, 작년 12월에도 기계공학부 학생이 성추행하여 물의를 일으켜 공개 사과문을 게시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


_억눌렸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낸 목소리가 하나둘 모여 사회에 변화를 주고 있다. 미투 운동이 지향하는 바처럼 피해자들이 온전히 경험을 얘기할 수 있고, 가해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나아가 성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나도 당했다#Me too. 당신과 함께 하겠다#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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