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서재] 흔한 이야기에 대한 기억의 성찰
[향기나는 서재] 흔한 이야기에 대한 기억의 성찰
  • 한국해양대신문사
  • 승인 2018.10.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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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학과_김정하 교수

 

 

 

 

동아시아 기억의 장

정지영, 이타가키 류타, 이와사키 미노루 저

삼인, 2015

 

 

 

_신화에 밝은 M.엘리아데는 망각을 일러 그것은 무지이며, 노예의 길이고, 종당에는 죽음이라 했다. ‘수면역시 망각이다. 고독과 공포에 지치고 향수와 도취에 젖은 수면이 그렇다.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길가메쉬는 엿새간의 불면을 완수하지 못해 영생을 잃었고, 북아메리카의 에우리디스는 공들여 지하계에서 구해오던 아내를 하룻밤의 수면과 맞바꾼다. 겟세마네동산에서의 마지막 밤에 늘 깨어 있으라던 예수의 당부를 지키지 못한 제자들은 스승의 뜻과 행보를 알아채지 못한다.

 

_그에 대조되는 기억망각수면을 거부하고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인간의 실상을 발견하는 의식행위다. 왜 의식이 행위이며, 그 행위가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동아시아 기억의 장(삼인, 2015)의 필자들이 소재를 해부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이야기의 소재는 친근하다. 각 장에서의 관우효녀심청’, ‘역도산’, ‘벚꽃’, ‘빨갱이’, ‘운동회등은 굳이 동아시아론이나 기억의 변주를 들이대지 않아도 누구나 뻔히 알만한 화제들이다. 달리 말하자면 평범하고 시시하다. 하지만 정지영을 비롯한 이타가키 류타, 이성시와 고마고메 다케시 등 해부술이 빼어난 필자들은 글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뻔할까?”

 

_정지영은 심청 이야기에 깃든 효행이라는 기억에 초점을 맞추어 해부한다. 누구나 아는 심청, 누구나 아는 효행을 떠올리고 책장을 펼친 독자는 그 현란한 해부술에 놀라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팔려간 딸딸을 판 아버지의 슬픔과 아둔함, 어두움은 어느 빈한한 장애인 가족의 미담만이 아니었다. 또한, 그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희생담을 미화하는 이야기라 행각하면 더 이상은 근대사회에서의 희생과 근면, 자율의 기억만도 아니었다. 알고 보면 그것은 식민교육을 통해 유포된 심청 이야기는 위안부 당사자의 불편한 기억을 왜곡시키고 제국주의의 만행을 정당화하며 한민족 전체를 능멸한 기억이었다. 오늘날 식민지배와 빈곤, 가부장제를 언턱거리 삼아 조선의 부모가 팔았을 뿐이라 우기는 오늘날의 일본 극우 수정주의자의 주장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_필자들은 그렇게 공식적 기억과 버내큘러(vernacular)적 기억 사이를 오가는 기억의 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카기 히로시는 벚꽃마저 이념에 맞아야 선호의 대상이 되었음을 제국의 벚꽃으로 증언한다. 그런가 하면 오상철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미국 대통령과 영국 수상에게 구술을 던지고 분단체제에는 공산국가의 폭격기를 쪼개는 운동회전쟁놀이를 통한 국민통합의 장이었음에 주목한다. , 이타가키 류타는 미일관계의 아날로지(analogy)에서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역도산이 한국에서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레슬러였고 북한에서는 렬사였음을 대비하며 조명한다.

 

_그처럼 분열로 어지럽혀진 기억의 지형도에는 동아시아에서 역사학이 구축한 역사와 인공적으로 되살린 기억의 간극이 있다. 그 사이를 파고든 자민족중심주의와 국수주의, 국가주의로 공동역사 교과서 편찬은 좌절되고 모처럼 돈독해진 관계에도 동아시아인끼리는 진지한 대화가 어렵다. 오가느니 한류아니면 비빔밥얘기가 고작이었다. 이런 상황을 망각일까, 아니면 기억의 회피일까? 그 어느 편이든 망각은 무지이자 노예의 길이며 종당에 죽음과 다름없는 공허(空虛), 피에르 노라가 말하는 기억의 구멍이다. 구멍에서 탈출하고자 이 책을 읽는 자에게 복() 있을지니, 불과 6백 페이지의 독서에서 얻는 것치곤 여운과 울림이 깊고도 크다. 그 위에 친근한 소재로부터 얻는 다양한 스펙트럼 외에도 때로 처연한 아픔과 균형 잡힌 안도감은 웬만한 인문학 서적에서는 얻기 힘든 소득이다.

 

김정하 교수 (동아시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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