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파헤치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바다
[이슈 파헤치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바다
  • 민예온 기자
  • 승인 2019.05.0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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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 법이 존재한다. 바다와 배를 사회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지켜야 하는 법이 있다. 해사법은 조문이 명시되어 있지만 관습과 판례에 따라 지켜지는 경우가 만연하다. 그러나 관습적으로 활용되어오던 편의치적을 형식적 선주(일명 페이퍼 선주)가 남용하기 시작하면서 해운계는 탈법의 파도가 치고 있다.

 

해양교통사고, 책임은 누가 질까?

 

_지난 228일 러시아 화물선 씨그랜드호가 광안대교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선장 S씨는 음주상태로 비정상적인 출항 지시를 내려, 요트와 바지선을 들이박고 도주하던 중 발각되었다. 이에 부산지검 해양·환경범죄전담부(이하 부산지검)는 선장 S씨를 업무상 과실 선박 파괴, 해사안전법 위반, 선박의 입·출항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기존 4가지 외에 업무상 과실 일반교통 방해와 선박 교통사고 도주 혐의 등 2가지를 추가해 구속 기소했다.

광안대교를 충돌한 씨그랜드호
광안대교를 충돌한 씨그랜드호

 

_박종묵 군산해양경찰서장은 매년 해양 사고를 분석해보면 70% 이상이 선박 관리자와 운항 책임자의 주의 과실이라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해양사고는 선박 관리자와 운항책임자의 과실 비율이 높아 법적인 책임을 이들에게 묻고 있다. 선박충돌 사고의 경우에도 상당부분의 책임이 부담되기 때문에 형사상 처벌 또한 피할 수 없다.

_하지만 사고의 원인이 화적물 과적, 무리한 선체 증축 등 선사 회사의 과실에 있다면 그 책임의 부담은 달라진다. 그리고 선사 회사와 선주는 단순한 선박 관리를 넘어, 승선 해기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있다. 앞서 소개한 광안대교 사고에서 부산지검이 해당 선사 법인 또한 해사안전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며, 선주의 책임 범위를 승선 해기사 관리까지 확장되게 되었다.

_그러나 선주는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편의치적뒤에 숨고 있다. 그리고 서류상의 회사와 선주의 형태를 갖추고 해운업계의 탈법을 자행하고 있다.

 

 

넌 도대체 어느 나라 선박이니?

 

_국제법상 선박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국적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해운 업체들이 실제 운영하는 선박을 자국에 등록하지 않고 규제가 느슨한 제3국에 등록하는 데 이를 편의치적이라 한다. 원래 선박에는 재산세, 소득세 등의 각종 세금이 부과되고 운항 또한 선원법 등의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편의치적 제도를 이용하게 되면 이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다는 점에서

세계 주요 30개국의 선박 중 75.5%가 해외 편의치적을 활용하고 있다.

_편의치적국에 대표되는 국가는 파나마, 라이베리아, 마셜제도 등이 있다. 이러한 나라들은

세금 절감 인건비 절약 각종 규제 회피 선박 금융 지원을 내세우며 등록국을 유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2년에 제주도를 제주 선박 등록 특구로 지정하여 편의치적으로 등록한 선박에 준하는 수준의 세금 감면 혜택과 자국 선원 승선 의무를 완화하여 제공하고 있다.

세계 편의치적국 순위(IHS Markit제공-2017.3)
세계 편의치적국 순위(IHS Markit제공-2017.3)

 

_이러한 편의치적 제도는 자본력을 갖춘 미국이 자국의 법 적용을 피하고자 파나마에 선적국 등록하며 유래하였다. , 선주가 일종의 편법으로 이용한 제도로서 오늘날 선원에 대한 인간적 대우 결여와 형식상의 회사가 빚어내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해상사고의 사각지대

_최근 편의치적 선박을 부정한 방법으로 수입해 조세 포탈 혐의로 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들은 편의치적 제도를 남용한 것으로 형식상의 회사만 있을 뿐,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피해 발생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_한편 2017331일 발생한 스텔라 데이지호 사고는 편의치적 제도의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해당 선박은 우리나라 회사인 폴라리스 쉬핑이 운항하고 있었지만, 사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유해 수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선적국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국제 규정에 의해, 당시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권이 선적국인 마셜군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사고 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편의치적선
편의치적선

 

_이에 해사법학부 정영석 교수는 편의치적 제도를 환경적 규제, 행정법 규제를 이탈하는 데 악용하고 있다오늘날은 인건비 절약을 위한 업무능력이 낮은 선원 고용으로 증가하고 있는 선박사고가 세계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_편의치적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자본력을 가진 선주의 이익을 중심으로 활용되었다. 이로 인해 해양사고에서 선사 회사의 과실 책임이 있음에도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아 처벌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서류상의 선주와 선사회사에서 초점을 벗어나, 그 책임의 화살이 결국 실선 주가 아닌 운항 책임자에게 돌아오고 있다.

_방위산업체 자격이 있는 해양기업에 취직하는 해사대학 졸업생 비율은 60%이다. 해양 사고 통계에 따르면 기관, 장비의 오작동이 33%에 달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선주와 선사 회사에 있다. 하지만 서류상의 회사에 불과하다면 그 부담은 운행 책임자, 즉 선원을 향한다.

 

200년 동안 꼬여버린 실타래

 

_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증가한 편의치적선이 국제사회에 논란이 되었다. 이에 국제협력 기구들은 기국과 선박 간에 진정한 관계의 개념과 기국의 유효한 관할권과 관리 의무를 명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_국제해사기구 IMO는 수십 년에 걸쳐 국제 해사 협약의 개발 및 항만국통제 제도 강화를 통하여 편의치적선의 운항을 통제하고자 노력했지만 효과는 미흡했다.

_또한 유엔해양법협약은 선박에 대한 실효적 규제를 위하여 형식적인 기국 관할권을 수정하여 연안국 관할권을 확대하고 항만국의 집행 관할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위반행위의 모호성과 관할권의 감시, 규제, 선박의 억류를 증명할 국제기구가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국제해사기구(IMO) 건물
국제해사기구(IMO) 건물

 

 

꼬인 실타래를 풀자

 

_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는 편의치적선은 국적만 외국에 등록되어있을 뿐 사실상 한국 선박으로 봐야 한다"편의치적선에 대해서도 국내 안전 법을 모두 적용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법안 개정의 필요성을 전했다.

_이에 해사법학부 정영석 교수는 관습적으로 편의치적은 해운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기에 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도 제도의 문제점이 등장한 이상, 편의치적이 해운계에 미치는 영향력의 그물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변화를 위해서는 국제연합 기구의 협약 발안이 필요하며 항만국통제의 엄격한 환경규제와 선원 능력 점검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시대 따라 법이 제정되고 폐지되는 변화 속에서 바다의 법 또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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