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열리지 않는 문
장애인에게 열리지 않는 문
  • 김찬수 기자
  • 승인 2019.06.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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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 속 사회적 약자가 겪는 불평등

_이번 강원도 산불은 사회 안전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정부의 체계적인 역할이 어느 때보다 당연하게 요구됐던 재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대피 매뉴얼은 장애인에 대한 재난정보 전달 및 대피의 지원을 온전히 하지 못했으며, 이들을 위한 별도의 대피소 설비도 추가하지 않았다. 이에 누군가는 사회적 소수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소수라는 이유로 특정 대상을 소홀히 여기는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 산불 속 방치된 장애인

 

_강원도 속초시에 거주하는 뇌병변 1급 장애인 박지호(35)씨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수화기 너머로 활동지원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박씨의 거주지 인근 1km여 앞까지 산불이 번져 대피해야하는 상황이라 이를 알고 걱정되는 마음에 급히 연락을 한 것이다. 박씨는 머리가 하얘졌어요. 활동지원사 분은 다른 지역에 있어서 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라며 당시 장애인 콜택시는 먹통이고, 대피소로 가라는 문자만 달랑 왔을 뿐 대피소가 어딘지 모르겠고, 경사로가 있는지 장애인 편의시설은 마련되어 있는지 막막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_한편, 같은 시간 강원농아인협회 수화통역센터 이유란 수화통역사를 비롯한 직원들은 청각장애인 회원들에게 직접 영상통화를 걸어 별도로 상황을 설명해 주어야했다. 재난주관방송 KBS를 비롯한 타 방송국 어디에서도 재난보도에 대한 별도의 수어통역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이유란 양은 방송에는 음성만 나오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은 없거나 너무 빨리 사라져서 장애인들은 채 읽지도 못 합니다라며 특히, 자막을 인지하는데 한계가 있는 청각장애인은 익숙한 글자가 아니면 이해를 잘 못하시는 경우가 많아 수화가 꼭 필요한데 다들 불안해하고 계셨어요라고 아쉬움을 비췄다. 방송법 시행령 제52조에 의하면 재난방송 또는 민방위경보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시청을 돕기 위하여 방송프로그램에 대하여 한국수어·폐쇄자막·화면해설 등을 이용한 방송을 하여야한다는 의무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를 비롯한 주요 방송사들은 다음날 아침 8시에 이르러서야 수어통역방송을 시작하여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장애인단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장애인단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수어통역 없는 뉴스특보 장면
수어통역 없는 뉴스특보 장면

 

 

/ 재난 이후 드러나는 불평등

 

_머터 교수는 <재난 불평등>을 통해 재난 이후 사회적 회복 단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과정에 있어 장애인, 노인 등의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어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재난을 겪은 후 시스템을 정비하지 못하면, 거듭 재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두 차례 경주, 포항 지진에 이어 이번 강원도 산불에서도 여전히 그 당연함에 대해 미흡함을 드러냈다. 특히, 재난 시 발생하는 사망자 비율 중 장애인의 비율이 43.6%로 압도적인 가운데 장애인 관련된 대피 시스템과 재난 매뉴얼의 보완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론화 된 적이 아직까지 거의 없다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_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용석 실장은 재난 속 장애인이 부딪히는 불평등에 대해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관련된 보완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운을 떼지만 장애인 복지시설과 같은 특정 장소만을 표본으로 하고, 15개 장애 유형 중 일부만 반영되는 식의 현 재난 대피 매뉴얼은 개선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포항지진 당시를 비롯한 현재의 재난 대피소 운용에 대해 김성열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도움을 주려고 갔는데 장애인을 대피소에서 볼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확보되지 않거나 장애인 화장실과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말하며 장애인 당사자들은 집에 있는 게 차라리 편한 상황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_이에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하고 415,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 간담회를 국회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행정안전부를 통한 종합대책 추진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응은 아직까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재난 시, 비장애인 대비 장애인 사망자 비율
재난 시, 비장애인 대비 장애인 사망자 비율

 

 

 

 

/ 만약 부산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_근래 동해안 해역을 중심으로 한 지진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포항, 울산에 이어 부산도 지진을 동반한 재난에 대비해야한다는 의견이 증가하고 있다. 물론, 재난이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시 대비하고 있는 현재이지만 더욱이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부산장애인총연합회 한성태 기획부장은 여전히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한 부장은 “‘18년 부산 지진 대책 방안부터 장애인 관련 안건으로 시청과 계속 의논 중에 있다고 말했지만 매번 장애인 편의시설과 안전 시스템의 보완을 언급하는 것과는 달리 지자체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장애인 대피 시설과 대피소의 여건을 개선 중에 있다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과 보다 의논 후 사각지대가 없게 하겠다고 구체적이지 않은 대답을 전했다.

_한편, 부산은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산등성이에 건물이 위치한 경우가 많아 재난 상황 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대피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적지 않다. 부산지체장애인단체협의회 관계자는 높은 경사의 언덕과 고층 건물이 많은 현 부산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장애인이 이용할 수 별도의 시설은 없는 상태라며 건물 설계 중, 장애인 시설에 대한 법제화가 없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어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 캠퍼스는 준비가 되었나?’

 

_공공기관에 해당하는 우리 대학 캠퍼스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보장에 관한 법률에 의거 필요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 건물 출입이나 계단, 화장실 이용 등 일상생활의 편의를 위한 준수 사항일 뿐 재난을 대비한 시설의 규제는 별도로 없는 상태다. 이에 우리 대학 시설과 조한조 팀원은 정전을 비롯한 긴급 상황별 안전장치는 건물마다 마련되어 있는 상태다2층 이상에서 탈출해야하는 상황 조치에 대해서는 장애인 대피를 도울 시설과 관련된 별도의 예산을 측정하여 건물들에 설치하는 것은 현재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축 건물에 대해서는 장애인협회의 인증을 받는 ‘BF(생활환경)인증제도에 따라 관련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_한편, 아치둘레길 관광으로 인해 노인, 장애인을 비롯한 외부인의 출입이 증가함에 별도의 상황 대비 매뉴얼과 대피소 마련에 학교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학생들의 의견이 있었다. 해양과학기술대학 소속 Y양은 재난이 우리 학교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학생을 비롯한 외부인도 보호할 의무는 공공기관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캠퍼스 관리팀 김종석 팀원은 장애인 대피소가 이슈화 된 적이 아직까지는 없었지만 관련 사항을 논의하겠다고 말했고, 더불어 박성배 팀장은 항만 측에서 관련 사항이 승인되는 것이 우선이다학생을 비롯한 외부인도 아우르는 대비 매뉴얼을 현재 마련하는 초기 단계에 있어 아직까지는 드러나는 것이 없다고 술회했다.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캠퍼스 유일의 대피소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캠퍼스 유일의 대피소

 

_장애인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대피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국가는 이들에게 계속 기다리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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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수 기자 kcs9219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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